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새끼 똥!
벌치 아빠의 둘도 없이 귀여운 딸아. 어제 아빠가 우체국을 통해 보낸 손 편지는 잘 받아 보았니? 말은 어렵지 않았니? 상구라는 말도 나오고 들내삐란 네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말도 나오고 바장거린다는 말도 나오고 또 보도시란 말도 나오는데 이해는 잘 했는지 모르겠구나. 잘 모르겠으면 앞뒤 문장을 보고 감잡히는 대로 이해했으면 좋겠고 정 모르겠으면 아빠한테 전화하여 물어도 봤으면 좋겠고 아니면 요새 발달한 문명 인터넷을 통해 알아도 봤으면 좋겠구나.
근데 어젯밤 잠은 잘 잤니?
자 이제 어제에 이어 오늘 이 벌치 아빠가 사랑하는 딸과 아빠 친구들을 위해 또 아빠 친구 0상이가 준 모나미 노란 연필로 딸과 아빠 친구들에게 줄 좀 보잘 것 없는 ‘오늘’ 선물로 이야기 하나를 준비해볼게. 뭐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귀 쫑긋 세우고 들으면 아주 재미없지는 않을 게다.
어제 아빠가 태어난 집을 대강 그렸다. 그래 대강 그린 그 집에서의 이야기다. 어제처럼 달구새끼들과 관련된 이야기니 인제 한번 귀 기울여 잘 들어보렴. 먼저 아빠가 그때를 떠올리니 앵두같이 잘생긴 미소가 얼굴 가득 생겨나는구나. 아빠 나 벌치가 걸음마를 너의 할아버지를 통해 마당에서 갓 익히고 이제 혼자 마당에서, 햇살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그 장독대가 보이는 마당에서 요리조리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면서 왔다갔다 달구새끼들처럼 한참을 바장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당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있었단 말이다. 그때가 몇 시쯤이었을까? 아직 우리가 사는 동네 중 일부지역 그러니까 다른 말로 ‘반’에 점심때를 알리는 종소리가 땡땡 하고 들리지 않고 아빠 배가 상당히 고팠으니까 한 열 한 시 정도로 기억된다. 근데 웬 점심때 땡땡 종소리냐고? 그래 그때를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 딸은 당연히 궁금하겠지. 지금은 문명이 발달하여 집집마다 시계가 없는 집이 없지만 그때만 해도 동네에 시계가 있는 집은 몇 집 안됐어. 그것도 궤종시계라고 하는 벽에 거는 아주 큼지막한 시곈데 그것을 가진 집이 몇 집 안 됐다는 말이야. 긴 추가 달린 아주 큰 시계야. 그 시계가 없는 동네의 많은 집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고 점심때를 기억하겠니?
동네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물건이 바로 동네 회관 처마 밑에 붙어 있었단다. 그것이 바로 ‘종’이라는 것인데 왜 옛날에 학교에도 다 하나씩 교무실 앞 현관에 붙어 있어 학교 서무주사님이 매 시간을 그 시간이 끝나는 때마다 쳐 일일이 알려주곤 했었지. 오십분 수업 끝났으니까 십분 쉬고 다시 수업 시작하라고 매 때마다 번거로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서무주사님이 당신이 일하시는 좀 작은 방에서 나와 종에 매달린 끈을 잡고 흔들었었지. 흔들면 땡땡 종소리가 났었단다.
