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이
긴장과 두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릴 적 한 사건이 떠오른다.
1.
중1 겨울방학 때였다. 교회의 전성시대라 할 81년,
토요집회를 드리러 갔더니 갑자기 선배들이 다가왔다.
"너 오늘 기도야."
"잘 할 수 있지?"
"괜찮아. 다 하는 거야."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부담이 밀려왔다.
'오늘 오지 말 걸' 후회와
'미리 연락 좀 해주지' 원망까지...
1학년 중 처음이라는 명예만 떠올리며
예배를 드리려는데
사회자가 다시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알고 보니 사회자는 동기 여자애.
'난 겨우(?) 기돈데 쟨 사회?'
슬그머니 경쟁심이 몰려오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친구는 교복까지 입고 있었다.
교복이 일종의 '정장' 역할을 했던 시절,
방학인데도 교복까지 챙겨온
그 친구의 야무짐이 미웠고 다시 한 번
그 애한테만 연락한 선배들이 미워졌다.
게다가 묵도에 이어 기도하면서
이 야무진 깍쟁이는
내가 할 수 있는 기도제목을 다 말하고
다른 기도 내용까지 더했다.
기도제목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얼마나 속이 타던지,
얼마나 얄밉던지...
마침내 내 기도 시간!
'짧게 마치리라' ‘떨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준비한 기도를 했다.
"중등부 발전을... 못 온 친구들...
예배 잘 드리도록..."
뭐 그런 제목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할 내용은 다 떨어지고
마무리해야겠다고 느낀 그때!
갑자기 "그리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순간 '아차'하는 마음에 멈칫거렸고
머릿속은 텅 비어 가는데
입에서 다시 터져 나온 "그리고"!
그때라도 무조건 기도를 끝마쳤어야 했는데
당황한 마음은 두방망이질을 멈추지 않고
눈을 감았는데도 세상은 하얘져가고
입으론 계속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되풀이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몇 번을 그랬던 걸까?
언제부턴가 한 선생님이 안타까우셨는지
"주여... 주여... 주여" 애절하게 따라하셨다.
그런데 그 소리는 마치 판소리의 고수가 넣는
추임새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리고... 주여... 그리고... 주여...”
선생님과 내가 몇 번을 반복하자
그동안 애써 웃음을 참던 다른 학생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큭... 큭... 끅"거렸다.
"그리고... 주여... 큭큭큭... 그리고, 주여, 큭큭"
더 이상 기도일 수 없는 그 와중에도
'왜 그리고를 한 거야?'
'그냥 무시하고 끝냈어야지!'하는 후회와,
"주여"를 반복하시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
큭큭거리는 모든 친구와 선배들에 대한 울화로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무슨 말로 기도를 끝냈는지 모르겠다.
기도를 끝내고도 한참을 눈을 못 떴던 것 같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그만한 용기도 없었다.
예배 후 애써 위로하는 선배들에게
"형들 같으면 괜찮겠어?"라 따질 용기도
놀려대는 친구들을 혼내줄 배짱도 없었다.
그저 한 구석에서 불퉁한 얼굴로 자릴 지킬 뿐이었다.
다음날 주일 아침,
역시나 가기 싫다고 말할 배짱도
다른 데로 샐 요령도 없어
여전히 키득대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붉어진 얼굴로 예배를 드렸다.
2.
어느새 세월은 흘러 마흔 중반,
틀에 박힌 기도조차 제대로 못 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이제 목사가 되었다.
교회를 들락날락거리며 주워들은 기도문을
겨우 겨우 입으로 되뇌던 소년은
그 사건의 후유증을 떨쳐내고도 한참 지나서
진심으로 기도할 줄 알게 되었다.
말의 화려함도, 형식적 어구도 아닌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를 배웠다.
그래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막 교회에 발을 내디딘 분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는 분들,
어른들의 멋진 기도가 부러운 분들
모두 염려 마시라.
‘말’만 번지르르 한 기도보다
‘진심’으로 떠듬거리는 기도를 주님은 좋아하신다.
성우 뺨치는 멋진 목소리보다
가슴을 찢고 나오는 울먹임을 기뻐하신다.
실수할까 두려워 말고 말 못 한다 떨지 마시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예배의 귀한 순서를 맡음에 감사하는,
모든 이를 대표해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두려워하는
그대의 진심을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 앞에 평생 떨림을 간직하시라!
마지막 그날까지 두려움과 긴장을 잊지 마시라!
예배의 순서를 맡든지 안 맡든지
사람 앞에 서든지 아니든지
마음을 지키시라!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잊지 마시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