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내가 가고 싶었던 통미산 자락 목현천에 가서 몰장구치고 여치보고 즐거웠던 것도
서산으로 해넘어가 어둑해지면 가꼴 언덕길 한 초가집에 들어가 저녁먹고 누울 수 있었던 것도
이름모를 친구들과 어울려 가을 통미산 등성이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큰 개울인 경안천에 타이어 주브들고 가서 저녁놀이 질 때까지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떵쿵리 여울 옆 고인물에 가서 조그만 말조개 잡았던 것도
학교 운동장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배꼽터진 공을 차고 놀 수 있었던 것도
다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2816) '우시장'이 '문화 시설'로…광주 지역 사회에 활력 / SBS - YouTube
6학년 1학기 중간 쯤 서울로 이사와 전차위에서 전선에서 불꽃튀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대장간이 즐비한 길을 걸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등교할 수 있었던 것도
동대문에서 종각 화신백화점 신생백화점까지 활보하며 구경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학입학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져 삼수를 하면서 학원비 걱정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 전차, 개통에서 운행종료까지 1899~1968ㅣSeoul Tram 1899~1968
군에 입대하려 서울 경의국민학교에 집합했습니다
그 때 아버님이 사다 준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논산에 도착하여 수용연대에 대기 중에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백여명이 공터에 모여 순서대로 신체검사를 받던 중
어떤 기간병이 내 청바지가 탐이 났던지 나를 남으라고 하였습니다
남들은 다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기간병 사무실로 불려갔습니다
기간병 그 당시 조상병입니다. 청바지를 벗으랍니다
벗으니 헌 바지를 주며 이 것 입고 다니라고 그리고 남들한테 청바지 얘기 하지 말라고 합니다
며칠 후 훈련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내 병과가 바꼈네요
방공포병으로 바꼈습니다
청바지 덕분입니다
광주로 가서 6주 훈련 마치고 부산으로 발령받아 군 생활을 잘 보냈습니다
여러분도 휴가 후 복귀하면 떡과 술을 사갔는지요
그 당시 휴가 마치고 돌아오는 동료가 가져오는 떡과 술을 기다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야 오늘 누가 휴가에서 돌아온대
아 그래? 오늘 떡 좀 먹겠구나
그 당시 월급은 700원 정도였고 군인에게 라면 땅이나 빵은 고급식품이었습니다
저도 떡 박스와 대선소주병을 들고 150미터 높이의 산을 오르느라 힘들었습니다
내무반 문을 열고 동료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때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가져다 줄 떡과 술병을 들고 부대가 있는 산길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다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뉴스 제 1042호-태종대
세상 어려운 줄 모르는 내가 학생신분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도
그리고 딸을 나아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충주 상고에 교사로 임용된 것도
전세로 살다 그럭저럭 15평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아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다 부모님 덕분이었습니다
이제부모님은 내 곁에 걔시지 않습니다
짧았지만 지방에서 살았던 탓에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이 많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올랐던 북한산의 백운대 강화도의 마니산
그 때가 그립습니다
지금 나는 자녀들의 얼굴보기가 힘듭니다
부모님만큼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해서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과 나눌 추억이 별로 없네요
집사람이 먼저 떠나고 나니 자식들과 더 멀어집니다
(2816) Vicky Leandros(비키 레안드로스) "'Casa bianca(하얀 집)" White House
첫댓글 좋은추억입니다
잘보고갑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지요. 추억은 아름답지요. 추억 속에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마음 공감이 갑니다.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고 즐겁고 신바람나는 나날이 되길 바랍니다.. 통미 우시장, 경안천, 전차, 추억의 한 컷이지요. 떵쿵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