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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창침례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쉬아 사랑
신앙 개혁이 필요합니다.(왕하23:11~15, 계3:14~19)
오늘은 세계개혁기독교회에서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10월 31일인데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종교개혁주일로 지키면서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며, 나에게 고치고 개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어 영적 대각성의 역사를 이루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은 위대한 주의 종들의 지도 아래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켜 한 시대를 변화시킨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먼저 사사기 시절에 사사들을 통하여 영적개혁이 있었고, 사무엘을 통한 신앙개혁, 그리고 왕정시대에는 아사 왕, 히스기야 왕, 요시아 왕 때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느혜미야 와 에스라의 주도 아래 신앙개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시대 때에는 중세 가톨릭의 타락으로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31일에 일으킨 종교개혁입니다. 지금 세계의 개혁교회들이 오늘 지키는 종교개혁 주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날을 이어 받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약시대 때 대대적인 신앙개혁을 했던 요시아 왕과 우리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중심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신앙개혁을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인가를 깨닫고 새로운 변화와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성경을 보면 여러 신앙개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개혁을 통하여 백성들이 뉘우치고 회개하며 그들에게 있었던 우상을 버리고 새로운 부흥을 맞이한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시대에도 그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502년 전 1517년10월31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은 가톨릭교회에서 제성절(The All St's day)이라고 불리는 천주교의 명절날인데 로마가톨릭은 10월31일 날에 세상을 떠난 많은 성자들(순교자들)을 숭배하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제성절은 없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죽은 자를 숭배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본래 성경을 왜곡한 종교로 엄밀하게 본다면 이교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성절은 옷만 바꿔 입었지 사실은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할로윈데이(Halloweenday)’입니다.
할로윈은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풍습으로 본래는 캘트족의 종교 풍습입니다. 캘트족은 여러 잡신을 섬기는 민족입니다.
그 나라는 여름과 겨울만 있는 나라로 그들은 10월31일은 여름의 끝이고 11월1일을 겨울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이를 삶과 죽음의 경계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경계가 가장 얇아지는 31일 밤은 악령들의 힘이 가장 세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이날 악령을 쫓기 위해서 이런 축제를 벌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때 여러 제물을 악령들에게 바쳤는데 그 제물이 바로 어린 소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령이나 마녀 등으로 가장한 어린아이들이 잭오랜턴이 켜진 집에 들어가 과자나 사탕을 받아가는 문화로 바뀌고 특별한 복장, 호박, 사탕, 속임수, 유령의 집으로 대표되고 있는 날입니다.
미국에서는 할로윈 축제 기간 동안의 소비와 지출이 크리스마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고 합니다. 로마가톨릭은 이런 날에 더하여 순교자를 숭배하는 날로 바꾸어 축제를 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 축제는 개혁교회인 청교도들도 아무런 생각 없이 축제로 지켰고 미국으로 와서 정착되어 전 세계로 번지게 된 우상 문화요, 귀신을 불러들이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악한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유치원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놀이문화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악한 사탄의 계획에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들까지도 사탄의 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할로윈 날에 또 순교자를 숭배하는 제성절(The All St's day)이라고 불리는 천주교의 명절날에 마틴 루터는 썩어빠진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입니다.
▶독일의 가톨릭신부이면서 위텐베르그(Wittenberg)대학의 신학 교수인 마틴 루터가 교황의 부당한 이단설에 항거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그 대학 강당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M, Luther)가 종교개혁 기치를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그 유명한 면죄부 때문입니다. 당시의 교황인 레오10세가 자기 당대의 사업으로서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데 사업비가 부족하자 이 면죄부를 고안해 낸 것입니다.
