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지른 건 현암이었는데, 정작 뛰어나가는 사람은 준후였다. 재빠르게 현암의 곁을 스쳐지나가며 준후가 말했다. "빨리요, 형!" 현암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 와중에서도 쿡- 하고 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벌써 승희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던 아이가.. 어느새.. 그리고 현암은 검집에 들어있는 월향을 호기롭게 두드리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월향- 너만 있으면 뭐든지, 내 마음이 편해지거든.. 비록..넌 영(靈)이지만..
"으아악! 저리가!! 저리가란 말얏!"
그러나 밖에 사정은 현암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가 않았다. 들려오는 건 승희의 비명소리밖에 없었고, 승희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순간 현암은 어리둥절해졌다. 서..설마..승희가..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현암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시돋힌 승희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이현암! 내가 이상해졌다구?! 으아악! 너 저거 안보여?" 아차..승희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지녔다는 걸 깜빡했다. 현암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에 주름을 지어보였다.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건지.. 작게 중얼거리며 힐끗 옆을 쳐다보니, 준후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경계를 하고 있었다. 평소 때와는 다른 모습의 준후였기에, 현암은 은근히 호기심이 들었다.
"준후야! 무슨일이야? 왜그래? 뭐가 보인다는 거야?"
"혀..형...이거..ㅂ..받아요..."
준후는 소매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현암에게 건넸다. 현암은 부적을 손에 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징그러운 검정색 바퀴벌레가 승희 앞에서 다리를 세우고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도 아주 커다란 바퀴벌레가. 현암은 직접적으로 영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리둥절해 했던 것일 수밖에 없었다. 흠. 그랬군.... 분명 그 커다란 바퀴벌레 영은 형체가 없었다. 아까 준후 방에서 승희가 밟아 비비고, 더군다나 염력으로 사정없이 날려버린 그 바퀴벌레였다. 현암은 그 모습을 보고, 심각한 상황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벌이다 현승희. 그렇게 잔인하게 바퀴벌레를 죽이다니.. 승희는 또 생각을 읽었는지, 눈을 부릅뜨고 현암에게 온갖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뭐? 야!!! 너 죽을래? 너는 한 마리도 안죽였냐구!!"
"아이고..알았습니다, 아가씨. 금방 처리하죠."
"현암군이? 쳇.. 잘도 하겠다. 으아악! 야! 너 저리 안꺼져?!"
바퀴벌레 영은(-_-) 계속해서 승희에게만 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승희의 몸 여기저기엔 바퀴벌레가 공격한 자국이 역력했다. 그때까지 준후는 형체없는 바퀴벌레 영을 보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워낙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준후인지라, 다른때 같았으면 벌써 튀어나갔을 것을, 잔뜩 긴장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현암은 잠자코 준후를 바라보다가 검집에서 월향을 쳐냈다. "가라! 월향! 불쌍한 녀석이지만, 감히 영이 사람을 해치다니!" 월향은 현암의 말을 듣고 그대로 폭사되어 날아갔다. "꺄아아아아악!" 시원스레 귀곡성을 울리며 날아가던 월향이 갑자기 바퀴벌레 영에서 멈추었다. "어엇?" 현암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한발짝 앞으로 나아갔고, 잠시 뒤 월향이 다시 현암에게 힘없이 돌아왔다.
"어..어떻게 된거지?"
"이 바보야! 이 바퀴벌레는 힘을 빨아들인다구!"
승희였다. 날아오는 월향을 염려하여 최대한의 염력을 사용해서 다시 현암에게 돌아가게 한 것은.. 준후는 가만히 바퀴벌레를 바라보았다. 보기에도 끔찍한 바퀴벌레의 다리 하나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검은색 몸통에서 달랑거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승희가 너무나 위험했다. 계속 저렇게 공격을 당하다가는, 승희도 바퀴벌레처럼 당할 게 뻔했기 때문에....준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현암은 차마 월향을 다시 날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움직일 줄 몰랐다. 그 때, 다시 승희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둘의 귀로 들려왔다.
"뭐하는거야! 나는 인간도 아니라 이거야?! 왜 가만히 있어!!"
그 와중에서도 승희는 꾸준히 힘을 배가시켜가고 있었다. 그리고, 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잠시라도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행히도 승희 몸속의 애염명왕이 승희를 지켜주었는지, 아직까진 견딜만 했지만, 승희는 가만히 있는 둘에게 불만이 컸다.
"장준후! 네가 죽이라고 했었잖아!!!!"
준후는 그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승희가 위험하긴 했지만, 바퀴벌레랑 싸우는 건 죽기보다 싫었을 터였다. 눈을 감고 싶었다. 현암은 '흡' 자 결을 사용해 상대를 조금이나마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먹히지도 않았다. 남은 건 준후와 끝까지 버티고 있는 승희 뿐이었다. 현암은 계속 준후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준후야, 할수 있어. 저 영을 빨리 봉인해서 한을 풀어줘야하지 않겠니?"
"야!! 너 거기서 뭐하는거야!! 나 죽는꼴 보고싶어?!"
승희는 체면이고 뭐고 다가오는 바퀴벌레를 피하며 세상이 떠나가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도 연신 공격을 피하며, 현암과 준후에게로 피해가 가지 않게 바퀴벌레 영을 유인해 내고 있었다. 현암은 준후를 바라보며 계속 눈짓을 하고 있었고, 준후는 어찌할 바를 모른채 소매 속에 감춰진 부적을 쥐었다 말았다 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승희는 아직까지 체력소모없이 그런저런 버티고 있었지만, 저 영이 어디까지 승희를 괴롭힐지 몰랐기 때문에 준후와 현암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승희가 자리에 우뚝 서더니, 무섭게 준후를 쏘아보았다.
"너. 이것도 수련이야. 알겠니? 네가 제일 싫어하는 바퀴벌레를 봉인해야 하는 수련이라구! 더군다나 내 목숨도 달린 문제라구!"
준후는 승희가 한 말에 흠칫 놀라며 뒤로 한발짝 물러섰다. 무언가..무언가 그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으로 처량하리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가슴 한켠을 가득 메워왔다. [준후야, 들리니? 영의 목소리가..] "누..누나..?" [난 이 영을 싫어해서, 무서워해서 피하는게 아냐. 단지..이 영은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나여서. 그래서 영의 한을 풀기 위해 이러는거야. 이젠..준후의 몫이야. 알겠니?] 준후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앞으로 몇 분전에 행해졌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승희가 놔 줄까? 라고 했을 때 주저없이 고개를 저으며 밟으라고 했던 일. 승희의 위력적인 염력에 의해 창문 밖으로 퉁겨 날아갔던 바퀴벌레의 형체없는 몸뚱아리. 그 모든게..자신의 잘못 같았다.
"미안...미안해...."
말을 마치자마자, 얼굴색이 환해진 승희와 영문을 모른채 멍해진 현암 앞에서 준후는 소매자락 속에 감추어져 있던 부적 두 장을 꺼내들었다.
"이봐! 이젠 내 차례야!!"
+ + + +
오옷;; 안녕하세요;
벌써 시간이 12시가 지났네요;
즉석날림이라 역시 어쩔수 없는.-_-
생각나는거 정리 안하고, 스토리만 짜서 바로 올리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