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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찾고 기다리신다
읽을말씀: 눅15:1-32; 요15:5
주제말씀: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첫째, 잃은 양과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비유(1-1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15:10)
누가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까? 모든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가오니.”(1절) 하지만 누가 이를 보고 수군거렸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1절 상)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세리나 죄인들을 영접하거나 음식을 같이 하는 것을 금기시 해왔는데, 예수께서 이 금기를 공공연히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2절 하)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슨 비유를 베풀어주셨습니까? 세 가지 비유, 곧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4-7절)와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8-10절),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 비유(11-32절)입니다.
먼저, 잃은 양 비유에서, 목자는 무엇을 찾아내기까지 결코 쉬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잃어버린 양 한 마리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4절) 얼핏 보면 100마리 중 하나일 뿐인데, 왜 그토록 찾아다닌 것입니까? 목자에게는 100마리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양이 다 소중하고 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머지 99마리를 들에 두고 찾아 나섰으며,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4절 중) 찾은 후에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5,6절)
또한, 잃은 드라크마 비유에서는, 여인이 무엇을 찾아내기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찾았습니까? 잃어버린 드라크마입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8절) 얼핏 보면 10개 중 하나일 뿐인데, 왜 그토록 찾은 것입니까? 그 여인에게는 10개 중 하나가 아니라, 이 하나가 없이는 온전한 하나를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로,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반지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유대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아내를 맞이할 때 사랑의 증표로 드라크마 열 개를 줄에 꿰어 주는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한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 여인은 어찌 했습니까? 누구보다도 기뻐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즐겼습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9절)
이 두 비유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1/100이나 1/10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찾아내까지 쉬지 않으신다는 점과 이처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나아가며, 또한 그들을 찾아내기까지 결코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11-32절)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2)
세 번째 비유에서는 누구를 잃어버렸습니까? 두 아들 중 둘째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둘째를 잃어버렸다가보다는 둘째가 스스로 아버지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아비에게서 받아갔습니까? 자신의 상속분입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12,13절)
떠나서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허랑방탕하여 전 재산을 모두 다 탕진해버린 후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3-16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아도, 막상 떠나면 행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하)
이에 둘째 아들은 어찌 했습니까?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무엇을 돌이켰습니까? 아버지께로부터 멀어졌던 그의 마음입니다. 즉 그는 아버지를 생각해냈고 어떤 모양으로든(설령 품꾼일지라도) 아버지께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7-19절)
또한 어떻게 했습니까? 일어나서 돌아갔습니다. 결심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즉 자신이 떠나왔던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20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스스로 마음을 돌이키고, 또한 일어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하나님을 떠나간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어떻게 해주십니까? 비유 속 아버지처럼, 달려와서 안아주시고,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절 하) 제일 좋은 것들을 채워주시면서 환대해주십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2절)
어디 그 뿐입니까? 돌아온 우리를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3,24절)
참고로, 앞선 두 비유가 직접 찾아나서는 것에 강조점이 있었다면, 마지막 비유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돌아오기까지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직접 찾아나서는 것과 동시에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한편. 맏아들은 이를 보고 어찌 했습니까? 몹시 분노하면서,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28절 상)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9,30절)
어째서입니까? 의무만 다할 뿐 권리를 누리지 못했으며,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31절) 아버지도 동생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2절)
이는 1차적으로 누구를 가리킵니까?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1,2절).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깨닫지도 누리지 못하면서,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않는 우리일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의무만 다할 뿐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마저 식어져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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