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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실 세계가 일찍이 산출한 것들 가운데 최고로 자유롭고 최고로 아름다운 개성을 지녔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략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알렉산드로스 대제요. 전략전술의 천재이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영토를 정복한 그를 따를 자는 아무도 없소."
“키루스 대제가 창건하고 다리우스 시절에 세계를 제패한 고대 최초의 세계제국은 단 한 청년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진짜 오랜만에 잉여력 폭발해서 써보네요 ㅎㅎ 간만에 한번 달려보겠습니다. 논문 써야되는데 논문은 안 쓰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엄청난 스압이 예상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제 ( 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알렉산드로스 오메가, Alexander the Great)
1. 탄생! 알렉산드로스
기원전 336년, 이제 갓 스무살이 된 한 청년이 마케도니아라는 왕국의 왕위에 오릅니다. 마케도니아는 발칸반도 북부에 위치한 전제군주정 왕국이었는데 그리스 문명권에 속한 그리스 어권 국가였습니다. 당시 마케도니아는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인 필리포스2세 대왕의 정복으로 인해 그리스를 거의 제패한 상황이었죠.
필리포스 2세와 왕비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어려서부터 총명함과 탁월함이 남달랐고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지닌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전략적 감각을 터득했으며 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학에도 정통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친 스승이 무려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이죠(ㅎㄷㄷ;;;). 덕분에 알렉산드로스는 자연스레 문과 무에 모두 정통하게 되었고 타고난 호방한 성격으로 인해 절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었으며 성인이 되었을 무렵엔 이미 거대한 왕국을 다스리는 지배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알렉산드로스가 마침내 스무살의 이른 나이로 즉위하여 그리스의 왕이 되었을 때, 이 청년은 그 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거대한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2. 위대한 정복의 서막.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가장 거대한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페르시아 제국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의 황제는 당시 세계 인구의 무려 3분의 1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모든 왕들의 위에 존재하는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죠. 알렉산드로스는 바로 이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할 속셈이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쇠퇴기에 접어들어 내부가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리스와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국력과 인구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죠.
하지만 평생 승리만을 보아온 두려움을 모르는 이 청년은 이 거대제국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집니다.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와 그를 따르는 4만 군대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면서 그 위대한 정복의 서막이 열립니다.
3. 이수스로 가는 길.
당시 그리스와 겨우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역(지금의 터키)은 페르시아 제국 영토 내에서도 비교적 방비가 허술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물론 어떤 나라도 설마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침공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알렉산드로스는 별다른 전투도 없이 너무도 손쉽게 소아시아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합니다.
첫째로 허를 찔렀다는 것, 둘째로 영토가 거대한 만큼 페르시아 제국의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미 관용정신을 잃어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정복지 주민들 대부분이 제국에 마음이 떠나 있었다는 것. 이걸 모두 알고 있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여기까지는 식은죽 먹기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진짜 고비가 다가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죠.
기원전 332년, 2년 동안 거칠 것 없었던 파죽지세의 알렉산드로스의 진군을 드디어 페르세폴리스의 왕좌에서 일어난 다리우스3세의 10만이 넘는 대군이 가로막으며 드디어 알렉산드로스에게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현재는 터키의 작은 마을인 이스켄데룬,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의 접경지역인 이수스가 대제국의 황제와 그리스의 왕을 맞이하는 결전의 장소가 됩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300에서 관대한 피어싱 대마왕으로 묘사되는 크세르크세스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임 ㅋ)
4. 이수스 회전
1) 양군의 병력규모
당시 알렉산드로스가 거느린 병력은 기병6천기를 포함하여 3만7천 에 달하는 전력이었고 이를 맞이하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3세의 병력은 이모탈(영화 300에서 유명해진 황제의 친위대) 1만, 기병 1만1천기를 포함하여 10만이 넘는 대군이었습니다(최대 15만).
고대 페르시아의 기록으로는 100만까지도 나오는데다 다리우스3세가 병력 소집령을 내렸을 때 수도 페르세폴리스에만 30만이 넘는 병사들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페르시아의 기록은 고대 중국과 마찬가지로 툭하면 100만 대군을 언급하는 등 말도 안되는 뻥튀기가 심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전세계의 인구가 1억을 겨우 웃도는 수준인데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체 인구 또한 3천만~4천만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이 모든 경우를 고려할 경우 비전투원과 보급부대를 모두 제외한 실제 페르시아의 한 전장에서의 가용 전투병력은 절대 15만을 넘지 않는다는데 대부분 학자들이 견해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어쨌든 학자들의 견해로는 이 이수스 회전에 동원된 페르시아군의 수는 11만 전후로 추산되며 단순 병력의 수로 비교할 경우 이수스 회전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절대적인 열세였다는 건 분명했고 병력차가 세배 가까이 났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2) 압도적인 돌격
양군은 피나루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대치합니다. 페르시아의 대군은 넓은 2열 횡대로 진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1열 횡진인 마케도니아군의 진형보다도 진형의 길이가 훨씬 더 길었습니다. 무려 2km에 달하는 10만 대군 진형의 사이에서 다리우스3세는 겁도 없이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넌 야만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생각밖에 없었으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전투의 주도권은 개전부터 종전까지 시종일관 알렉산드로스가 쥐고 있었습니다.
