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고사리마을주차장 →조령산자연휴양림 → 제3관문[조령관]→동화선 →이진터 → 제2관문[조곡관]→산불도심비→교귀정→제1관문[주홀관] →옛길박물관→문경새재관리소 거리:9.1km 소요시간:13:40 - 16:50[3시간10분]
자연휴양림 입구
제3관문[조령관]에서 기념사진
이관문은 고려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때 성주 훈달이 세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관문은 영남 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미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홀관, 제2관문을 조동문혹은 조곡관, 제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제3관문[조령관]에서 조금 내려 오다가 샛길로 내려오다 보니 낙동강 발원지를 지나오게 되었다.
문경초점 세종신록지리지[1454]에 의하면 낙동강은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며, 하나는 순홍 소백산에서 나와서 무이 합하여 상주로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경초점은 문경새재의 예지명으로서,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이며, 낙동강의 역사적 발원지로서 의의가 매우 큰곳이다.
발원지 모습
동화원 부봉은[916.2]문경시 문경읍과 충주시 수아보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이다. 백두대간이 하늘재를 지나며 부봉을 만들고 조경까지 주능선으 놓으면서 한가지를 뻗어 주흘산을 만들었다. 문경새재길을 걷다보면 조곡관[제2관문]주위에 보이는 6개의 봉우리중 우뚝솟은 바위산이 부봉이며 6봉이라고 한단다.
상처난 소나무 V자 모양의 상처는일제말기[1943-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동원해서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남아있다.
귀틀집 주로 산악지대에서 사용되던 한국식 통나무집ㅇ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물정자모양이 되고 "방틀집""말집" "틀목집" "투방집"혹은 "정한집"이로 한다. 귀틀집 역사는 매우오래되어 3세기 중국의 역사지인[삼국지][위지동의전 진한지]에"나무르 옆으로 쌓아올려 집을 짓는데 모양은 감옥을 닮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삼한 시대에 많이 건축 되었음을 알수 있으며 북시베리아,파미로고원, 북유럽,아메리카 산악지대등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고 1970년대말까지 화전민이 귀틀집이 문경새재 주흘산등산로 변에 남아 있었으며, 현재 울릉도 나리분지에 남아 있는 귀틀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방법은 나무와 나무사이에 진흙을 발라 보온성이 좋고, 특히 자연 소재 그대로 주거 생활에 반영해 습기조절, 산림욕의 효과를 볼수 있어 오늘날 옛형식을 보완하여 현대인의 웰빙주거공간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문경새재아리랑 문경새재아리랑은 문경지역에서 구비 전승되고 있는 민요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표상으로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우리 내면에 깊숙이 뿌리내린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이라 할수 있다. 이 때문에 아리랑은 전국 각 지방에서 같으면서도 서로 다르게 불리고 있다. 이곳에는 문경새재 아리앙비가 있고, 문경새재아리랑을 들을수 있다. 문경새재아리랑비에는 1965년 홍재휴 교수가[어문학 13집]을 통해 학계 최초로 소개한 문경새재아리랑 가사를 새겨 넣었다. 문경새재아리랑을 부르는 이는 고 송영철[1901-2001]과 송옥자[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장]이다. 고송영철은 1994년 '새재아리랑'으로 [제2회 향토민요경창대회]에서 입상하고 1995년 장원을 한 소리꾼이었다. 고 송영철의 소리는 현재 문경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소리의 원형이다. 송옥자는 고 송영철 소리를 보존하고 전승하고 있다. 문경새재아리랑비에 수록된 가사와 고 송영철의 가사 그리고 송옥자의 가사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르다. 소리의 역양도 같은 듯다르다. 이것은 민요가 구전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악보처럼 정확하게 정해진 형태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각 편과 가사가 존재한다.
영남 제2관문 [조곡관]
이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조선 선조 25년[1592]왜란이 일어난 후에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숙종 34년[1708]조령산성을 쌓을때 매바위 북쪽에 있던 신충원이 쌓은 옛성을 고처 쌓고, 중성을 삼아 관문을 조동문이라 이름하였다. 현재의 시설은 그후 페허가 된것을 복원한 것이다.
소원성취탑 그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길을 지나면서 한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 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 되며,아들을 못낳은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단다.
궁예 궁예[870-918]는 신라 왕족으로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하여 왕이 되었으며 911년 국호를 태봉으로 개칭하면서 연호를 수덕만세라 하였다.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는 등 폭군으로 전락하여 결국 부하 장수들이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자 쫓겨나 평강에서 피살되었다한다.
교구정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 부터 명을 받은신구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로 1470년경[성종초]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건양1년]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페허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정면3면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귀정소나무 교인식이 이우러진 교귀정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로 특히 나무의 뿌리가 교귀정 방향니 북쪽으로 뻗어 있고 줄기는 길손들이 쉬어 갈수 있도록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마치 여인이 춤을 추는 듯하여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보면 볼수록 특이한 형태와 수형으로 그 신비감을 더해 준다.
조령원터 주홀산 조령관문 제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전 길목에 위치하여 수 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역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조령원터의 전체면적은 1980제곱미터[600평]이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은 너비2.8미터,높이 2.98미터 내외이고,동쪽 57.6m, 서쪽 53m, 남쪽 38.9m,북쪽 37.7m의 대칭변 길이가 모두 다른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이다. 서쪽 돌담 중간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돌담을 성벽의 육축모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사이에 2매의 방형 석주를 문설주로 세웠다. 문경시에서는 조령원터 복원을 위해 1977년과1997년 2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터가 두개 층에 걸쳐 발견되었는데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상단의 건물지에서 고려시대의 온돌 유지와 부엌시설 일부가 드러났다. 또한 이를 비롯하여 와편,토기편,자기편,어망추,철제화살촉, 마구류등이 출토되었다.
지름틀 바위 기름을 짜는 도구인 기름틀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지름틀]은 기름틀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참깨,들깨,통등을 볶아 보자기에 싼 떡밥을 지렛대의 힘으로 눌러서 짠다. 기름틀은 받침들과 느름틀로 구성되는데 받침틀위에 볶은깨를 올려놓고 두터운 누름틀을 덮어 누르면 기름이 흘러내리게 된다.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억새풀이 우거진 고개][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새로 만든 고개]등이 뜻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후 세개의 관문[주흘관,조곡관,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 나그네의 숙고 조령원과 신길원현감충렬비, 산불됴심비등의 유적과 빼어난 자연 경관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새재성황산과 최명길, 문경새재아리랑과 같은 설화와 민요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사적[제147호] 문경 조령관문과, 명승[제32호] 문경새재 옛길, 지방기념물[18호] 주흘산 조령문 일원 등의 문화재가 있고 1981년부터는 도립공원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최근에는 옛길박물관, 생태공원, 오픈세트장이 들어서 다양한 역사 문화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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