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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하는 장항인쇄단지, 현장을 듣다 |
장항인쇄단지 내 위치한 한 공장에서 분주하게 돌아가는 인쇄기. 이곳 인쇄공장의 대표는"30년 동안 동고동락한 인쇄공장 사장님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물류센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주택개발·교통문제·각종 규제가
코로나 피해입은 인쇄인 내몰아
폐업한 인쇄업체, 물류가 대신해
[고양신문] 모퉁이 깨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틈 없이 들어선 판넬공장들. 대로 하나를 경계로 농경지를 마주 보는 이곳은 잘 정돈된 산업단지보단 급조된 난민촌을 더 닮아있다. 매일 이어지는 출근길 정체, 그물처럼 얽힌 골목길, 그 골목길을 가득 채운 불법주차 차량까지. 다름 아닌 신도시개발과 함께 일감을 찾아 고양시로 몰려든 인쇄 난민들의 성지, ’장항인쇄단지’의 일상이다. 90년대를 전후로 이곳 장항1동에 자리를 잡은 소상공인들은 약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직하게 버텨왔다.
그러나 최근 장항인쇄단지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인쇄공장들이 문을 닫고, 외부에서 유입된 물류센터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나간다. 서울 충무로에서 고양시로 밀려 나온 ‘인쇄난민들’. 이곳마저 무너진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택지개발, 수도권정비권역 등 고양시의 고질적 문제가 고루 섞인 ‘장항인쇄단지’의 변화와 주민의견을 포착해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한다.
위성사진으로 본 장항동 인쇄산업단지 전경. 최근 인쇄공장들이 물류업장으로 교체되며 농지 모양대로 세워진 샌드위치판넬 건물들은 교통, 안전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고양시 떠나는 인쇄공장들
대부분의 매체가 디지털화되는 정보화 시대, 인쇄업은 가장 먼저 소멸할 ‘사양산업’으로 꼽힌다. 장항인쇄단지는 이런 산업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통계청에서 분석한 전국사업체조사를 보면, 고양시 ‘인쇄 및 기록매체 복사업’ 종사자는 지난 2017년 5150명을 시작으로 2019년 4462명, 2021년 4351명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장항인쇄단지의 하향세를 단순히 인쇄매체가 위축되는 전국적인 트렌드 탓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 인쇄단지가 직면한 문제들은 상당 부분 고양시, 특히 장항1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장항동을 떠나거나 문을 닫는 인쇄종사자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바로 폭등한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소규모 업체’와 고양시에서 사업확장이 어렵다고 판단해 떠나는 ‘대규모 업체’다. 그러나 1~4인 규모의 업체가 66%를 차지하는 장항1동 특성상 대다수의 업체가 높은 임대료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장항1동 내 인쇄업체 종사자 규모현황 (2021). 자료출처=장항1동 행정복지센터.
오랫동안 장항동에서 생업을 이어온 인쇄인들이 꼽는 임대료 상승의 원인은 다름 아닌 장항공공주택지구가 낳은 ‘지가상승’이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지구의 지정고시가 발표된 바로 다음 해인 2017년 1월 지가지수는 81.40에서 2019년 1월 88.72로 9%의 유례없는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인쇄종사자 수 감소가 시작됐고, 현재까지도 소폭 상승 중인 지가는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져 인쇄 소상공인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김재윤 고양인쇄문화허브센터장은 “장항공공주택지구 건설이 낳은 풍선효과와 지가상승이 임대료 폭등으로 이어졌고, 이 때 대부분의 인쇄업체가 이전하거나 문을 닫았다”라며 “직후 이어진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산업기반이 붕괴해 기존 10년 넘게 인쇄기를 돌려온 사업체들이 부도를 내거나, 인근 파주출판단지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즉 민선 7기 시절 과도한 택지개발, 이른바 ‘미니신도시’를 양산해 고양시 대표 제조단지인 장항인쇄단지마저 베드타운화해 버렸다는 것.
비교적 적은 수를 차지하는 대규모 사업체의 경우, 임대료보다는 ‘규제’가 문제다.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도권정비계획법, 특히 고양시가 속한 과밀억제권역의 행위제한, 중과세 등은 장항동 인쇄업 발전을 틀어막는 형국이다. 반면 인접한 파주의 경우, 성장관리권역에 속해 산업 입지가 비교적 자유로워 인쇄공장들은 장항동을 떠나 파주로 이전하고 있다.