다리우스는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이 허술하다고 판단, 1만의 기병력을 모두 우익에 배치하여 우선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을 허물어 뜨린 후 10만 보병을 전부 도강시켜 마케도니아군을 끝장낼 속셈이었습니다. 또 왼편 산기슭에 한 부대의 경보병대를 배치하여 마케도니아군의 배후를 노릴 작정이었죠.
그리고 다리우스의 이 모든 작전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사전에 모두 간파당했습니다.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이 약해보인 것은 사실 알렉산드로스가 의도한 것으로 좌익에 소수의 기병전력만을 배치하여 적의 기병력을 유인하기 위함이었고 우측 산기슭에 매복해 있는 경보병대는 사전조사를 철저히 한 알렉산드로스에게 간파당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립됩니다.
예상대로 다리우스의 우익 기병대가 도강을 하면서 전투가 개시되자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맞이하는 자신의 좌익 기병대에게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비스듬한 대각선 진형을 유지한 채로 천천히 후퇴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이것으로 좌익이 초전에 무너지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이제 기병력 없이 보병만 남게 된 페르시아의 본영에는 자신이 직접 최정예 기병대 전부를 이끌고 돌격합니다.
처음에는 우회기동인 것처럼 보였던 마케도니아군의 기병대를 서둘러 쫓아가던 페르시아군의 좌익 보병대는 그 때문에 진형이 벌어져 느슨해져 버렸고 바로 이 때 알렉산드로스는 갑작스레 기병대의 방향을 틀어 느슨해진 페르시아군 좌익의 진형 한 가운데를 송곳처럼 뚫어버립니다. 이 돌격 한 방으로 페르시아군의 좌익은 진형이 완전히 깨져버려 무력화 되어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도강에 성공한 마케도니아군 중장보병대의 공격까지 받아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 돌격이 얼마나 빠르고 강했는지 페르시아군의 좌익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동안 페르시아군 중앙 본영은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고 우익의 기병대는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을 깨기는 커녕 도강 이후 홀로 고립되어 난전을 벌이는 중이었죠.
“뭐야 얘네. 무서워 ㄷㄷ”
다리우스는 자신의 좌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자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 버렸고 알렉산드로스는 냉정한 판단을 내려 다리우스를 쫓지 않고 기병대를 그대로 우회 돌격시켜 페르시아군 본영을 배후에서 타격하여 이미 전의를 상실한 페르시아군에 결정타를 가합니다.
이수스 회전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대로 일방적인 전개로 흘러가 끝이 났고 페르시아군은 4만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지리멸렬, 퇴각합니다. 반면 마케도니아 측의 사상자는 대부분 좌익에 몰려 있었고 그 피해도 6천명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5. 파죽지세
격렬했던 이수스 회전 이후에도 알렉산드로스의 기세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지중해를 따라 계속 남하한 알렉산드로스는 파죽지세로 시리아 전 지역(지금의 중동)을 복속시켰고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인 티루스 (이 티루스는 이후 그 유명한 살라딘마저 공략을 포기했을 정도) 마저 다리를 놓고 수많은 갤리선들을 동원한 해상봉쇄로 함락시켜 마침내 시리아 전체를 공략하는데 성공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서 더욱 남하합니다. 내친김에 이집트까지 단번에 정복할 요량이었죠. 가자에서 벌어진 이집트 공략 최대의 이벤트인 가자공방전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요새 전체를 포위하고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판단되는 남문쪽에 토성을 쌓고 공격을 집중하여 세번의 공세끝에 드디어 가자를 떨어트립니다.
어떠한 난공불락의 요새도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불락(不落)을 자랑할 수 없었으며 어떠한 군대도 그의 진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가자에서의 저항을 끝으로 이집트 전역마저 항복, 알렉산드로스는 이때부터 태양신의 아들로 칭송되며 살아있는 신으로서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자로 떠받들려집니다.