그것을 알브레트(Albrecht)라는 사람이 청부를 맡아서 전 유럽에 판매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일행이 독일에 와서 면죄부를 파는 광경을 본 루터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황이 발행하는 이 면죄부만 사면 자신의 죄는 물론이고 모든 가족들의 죄가 다 사함을 받고 심지어는 죽은 조상들의 영혼까지도 지옥에서 풀려 나와 천당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듣고 그것을 사겠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불쌍하기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악행을 그대로 둔다면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하나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이요 교인들의 참다운 신앙을 말살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한 루터는 급기야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로마서1장17절 말씀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는 말씀에 힘을 얻고 외치기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Scriptura)/ 오직 성경(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Deo Gloria) 은 루터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교황을 상대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가톨릭의 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막강하였습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말하기를 “마귀가 이 도시의 기왓장의 수만큼 많다고 해도 나는 반드시 이 일을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일을 하는 데는 수많은 고난과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때로는 좌절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싸움 가운데 결국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항상 부패하고 타락한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개혁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과거의 나태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서 이제는 과감하게 개혁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요시아의 신앙개혁
유다 왕들 가운데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긴 왕들 가운데 아사, 히스기야, 요시아 왕이 있습니다. 이들은 곳곳에 있는 바알신과 아세라 신, 그리고 태양상을 찍어 버리고 불태우면서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입니다. 특별히 요시아 왕은 유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지역에 있는 우상까지 쓸어버린 하나님을 경외했던 왕입니다.
요시아 왕은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 태양상뿐만 아니라 태양의 문양을 넣은 수레까지 다 불태우고 솔로몬 때 지은 시돈 사람들이 섬기던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 암몬 자손이 섬기는 밀곰의 제단과 산당을 다 불사르고 석상들을 깨뜨리고 목상들은 불에 태우는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쓸어버린 왕입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타락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우상문화에 젖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그런 우상의 문화가 교회 안에 그리고 성도들 속에 들어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별히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문화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경배 받으려 하고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영적세계를 더럽히고 하나님을 그 마음에 모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K-pap, 영화, 드라마, 소설, 각종 쇼 무대 설치에 사탄의 형상인 밧포멘을 집어넣고 있으며 건축에도 호르스(전시안)의 눈과 666 형상을 넣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옷이나 신발 등에도 그런 무늬를 새기고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있지 못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영혼이 조종당하는 것입니다.
요즘 유명연예인들이 악플로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세상 언론들의 말이고 사실은 그 뒤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가 이용하고 필요가 없다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등을 가져다주어 자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유명 연예인들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영화나 K-pop이나 여러 문화를 통하여 자신도 모르게 사탄을 받아들임으로 결국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말에는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시아 왕과 같이 철저하게 우상을 버리고 불태워 버리고 철저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개혁을 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고 깨어 있어 철저한 회개를 하여 성결한 자의 모습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명령한 신앙개혁
요한계시록 2~3장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어떤 교회는 칭찬만 듣는 교회가 있고, 어떤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같이 받는 교회가 있으며, 어떤 교회는 책망과 경고만 있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지금 지상에 있는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어느 한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됩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또 나는 어느 교회와 같은 성도일까요? 조심스럽게 자신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1) 에베소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계2:1~7절)
계2장2~4절을 봅시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은 주님을 처음 만났던 첫사랑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단을 가려내어 정리한 교회, 수많은 사업으로 부흥하는 교회였지만 문제는 정의와 진리를 앞세우다 보니 교회가 가장 소유하고 있어야 할 사랑이 빠진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와 사랑이 함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진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도 필요합니다. 또 사랑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도 필요합니다.
사랑과 진리를 가지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어느 한쪽만 부여잡고 있습니다. 진리만 외치다 보면 교회가 차갑고 싸움과 분열만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첫사랑의 회복이었습니다. 교회가 구원의 복음만 붙잡으면 안 됩니다.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도 붙잡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부분에서 개혁이 필요할까요?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첫사랑의 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버가모 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계2:12~17절)
계2장14,15절을 봅시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버가모 교회가 버리고 개혁할 부분은 우상숭배와 이단과 세상 교훈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세속화된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이러한 교회와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좋다면 이단들의 교훈도 가져오고, 우상의 제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습니다. ‘조상 제사 드려도 괜찮다. 그것은 한국 가정 문화로 제사 음식 먹어도 괜찮다.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받는 것이지 제사 음식 먹는다고 구원을 잃어버리느냐’ 하면서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를 책망하고 경고하는 것은 바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는 말은 없습니다.
