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 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저녁노을>
오늘 저녁 식사 후의 일입니다. 뒤뜰로 연결된 운동장을 향해 걸어나가며 올려다본 서녁 하늘에 걸린 저녁노을이 어찌 그리도 고운지요.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장에는 황홀한 저녁노을보다 훨씬 기분 좋은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비로 한동안 축구에 굶주렸던 아이들이 마치 물을 만난 고기떼처럼 정신없이 축구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뛰다가 저를 발견한 아이들은 멈춰 서서 인사를 건넵니다. 참으로 가슴 흐뭇한 광경이지요.
혹시라도 운 좋게 제 앞으로 볼이 굴러오지 않나 기대하며 운동장 주변을 어슬렁거릴 때였습니다. 다들 성공 케이스라고 칭찬하는 한 아이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 "신부님, 이번 토요일 날 제게 한턱 쓰셔야 되요!" 궁금해진 저는 "왜 무슨 좋은 일 있냐? 니 생신이냐? 요즘은 생신 맞은 사람들이 한턱 쓰는 게 유행이라던데!" "그게 아니고요, 제가 이번 검정고시에 전과목 합격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아이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영어 단어 하나 제대로 발음할 줄 몰랐었는데, 영어도 거뜬히 붙었다는 게 신기해요. 이제 대검을 준비할거예요."
자랑을 마치고 다시 볼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가 너무도 기특해 보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의 요지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선물들, 긍정적인 측면들을 최대한 발견하고, 그 발견한 달란트를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잘 사용하라는 말씀이겠지요.
나날이 성숙해지는 아이들, 콩나물처럼 매일 쑥쑥 커 가는 아이들, 매일 기꺼이 견뎌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사랑스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간 안에 들어있는 성장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인간이 지닌 선물 중에 가장 소중한 선물(달란트)은 바로 변화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배우자나 이웃들의 심각한 결점 때문에 낙담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입니다. "저 인간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나?" "귀신은 뭐하나 저 인간 빨리 안 잡아가고?"하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인간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하느님께서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가장 확실한 표지입니다. 아무리 비참해 보이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소중합니다. 하느님은 끝까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예언하건데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그 인간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팔십이 넘은 고령에도 복음화와 지상의 평화를 위해 그 노구를 이끌고 꾸준히 장거리 여행을 계속하시는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교황님의 얼굴, 자신에게 남아있던 한 자락 희미한 기력마저 하나도 남김없이 청소년들의 영혼을 구원을 위해 소모시킨 돈보스코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바라보며 달란트를 잘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