6. 최종결전의 땅으로
원정을 시작한지 불과 3년도 안되어 소아시아와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한 이 위대한 정복자에게 만족이라는 단어만큼 거리가 먼 것은 없었습니다. 이집트를 정복한 해가 지나가기도 전에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지에서의 재편성으로 인해 4만7천까지 불어난 사기충천한 병력을 이끌고 드디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향해 진군합니다. 키루스 대제가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이래 단 한번도 외세의 침입을 허락한 적이 없는 제국의 중심,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처음으로 적국의 군대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역사상 유래가 없던 이 미증유의 위기 앞에, 다리우스 황제는 또 다시 병력을 있는대로 끌어모아 알렉산드로스를 저지하러 출격합니다.
티그리스강 연안에 인접해있는 가우가멜라 평원. 무너져가는 위대한 제국의 생사와 한 영웅의 미래를 결정할 일대결전이 이곳에서 벌어집니다.
7. 결전. 가우가멜라.
1)양군의 병력규모
고대 모든 뛰어난 전략가들이 으레 그렇듯, 알렉산드로스도 양보다는 질을 선호했으며 광대한 정복지와 인구를 소유하게 된 후에도 5만 이상의 병력을 운용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은 기병 7천을 포함하여 4만7천에 달해 이수스 때에 비해 1만 가량 병력이 더 늘어난 상태였고 다리우스 3세의 병력은 이번에도 기병력 1만2천과 이모탈1만을 포함하여 10만에 달하는 대군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200대의 전차와 15마리의 전투 코끼리까지 동원하여 그야말로 총력을 다 기울인 셈이었죠.
페르시아 측 사료에서는 이번에도 100만 대군이라고 뻥을 쳐놨지만 학자들의 추산으로는 이때 동원된 페르시아군의 총병력은 9만~10만 사이로 오히려 이수스 때보다 병력은 더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지중해 지역의 정복지를 모두 잃고 민심도 떠난 탓에 이제는 더 이상 10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을 꾸리기 버거워 진 것이죠. 하지만 그래도 마케도니아군에 비하면 두배에 달하는 대병력이었고 이수스 때처럼 방심하지도 않았으며 고대 최강의 병종인 전차와 코끼리까지 감안할 경우 이수스 때보다 질적으로는 더 강해진 부대였습니다.
3) 신중히 진형을 짜는 다리우스
다리우스는 이수스 회전에서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무시무시한 기병돌격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중앙의 진형을 굳건히 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최정예 보병대와 이모탈, 궁수들을 모두 진형 중앙에 배치했고 전체 부대의 좌익과 우익에는 각각 기병을 포진하고 전차와 코끼리를 기병대의 선두로 좌우에 배치하여 좌익과 우익을 모두 강화하여 진형 전체를 탄탄히 만들었죠.
알렉산드로스는 중앙에 팔랑크스, 중장보병을 중심으로 두고 좌우익에 기병을 배치했는데 오른쪽에는 자신이 직접 최정예 기병대와 파이오니아, 마케도니아 경기병을 지휘하고 왼쪽날개에는 장군 파르메니온에게 테살리아와 그리스 용병, 트라키아 기병대의 지휘를 맡깁니다. 그리고 좌우익의 균열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중앙의 팔랑크스를 이중으로 배치합니다.
다리우스의 전차돌격으로 드디어 전투가 시작됩니다. 다리우스는 먼저 코끼리와 전차로 마케도니아군의 진형을 흔들고 그 후에 상황을 봐서 좌우익의 기병을 모두 돌격시켜 승리를 굳힐 셈이었죠. 이번만큼은 다리우스도 상당히 신중했습니다. 하지만 다리우스의 바람과 달리 코끼리는 별 활약도 하지 못했고 믿었던 전차부대는 마케도니아군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전차와 코끼리가 모두 방향전환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에 대비해 미리 병사들을 훈련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전차가 돌진해 오자 마케도니아군 보병대의 1열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져 길을 열었고 그 틈으로 전차부대가 그대로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2열의 투창공격으로 전차부대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괴멸되어 버립니다.
다리우스는 여기서 잠깐 망설이지만 결국 내친김이라 좌우익 기병들을 모두 돌격시킵니다. 무려 1만이 넘는 기병대가 좌우에서 돌격해 오는 상황. 이 아찔한 상황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침착하게 좌우익의 진형을 비스듬히 유지한 채 뒤로 물립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중앙은 전진시킵니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좌익과 우익은 따로 놀면서 점점 본영에서 멀어져 갔고 다리우스가 있는 중앙은 알렉산드로스의 중앙과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페르시아군은 점점 더 마케도니아의 날개 쪽으로 밀고 내려왔고 누가 보아도 상황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불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페르시아군의 기병대가 너무 깊이 들어갔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었죠. 당시 전장은 대군의 이동으로 인해 모래먼지로 가득차 있어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이 틈을 이용, 몰래 몇 부대의 장창병을 따로 빼어 좌우익의 기병을 지원하게 합니다.