‘먹어도 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이 고린도전서 10장입니다만 거기에서 바울이 말한 의도는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하며 우상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장에서 사는 것은 묻지 말고 먹으라는 말인데 이것도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물건을 사는데 이 식물 오늘 제사상에 올라 온거냐 아니냐 꼬치꼬치 캐 묻고 사지 말라는 것으로 어떤 음식이든지 마음 찝찝해하지 말고 그냥 사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르고 먹다가 그것이 우상에게 제사한 후에 나온 우상의 식물이라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실족할 수 있으니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당시의 배경도 모르고 사도바울이 어떤 음식이라도 감사하며 먹으라고 했다고 제사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고린도 전서보다 훨씬 늦게 기록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 책망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아 기록한 바울의 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는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버가모 교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 진노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두아디라 교회가 신앙 개혁해야 할 것(계2:18~29절)
계2장20절을 봅시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책망도 버가모 교회와 비슷합니다.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고 각종 우상을 섬기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4) 사데 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요3:1~6절)
계3장1절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이 엄청 좋은 것 같고 교회가 부흥하니 성령님이 함께 하는 교회 같았습니다. 그런데 불같은 눈을 가지신 주님께서 보시니 실상은 믿음이 없는 쭉정이 같은 교회였습니다. 마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하여 예수님께 저주 받아 말라 죽었던 무화과나무와 같았던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외형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겉만 자랑합니다. 건물만 자랑하고 교인수를 자랑하고, 교회 프로그램을 자랑하며, 선교를 많이 한다고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자랑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이 없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현대 교회도 만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수많은 자랑을 하고 잔치를 합니다만 그런데 예수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인은 믿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대단한 척 합니다. 요즘은 유튜버나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 등에 과대하게 올리고 퍼 나릅니다.
누가 보면 굉장한 교인 같고 대단한 것 같은데 사실은 알맹이 없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개혁하지 않으면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5) 라오디게아 교회가 개혁해야 할 것(계3:14~22절)
계3:15~17절을 봅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일곱 교회 중 가장 문제가 많은 교회입니다.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한 교회로 어쩌면 가장 개혁하기가 힘든 교회의 모습입니다. 많은 분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 모습은 현대교회의 모습이라고 말을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입니다. 다른 교회는 우상을 섬기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교회로 다 눈에 드러나는데 이 교회는 우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로 무기력한 교회입니다. 본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할 때 죄가 보이면 회개를 하지만 죄가 보이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부자입니다. 배가 부릅니다. 이들은 박해나 환난도 당해 보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러니 금 같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타나셔서 비유로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부요해서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나 너희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벌거벗고 있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한 금을 사고, 흰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지금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믿음의 중요성도 모르고, 기도는 왜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육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취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와 관계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의 중요성도 모르고 기도는 아예 담을 쌓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알고는 있지만 영적으로 무기력해서 애를 써도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치 잠에 깊이 취해 있는 것과 같고 술에 취해 있는 것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육체와 세상에 취해 있어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입니다. 사실은 너무 멀리 간 것입니다. 너무 돌아오기 힘이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3장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아직은 그래도 주님이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속 두드리십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열고 신앙 개혁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한국교회가 개혁되고, 우리 신창교회가 개혁되고, 내 심령이 개혁되도록 기도하고 힘을 써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나타나셔서 책망하시며 반복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 개혁에 필요한 요건은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문제를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회개 없는 새로움 이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고후13장 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자신을 점검하여 회개하고 영적 대각성을 하여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