그보다도, 그러니까 학교에 있는 종보다도 훨씬 큰 종이 동네 회관에도 하나씩 다 비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바로 열두시만 되면 동네 이장님이나 아니면 새마을 지도자님이 당신이 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통해 시간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그 시간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단다. 땡땡 땡 종을 쳐서 말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귀를 치는 요란한 소리의 음향기구로 바뀌었는데 그것을 동네사람들은 ‘싸이렌’이라고 불렀단다. 그 소리를 처음 듣고 아이 나는 아주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놀라 자빠질 뻔 한 적도 있었지. 그 소리를 들은 최초의 날 아이 나 벌치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웽 하는 아주 고막이 떠나갈 정도의 큰소리를 듣고서는, 이건 누가 나를 잡으러 오는 소리다! 확신하고 헐레벌떡 엄마가 들어있는 정지 속으로 몹시 내달려들었지. 그때 정지의 한 삼십 센티미터 정도 되는 그 높은 문턱을 못 넘고 넘어져 아이 나 코를 깰 뻔 한 적도 있었단다. 조금 그 시절 상황 설명을 한다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네. 이제 다시 아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돌아갈게. 싫증난다고 주의 흩트리지 마세요. 그래 아빠 나 그 시간 땀이 이마에 도도록이 돋아나도록 마당을 바장거리다보니까 배가 많이 고파지지 않았겠니. 아침도 먹은 지가 한참 지났겠다. 지금 정지 속에서 무슨 곰국을 끓이는지 모르지만 연기가 모락모락 불뚝 솟은 굴뚝을 통해 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한테 감히 찾아갈 엄두도 못 냈지. 엄마 젓을 뗀지가 이미 몇 달이 지났으니까 벌치 나 교육을 통해 점심때를 알리는 종소리가 나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배가 고파도 참고 있었다. 배가 고파도 참을 도리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단 말이다. 근데 그날은 유달리 배가 고팠다.
고픈 배를 마냥 참고 있을 수 없었단 말이다. 먹을 것을 그 아이 때인데도 스스로 한번 마련해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마당을 이리저리 설치고 다녔지. 한참을 설치고 다니다 보니까 아이 눈에 번쩍 띄는 게 있었다. 바로 달구새끼 집 조금 앞에 보기에 좀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 같은 것이 있었어. 카! 감탄을 하면서 아이 벌치 나 드디어 스스로 홀로서기 할 수 있구나 하고 그 음식 같은 것을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손에다가 꽉 움켜쥐었어. 그러고는 잠깐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어. 음식은 나누어먹어야 된다고 그 어린 시절에도 교육을 받았기에 그 손에 움켜쥔 그것을 그냥 바로 혼자 먹을 수는 없었어. 그래서 아이 벌치 시방 나를 쳐다보는 우리 집 식구가 누가 있나 확인을 하였던 거야. 사실 아빠는 곧잘 내가 없는 데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내가 무슨 벌 짓이나 하지 않는지 감시를 하곤 했어. 조금이라도 내가 당신의 눈에서 벗어나 벌 짓을 하면 또, 또 하고 잡쥐면서 나의 어린 애호박 같은 손목을 잡아채곤 하셨지. 사실 그때까지도 아이 나는 무슨 동전이나 쇠붙이 따위 같은 것이 있어도 그것이 음식인 줄 알고 입으로 가져가던 습관이 있었어. 그랬기에 나의 거동은 항상 아빠의 눈이나 엄마의 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지. 행동이 자유롭지를 못했단 말이야. 근데 그날은 웬 떡! 손에 움켜 쥔 그것을 언제 먹을까 방구고만 있었는데 아이 나를 감시하는 아빠의 눈이 없었고 엄마의 눈도 정지 안에 있어서 아이 나 벌치 때는 이때다 하고 잽싸게 정말로 날아가는 갈매기가 푸드덕 똥을 쏴는 것처럼 빠른 일순간에 입에다 털어 넣었다. 그리고 또 아빠가 있나 없나 잽싸게 눈을 두리번거렸다. 순간 아빠가 당장 보이지 않아 그래 때는 이때다 하고 아이 좀 이상한 똥 구린내 같은 것을 느끼면서 음식 맛은 항상 같지 않은 것을 아니까 이것도 음식인 줄 알고 입을 오물오물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건 뭐야. 처음에는 역시 음식 중에 똥 구린내 같은 아주 얄궂기 짝이 없는 음식도 있으니까 오물오물 씹는 이걸 음식이라 알고 몇 번 더 연방 씹어 보았다. 아,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건 아니다. 역하게 풍기어 입안을 베도는 그 시큼하고도 독하고 참기 어려운 얄궂은 맛. 아이 나 이건 음식이 아니라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단정 짓고 마치 토하는 사람처럼 욱 하고 내뱉었다. 연방 욱 욱하며 그것을 뱉어내 입안을 깨끗이 가신다고 가셨는데도 풍기어 나오는 그 역하기 짝이 없는 맛. 그 냄새와 맛이 다시 없이 고약하여 눈물이 바로 쏟아져 나오는데도 아이 벌치 나 아빠의 아들 다부지기 둘도 없는 맹랑한 아이 아닌가. 그 자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만 연방 팔등으로 훔치고 있는데 언제 부엌에서 나왔을까? 하얀 고무신을 끌고 팔랑거리는 치마 비슷한 옷을 걸친 엄마가 머리에는 아이 알지 못하는 빛깔의 수건을 두르고선 금방 내 곁으로 와서 큰 소리로 이렇게 지절댄다.