모래먼지를 뚫고 페르시아 기병대가 마케도니아 군의 좌우익에 이르렀을 때 이들을 맞이한 것은 장창을 거머쥔 중무장 보병대를 측면에 달고 있는 보기병의 혼성부대였습니다. 이 장창병의 갑작스런 가세로 인해 페르시아의 기병대는 마케도니아군의 좌우익 기병대를 돌파할 수 없었고 결국 난전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때, 거의 동시에 날랜 경보병들과 남은 정예기병들을 모두 이끌고 알렉산드로스의 필살의 돌격이 다리우스가 있는 중앙에 퍼부어집니다. 궁수들이 먼저 순식간에 무너지고 정예보병이 무너지고 이모탈도 무너집니다. 이를 본 페르시아군의 좌측 기병대가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도우러 가려 하지만 이것마저도 알렉산드로스의 예상에 들어가 있었던 바. 돌격시 따로 빼놨던 몇 부대의 경장보병대가 미리 뒤로 빠져 수비를 굳힌 상태였기 때문에 페르시아군의 좌측 기병대는 결국 고립되어 다리우스를 구하러 가지 못합니다.
이수스 회전의 악몽이 재현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사기적으로 빠르고 강력한 돌격으로 인해 이번에도 다리우스가 있는 중앙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페르시아 보병대의 좌측과 우측이 중앙을 도우러 가기도 전에 중앙이 무너져 버리고 다리우스는 더 이상 전투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어 결국 또 다시 전장에서 급히 달아나 버립니다.
“얘네 진짜 뭐임 ㅜ”
다리우스가 달아나자 자연스레 페르시아군의 중앙도 모두 지리멸렬하여 도주하기 시작, 좌익의 기병대 또한 패주합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전장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던 우익 기병대만이 마케도니아군의 좌익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죠.
이 다리우스를 추격하려는 찰나, 알렉산드로스는 좌측을 지휘하고 있던 파르메니온으로부터 구원요청 전갈을 받게 됩니다. 이때 파르메니온이 이끄는 좌익은 팔랑크스와 기병대의 합동방어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너무 밀려 페르시아 기병대에게 밀리고 있었고 결국 팔랑크스 부대의 진형이 둘로 갈라져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를 잡느냐 포기하느냐의 선택을 해야했고 결국 다리우스를 깨끗이 포기하고 좌측으로 달려가 페르시아의 잔당들을 마저 소탕한 후 다리우스 추격을 재개합니다.
황제의 최후의 몸부림은 결국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페르시아 군은 집계조차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괴멸했고 알렉산드로스 측의 사상자는 고작 4천을 헤아리는 정도였습니다.
고대최초의 제국의 숨통을 사실상 끊은 이 가우가멜라 전투로 인해 페르시아는 더 이상 저항할 모든 힘을 잃어버립니다.
8. 대제(大帝). 알렉산드로스
잔당들을 소탕한 후 전후처리를 파르메니온에게 맡긴 알렉산드로스는 계속해서 다리우스를 추격했으나 결국 다리우스를 붙잡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다리우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리우스는 아직도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동쪽 영토로 달아나 거기서 숨을 고르고 다시 군대를 규합해 알렉산드로스에게 반격하려 했으나 페르시아의 샤트라프(총독)들은 이미 다리우스를 더 이상 따르지 않았습니다. 가우가멜라 회전의 결과가 페르시아 동부로 퍼지는 속도와 비슷하게 페르시아 동방의 총독들의 항복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더 이상 별다른 저항 없이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하였고 그 즉시 페르시아 제국의 샤(황제,왕 중의 왕) 로 즉위했으며, 다리우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동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박트리아 지역까지 쫓겨나 결국 거기서 부하 총독인 베수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기원전 330년, 키루스 대제가 창건하고 다리우스 시절에 고대 세계를 제패했던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의 찬란했던 역사는 이렇게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의 비참한 죽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세계는 이 순간, 한 명의 위대한 황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페르시아 제국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었던 그리스의 일개 왕에 불과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이 순간부터 위대한 대제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되며 태양신의 아들, 파라오, 왕 중의 왕, 역사상 가장 위대한 1인 으로 불리게 됩니다.
