가봉 쿠데타… 아프리카 4년새 8번째, 中-러 영향력 급격확장 속 ‘정치혼돈’
쿠데타 발생 아프리카 국가들
최근 美-유럽 영향력 퇴조 공통점
中, 차이나머니 앞세워 진출 확대
러, 바그너그룹 통해 이권 따내
중앙아프리카 산유국 가봉의 정정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쿠데타를 일으켜 알리 봉고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는 같은 날 “브리스 올리기 응게마 장군을 임시 지도자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응게마 장군은 봉고 전 대통령의 친척이면서도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고 부패 의혹 또한 상당해 국민 지지를 얻진 못하고 있다. 7월 이웃 니제르에 이어 가봉에서도 잇따라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이 지역에 대한 서유럽 주요국과 미국의 영향력이 줄고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이 강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가봉 군부는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응게마 장군이 만장일치로 정권 이양 및 제도 복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그는 2020년부터 봉고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내며 권세를 누렸다. 지난달 26일 대선에서 봉고 전 대통령의 3연임이 확정되자 돌연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아프리카 중서부에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차드, 수단, 니제르, 가봉 등 8개국에서 쿠데타가 발발했다. 대부분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독립 후 미국과 가까웠으나 최근 러시아, 중국 등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미국과 서유럽이 비용 부담, 국내 정치로의 치중 여파로 아프리카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 뚜렷해지면서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간 가봉 정부와 밀접했던 프랑스조차 쿠데타 음모를 사전 입수하지 못했고 쿠데타 발발 이후에도 군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 등을 통해 수단, 말리 등의 독재 정권을 비호하고 치안을 유지해주는 대신 광물 채굴 등 각종 이권 사업을 따냈다. ‘차이나머니’를 앞세운 중국 역시 아프리카 전역에 돈을 뿌리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서방과 결탁한 지도자들이 독재와 부패로 일관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 또한 민심 이반을 불렀다. 봉고 전 대통령은 2009년부터 14년간 가봉을 통치했다. 그의 부친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 또한 1967년부터 42년간 집권한 후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줬다. 부자(父子)가 무려 56년간 한 나라를 통치한 것이다.
이에 가봉은 물론 니제르에서도 주민들이 쿠데타를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가봉은 원유, 다이아몬드 등 풍부한 원자재를 보유했지만 234만 명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서방은 이 지역의 정정 불안, 중국 및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모두 우려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제어할 수단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군의 정권 탈취, 위헌적인 권력 전환을 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