“이녁, 이녁 보소. 온지가 닭똥을 먹었소. 어떻게 좀 해보소.”
그 글썽이는 눈물 속에서도 아이 다부진 벌치는 아빠한테 핀잔 얻어먹지 않으려고 좀 태연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괜찮다는 듯이 엄마의 호들갑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아빠가 한참을 껄껄 웃으시다가, 이녁 보소 닭똥 먹었다고 안 죽으니 괜한 호들갑 떨지 마소, 하고는 나를 보고, 닭똥도 어떤 사람에겐 약이 되니 너도 그냥 보약이라 세라 이르시고 엄마한테 다시 이르시길 온지 저기 수돗가로 데려가서 입이나 한번 헹궈주소 하지 않았겠니.
그 말씀에 벌치 아이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수돗가로 가서 엄마가 떠주는 바가지에 담긴 찬물을 입에 넣고 입안을 헹군다고 몇 번을 소리 내어 후루룩 후루룩 하지 않았겠니.
엄마의 잔소리를 한 바가지 얻어먹으면서.
“이놈아,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닭똥을 묵는 사람이 세상 오데 있네!”
그러고는 귀한 당신의 아들 엉덩이를 당신의 손으로 한 차례 패주면서 덧붙이길
“에구 이 벌치 새끼야!” 하는 것 아니겠니.
이제 다시 눈을 비롯한 볼에서 우습게 빚어지는 표정을 가시고 현실로 돌아가자.
아빠의 애틋한 딸아! 시간이 없어 일기를 못 쓴다고 핑계를 대는 귀한 딸아!
오늘 갈무리를 하는 차원으로 벌치 아빠가 딱 한 마디로 당부하마. 젊은 날 지금 너보다 더 어린 나이 중학교 때 가진 아빠 삶의 좌우명이 뭔지 아니? 국어공책 산수공책 사회공책 가리지 않고 공책마다 맨 앞장에 써놓았던 어느 철학자의 말.
아빠도 커서 철학자가 될 거라고 가슴에 새긴 말 하나 이제 네게 네 동생 제 방에서 혼자 문 꼭 닫고 여행 다녀온 후 감정의 정리를 하는 이 시간에 네 동생 모르게 가만히 너한테만 알려줄 테니 꼭 실천해보렴.
“깨어있자!”
그래 이 말은 정신적으로 깨어있잔 말이다. 근데 육체적으로도 통하는 말이다. 사람들 다 자는 데 자지 말고 부지런히 일기를 매일같이 써 조금조금 너의 문장력을 늘여가다 보면 어느 즈음에 너는, 이 아빠가 푼수에서 언덕으로 언덕에서 벌치로 진화했듯 너도 또 다른 너로 변화하면서 마치 그 꽉 막힌 알을 까고 환한 세상으로 터져 나오는 새의 부화같이 자유롭고도 환하고 그러면서 아름다운 그런 기쁜 세상을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딸아! 당부컨대 젊은 날 아빠가 가졌던 좌우명을 너도 한번 가져보지 않겠니. 사랑하는 내 딸아 오늘 편지는 이것으로 갈무리한다.
“깨어있자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