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계몽주의가 한창일 때 일반인들도 생활 속에서 철학을 사유하게 되었다. 철학이 일반인들의 생활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철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게 되었다. 지금의 아이돌만큼의 인기라고 할까.
철학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게 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걷기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걷기 보다 한 차원 높은 산책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있는 사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철학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18세기 유럽의 일반적인 도시 문화는 귀족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천박하게 생각했던 때였다. 평민들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걷기보다 마차를 활용했었다. 철학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별한 학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시발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도시민들이 걷기를 통해 즐거움을 찾고 더 나아가 산책을 통해 정신적인 위안과 자연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얻게 되면서 산책하는 법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독일이 자랑하는 철학자 괴테는 주변 사람들이 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알아맞혔다고 하지 않았나. 산책은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제 모든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산책이 주는 유익함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여 자연을 만낏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원한다면 산책만큼 좋은 것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신체적 활동 능력이 둔해졌다. 준비 운동 없이 달리기를 했다가 종아리 근육이 걸려 한동안 좋아하던 운동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니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신체적 움직임 중에 산책만 한 것이 어디 있으랴. 물론 사람마다 운동에도 취향이 다르겠지만 산책이 주는 유익함은 경험한 자만이 몸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산책하는 방법이 따로 있느냐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산책하는 법』의 부제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산책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산책은 걸으면서 되찾는 나에 대한 감각이다. 산책을 기계적인 발 놀림으로 생각한다면 단지 걷기 운동에 불과하다. 반면에 걸으면서 자연과 한 몸을 이루는 나를 찾을 수 있을 때 산책은 철학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
시선을 돌려보면 우리 곁에는 다양한 자연이 손짓하고 있다. 산과 계곡, 초원과 밭, 무수히 많은 식물들과 동물들.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산책이다. 그렇다고 산책이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 산책이 주는 유익도 크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 거리에서 즐비한 건물 사이로 산책하는 느낌은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작은 마을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집중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도시마다 산책길을 만들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도 아직 가보지 않은 멋진 길이 있으리라. 꽃 피는 봄을 맞이하여 산책할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