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 가로되
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삼론종(三論宗)·
소승(小乘)의 삼종(三宗)·진언종(眞言宗)·
천태종(天台宗)의
기도(祈禱)를 함에
어느 것이 영험(靈驗)이 있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불설(佛說)이니
어느 것이나 일단은
기도(祈禱)로 되느니라.
단(但) 법화경(法華經)으로써 기원(祈願)하는 기도(祈禱)는 반드시 기도(祈禱)로 되느니라.
물어 가로되,
그 까닭은 무엇이뇨.
답(答)하여 가로되,
이승(二乘)은
대지미진겁(大地微塵劫)을 지나도록
선사미(先四味)의 경(經)을 행(行)하였어도
성불(成佛)하지 못했지만,
법화경(法華經)은
잠깐동안 이를 듣고
부처가 되었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사리불(舍利弗)·가섭(迦葉) 등(等)의
천이백(千二百)·
만이천(萬二千) 통틀어
일체(一切)의
이승계(二乘界)의 부처는
반드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을
성취(成就)시켜 줄 것이며,
또한 행자(行者)의 고(苦)도
대신(代身)하리라.
기도초(祈禱抄)
어서 1344쪽
젊은날의 일기
1953년 1월 4일 (일) 쾌청 –25세-
정오까지 느긋하게 잠자리에 있었다.
오후부터는 손님이 많았다. 휴양도 했기에 모두 만나기로 했다.
7시부터 동료 동지들에게 스키야키를 대접했다. 7명이 왔다.
11시까지 이야기를 나무며 식사했다. 동지는 정말로 좋다. 익우(益友)는 실로 즐겁다.
드디어 내일부터 결전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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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월 4일 (화) 개었다가 흐렸다가 – 27세-
오전 내내 집에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 분하다.
손님들이 많이 왔다. 정월이므로 유쾌하게 인사하며 만났다.
오후, 지부장 등과 함께 T씨 댁에 갔다.
지부 그리고 부대 간부가 다수 집합해 있었다. 여러 가지 협의하고 함께 잡담. 다 함께 고전 음악을 감상했다. 이어서 시 낭독.
돌아오는 길, 빛나는 별자리. 무량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일러주는 듯. ― 작은 일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말라고 타이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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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4일 ~ 5일 (수~목) 흐린 뒤 비 –28세-
오잔 9시발 특급 ‘쓰바메’를 타고 오사카를 갔다.
구름 낀 하늘 ··· 몹시 춥다. 정말로 안 좋은 날씨다. 몸과 마음이 찌뿌듯하다.
5시부터 간사이 본부에서 〈당체의묘〉를 강의. 이어서 남녀 반장 지도회.
간사이 본부 상주대어본존께 여러 가지에 대하여 기원하였다.
5월 ― 10시부터 개인 면접 ―. 저녁 6시까지.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전력투구로 지도.
8시 30분 마지막 지구부장회. 전력을 다하여 통렬하게 지도했다.
10시, 야간열차 ‘겟코(月光)’를 타고 홀로 쓸쓸히 돌아왔다.
열차 안에서 ‘본유무작(本有無作)’에 대하여 사색.
머리가 나쁜 것을 한탄한다. ‘이신대혜(以信代慧)’라는 육탄 같은 신심 외에 도달할 방법도, 길도 없다는 것을 깊이 느낀다. 아, 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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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월 4일 (금) 흐린 뒤 맑음 –29세-
나에게는 매년 주연(酒宴)이 없는 정월이다.
아침 10시 가까이까지 이불 속에. 미열이 있다. 약한 생명이 슬프다. 불사조처럼 되고 싶다.
어침에 히로마사를 데리고 목욕을 갔다. 이 아이를 철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염원하면서. 새하얗고 새로운 생명의 모습 ―.
오후 2시, 집을 나섰다. I씨 댁에서 교학부 임용 시험 연찬회.
진지한 모두의 모습에 탄복하는 마음이 절로 나올 뿐.
〈삼세제불총감문교산폐립〉의 전반부를 5시간 동안 강의하고 질의 문답했다.
올해는 강의 방법, 강연 · 연설 자세에 대해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통감. 지도자는 실력을 다양하게 배양해야만 한다.
8시부터 O씨 댁에서 남녀 청년부 유지들과 신년 연회.
천정하고 청순하며 청향(淸香)한 사람이어라.
또한 청춘의 꿈을 안은, 도리에 맞고 성실한 사람이어라.
돌아오는 길에 두 군데 신년 인사를 드리고 피곤에 지쳐 귀가. 12시가 넘었다.
달빛 ··· 한없는 정적. 작고 가난하고 온화한 우리 집을 황금빛으로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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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1월 4일 (토) 흐린 뒤 맑음 –30세-
정오에 하산. 총본산에서 나흘 동안 지낸 적은 처음이었다. 기쁘기도 했고 또 장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었다.
1시 8분발 ‘사이카이’를 탔다. 총리 일행이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한다. 아타미에서 내린 모양.
오늘날의 정치에 대해 동지들과 대화를 나눴다. 왐불명합(王佛冥合)의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지 못하면 진실한 정치도, 평화도, 행복도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호소했다.
묘법의 조람을 받지 못하는 권력과 재력이라는 마력(魔力)을 절감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손님 응대. 전혀 즐겁지 않았다.
결국, 학회 활동이 가장 즐겁다. 보살계, 불계의 세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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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4일 (일) 맑음 –31세-
생에 가장 평온한 정월.
오전 내내 아이들과 단란한 한때를.
정오 ― 오기쿠보에 있는 M씨 댁에 인사드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청년부 수뇌들과 신주쿠에서 회식하고 헤어졌다.
밤, 독서 ― 와쓰지 데쓰로 저(著) 《윤리학》
2시가 넘었구나 ―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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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 4일 (월) 쾌청 –31세-
오전 10시 넘어서까지 쉬었다. 잠에서 깼어도 고단하다.
아내와 히로마사도, 시로히사도, 다카히로도 모두 건강하고 기운차다.
오랜만에 가족을 보는 느낌이다.
아내가 직접 만든 요리로 점심을 함께했다.
아이들의 왕성한 식욕에 마음이 놓이고 흐뭇했다.
그 어떤 호텔이나 여관의 음식보다도 맛있고 행복한 식사였다.
밤중에 홀로 독서, 여러 가지 사색.
올 한해, 신심의 결정(決定)과 건강을 본격적으로 도모하자고 결의한다.
정계는 올해 차기 총재를 결정하게 될는지.
종문에는 닛다쓰 상인 예하의 등좌. 정계에는 이케다 하야토인가.
또 학회의 최고 책임자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해인가 ···.
광선유포의 포석은 묘법의 대법칙에 따라 차츰 반석같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누가 아는가.
첫댓글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