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야외수영장에서의 생활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내가 나고 자란 도시 보고타는 추운 곳이다. 콜롬비아는 한국과 달리 사계절이 없다. 기후는 해발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고도가 낮을수록 따뜻하고 높을수록 춥다. 보고타라는 도시는 해발 2600m에 자리 잡은 분지여서 기온은 1년 내내 섭씨 7도에서 19도를 오간다. 적도에 위치한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7도는 정말 춥고, 나와 내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오전 6시가 되면 길모퉁이에서 통학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춥게 느껴진다.
가끔 새벽에 안개가 자욱해서 버스가 길을 통과하기 위해 전조등을 켜곤 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다행히 나의 부모님은 보고타 외곽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주말과 휴일을 대부분 그곳에서 보냈다. 보고타에서 안데스산맥을 따라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내려가면 별장이 있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곳의 기후는 언제나 여름이었다. 그 별장에는 수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보고타의 추위는 자연스럽게 수영장을 떠올리게 하는 더위를 바라게 했다.
내 수중에 엄청난 돈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을 구매할 것이다. 엄청난 돈이란 말 그대로 엄청난 액수다. 물빛이 반사되는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한 남자와 물 밖에서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가 산을 등지고 서 있는 이 그림은 2018년 900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까지 살아있는 예술가의 그림 중 가장 비싼 그림이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별장과 수영장이 떠오른다.
2013년 여름, 서울에서 맞은 첫 여름에 나는 수영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영장은 운동을 위한 실내 수영장이고 야외 수영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호텔에 가야 하는데, 호텔 수영장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서 불안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가기가 꺼려졌다. 그러다 서울의 한강공원에 공공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잠원동의 수영장인데, 가장 먼저 놀란 건 영화 티켓보다 저렴한 입장료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어린이 풀장과 성인용 풀장이 분리되어 있고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 복잡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에는 프라이드 치킨과 라면 등을 판매하는 매점과 흡연 구역이 있었고 일광욕을 위한 파라솔을 대여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년째 여름이 되면 잠원 한강 수영장에 간다. 덕분에 나에게 어떤 여름날은 물과 염소와 햇빛 차단제와 땀을 품고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그 순간에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날이 된다. 어째서 나에겐 호크니의 그림을 살 돈이 없는지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잠원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함께 어울린다. 나와 같은 외국인도 있고, 커플도 있고, 친구들 무리도 있고,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풀장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멋지게 조각된 몸을 태우는 주변의 보디빌더도 있다. 몸매가 어떤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를 포함해 그런 사람이 대다수다. 거기에 가면 바깥에선 점잔 빼는 한국인들도 모르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상냥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게다가 그곳에선 한국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을 입은 사람을 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굳이 불경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햇볕이 피부에 닿지 않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입고 풀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국의 수영장과 해수욕장의 풍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실내 수영장에 가거나 집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1970년대 한국의 해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거기엔 많은 사람이 수영복이나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물에 들어갈 때 옷을 입게 된 걸까? 우리는 서로의 피부를 보면서 인간이라면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잠원동의 수영장에는 나처럼 혼자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 가끔 나 같은 외국인도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알려진 남자 배우도 혼자 오는데, 여느 일반인처럼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쉬고 마음껏 수영하다가 돌아간다. 그리고 수영장에는 끊임없이 혼잣말하는 사람도 있고, 태양을 어깨에 짊어진 채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쉬지 않고 반복해서 헤엄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를 두고 불안해하거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공공 수영장에 가는 우리 모두는 야외 수영장에 가기 위해 차려입고 고급 호텔에 가지 않고도 하루 종일 햇볕 아래에서 여유와 더운 여름의 공기와 시원한 풀장을 만끽한다. 한강변의 나무에선 매미가 필사적으로 울고 있고 그 나무 아래 그림자에 드러누워 있다가 더위가 습격할 때마다 깨끗한 풀장에 몸을 던진다. 돈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주변인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함께 마음껏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도시의 모습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