인쇄 빈자리 물류가 메워...교통문제도
장항인쇄단지를 떠난 인쇄업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물류업’이다. 그간 자리를 지켜온 인쇄공장들이 하나씩 사라지자, 물류 및 유통 업체들이 인근 자유로 일산 장항IC, GTX-A 킨텍스역 등 좋은 입지 조건을 노리고 장항인쇄단지로 유입된 것.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장항1동 내 ‘운수 및 창고업’ 사업체 수는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소폭 상승 및 하락을 반복하던 중 2017년 65곳에서 2021년 102곳으로 급증했다. 장항공공주택지구로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인쇄종사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과 운수 및 물류업체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2017년으로 같다는 점 또한 이러한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양시 및 장항동 내 업종변화 (2021년~). 자료출처=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일각에서는 새롭게 들어선 물류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바로 인쇄단지 내 물류센터 증가로 기존 인쇄업계가 더 위축되는 것은 아니냐는 것. 아울러 물류센터와 함께 급증한 대형화물차들은 인근 교통량에 부담을 줘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2009년 장항동에서 사업을 시작한 A 대표는 “ 자연스러운 경제 흐름인 만큼 새로 들어서는 물류업자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지만 최근 인쇄업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물류업과 함께 증가한 교통량을 “열악한 교통인프라가 감당하지 못해 일어나는 각종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불편함을 토로해 왔지만 아직도 장항1동 내 교통인프라는 타 시군의 제조단지와 비교했을 때 심각하다. 체계적인 개발계획 없이 인쇄인들이 기존 농지 위에 판넬공장을 짓고 사업을 시작했기에, 도로 또한 기존 농로를 기반으로 설치돼 전반적으로 복잡하고 협소하다. 항공사진에서 이곳 공장들의 배치가 마치 밭 같은 형상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도로가 보행로와 차도 구분이 없어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장항1동 교통인프라는 기존 주민 및 인쇄인뿐 아니라 새로 유입된 물류업 종사자들도 지적하는 문제다. 4년 전에 장항동에 자리를 잡은 김지영씨는 “4년 전 이곳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제품을 배송하기 위한 택배차량이 일주일에 다섯 번 왔지만, 현재는 수요일을 제외한 4일만 온다. 교통환경자체가 낙후되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인근에 있는 한진택배 일산택배센터 관계자도 낙후된 인프라를 지적하며 “진입로인 사거리가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로 바로 이어져 차를 꺾기가 어려운 가운데 출근길에 병목현상도 더해져 최근 교통사고가 늘었다. 2년 동안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만 7~8건을 넘는다”라고 덧붙였다.
장항인쇄단지의 미래
곧 들어설 장항공공주택지구 인근 교통상황 개선을 위해 시는 LH를 사업 주체로 하여 현재 2차로인 장항로를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2023년 말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해당 도로 공사는 크게 △장항굴다리에서 신평IC(제2자유로)까지 2.5㎞ 구간 ‘장항로’를 왕복2차로→왕복4차로 확장 △장항로와 호수로 사이 ‘연결도로’(길이 0.44㎞) 4차로 신설 △장항굴다리 교차로의 지하구조 개선으로 나뉜다.
그러나 4차로만으로는 현재 교통량뿐 아니라 행복주택 입주 후 향후 교통량까지 감당하기 어려워 기존 소공인들은 6차선으로의 도로 확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질적인 장항인쇄단지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도로 확장뿐 아니라 공공주차장, 신호개선, 도로정비 등 전반적인 교통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사진 삭제
지도의 붉은색 점선이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되는 장항로. 지도 왼편으로는 장항지구(1만2000세대)가 들어선다.
도로확장과 관련해 오준환 도의원은 “이미 기존 2차선에서 4차선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내년 초 완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당장 6차선으로 확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만약 도로 확장이 된다면 기존에 없던 보행로·자전거도로가 신설되어 지금 도로변을 꽉 메운 불법주차 차량들이 공장이 있는 단지 안으로 이동 주차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인쇄 단지 내부가 혼잡해질 것이기에 도로 확장만이 아닌 대규모 공공주차장 건설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장항동 기반시설 발전은 기존 인쇄업체뿐 아니라 새로이 들어선 물류업자들도 공통으로 요구하는 내용인 만큼, 이를 위해선 장항1동 내 자리를 잡은 소상공인들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단기적인 교통환경 개선만이 아닌 장항동을 넘어 자족이 가능한 ‘경기인쇄문화단지’로 거듭나기 위해선 장항동기업인협의회, 장인회, 청년협의회로 분산된 협의체들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인쇄업계와 장항동에 부는 새바람에 어떻게 장항인쇄단지 구성원들이 반응하고, 또 한목소리를 내느냐에 고양시 도심제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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