알렉산드로스 오메가( 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
이때 그의 나이 불과 26. 동서 융합 정책으로 헬레니즘 문명의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되는 이 제국의 초대황제는 아직도 이토록 젊었으며 천하 만민이 앞으로 수십년간 이어질 이 관대한 황제의 치세를 축복하고 찬미하였습니다.
9. 인도 침공
그러나 이 영웅의 치세는 세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리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욕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당시 세계 최강의 국력, 최대의 영토, 최다의 인구, 최고의 문명을 보유한 제국의 지고무상의 황제, 살아있는 신이었으나 그의 가슴은 여전히 정복욕으로 불타고 있었고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거대 문명 지역은 페르시아와 그리스, 이집트, 인도, 동아시아의 황하유역 뿐이었고 이 중 황하유역은 드넓은 사막과 고원으로 인해 다른 문명지역들과 동떨어져 있어 당시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미지의 지역이었습니다. 이러니 알렉산드로스의 다음 목표가 인도로 좁혀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당시 세계의 중심은 페르시아였고 이 페르시아를 제패한 이상 세계를 제패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마저 정복해야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인도를 점령한 후 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당시 떠오르고 있던 신흥문명국인 카르타고와 로마마저 정복하여 당시 세계에 존재하던 모든 문명국을 모조리 지배할 속셈이었죠.
그는 아직도 젊었고 시간 또한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완전 지배를 위한 화룡점정, 그 첫 시작인 인도정복은 알렉산드로스의 예상과는 달리 최악의 결말을 초래하게 됩니다.
기원전 326년, 알렉산드로스의 나이 서른이 되던 해,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전략 단위인 4만~5만 사이의 병력을 이끌고 인도로 진군합니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의심할 바 없이 당대 최강이었고 무적이었으나 문제는 전투력이 아닌 다른데에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북부 인도를 횡단하여 서북 일대를 석권합니다. 당시 인도는 수많은 나라들이 난립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군사력이 막강하긴 했으나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탁실라, 제룸 두 왕국을 붕괴시키고 인도 서북부 지역을 모두 석권한 후 인더스 유역의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켰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도저히 더 이상 인도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됩니다.
덥고 습한 기후와 생전 처음 겪어보는 말라리아라는 질병으로 인해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금방 지쳐버립니다. 전투에서는 계속 이겼으나 전투에서 잃은 병사들보다도 전염병, 탈영 등으로 잃는 병사의 수가 더 많을 지경이었죠. 군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고 그의 군대는 도저히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지경에 빠져버립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큰 피해를 입고 회군을 결정합니다.
10. 영웅의 죽음
기원전 323년, 인도에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정서불안과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성격은 괴팍해졌고 심지어 충신들을 처형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곧 열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34세에 맞이한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사인은 인도 침공으로 인해 얻게 된 말라리아 감염이었죠.
온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 또한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는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 내 손을 밖으로 꺼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결국 죽을 때는 빈손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적법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그의 사후 제국은 분열되어 버립니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이 아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서거 직후 태어난 갓난아기였고 결국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군들이 왕을 칭하며 제국을 쪼개버립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마케도니아 왕국,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리시마코스 왕조로 4분되어 버립니다.
고대 최강,최대의 제국을 정복한 이 젊은 정복자는 후에 몽골의 무시무시한 정복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천년 동안이나 고대세계 모든 정복자들이 도달하기 위한 궁극의 목표였고 고대 모든 위대한 전략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사후 지중해 세계와 중앙 아시아에는 알렉산드로스 신드롬이 불어 너나 할 것 없이 영웅,정복자가 되길 꿈꿨으며 실제로 그의 전술을 철저히 연구한 카르타고의 위대한 명장 한니발은 로마와 한판 자웅을 겨루기도 하는 등 이후 세계에는 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되며 2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이 이름은 전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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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참 무지하게 많이도 썼네요. 올해 들어 최고로 잉여력 폭발한 날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긴 글 인내심 가지고 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
좋은 하루 되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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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워낙 재미없었죠ㅎ
오~~~~~~~~~~~~오늘도 잘읽고가요~~~팬입니다^^
저도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
지금 지하철 내려야하는데 지나처버렸습니다 책임 지세요^^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까지 몰입하시다니....ㄷㄷㄷㄷ 너무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 ㅠ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이런 댓글 너무 좋습니다 ^^
정성스런 맛깔나는 글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
재밌어요, 해박하시네요, 고맙고요
별로 해박하지 않아요 ㅎ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왠지 모르게 한나라의 곽거병이 생각나네요...
화끈함과 미친 돌격, 요절까지.....지금보니 비슷한 점이 꽤 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