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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유와 향품에 관한규례
출 30:22-38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너는 상등 향품을 가지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과
24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가지고
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26 너는 그것을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27 상과 그 모든 기구이며 등잔대와 그 기구이며 분향단과
28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29 그것들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
3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3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32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33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라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36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37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38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출 30:22-38 /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다시 이르셨다. 23) `가장 좋은 향료를 이렇게 장만하여라. 곧 나무에서 흘러 나와 엉긴 몰약 약 5.7킬로그램과 향기로운 육계향 약 2.8킬로그램과 향기로운 향초 줄거리 약 2.8킬로그램과 24) 들계피 약 5.7킬로그램과 올리브 기름 약 4리터를 마련하여라. 25) 이렇게 준비한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만들어라. 향 제조공이 향을 만들듯이 이것 모두를 잘 섞어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만들어라. 26) 이렇게 만든 기름을 만남의 장막과 계약궤에 발라 그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27) 상과 그것에 딸린 모든 기구들, 등잔대와 그 등잔대에 딸린 모든 기구들, 분향제단, 28) 번제단과 그것에 딸린 모든 기구들, 물두멍과 그 받침대에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발라라. 29) 이렇게 기름을 발라 그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이 가장 거룩한 물건이 되어 거기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거룩하게 구별되리라. 30) 또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그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그들이 나를 모시는 제사장 일을 보게 하여라. 31)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여라. `이 기름은 너희가 대대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데에만 사용하여야 하는 기름이다. 32) 이 기름을 다른 사람의 몸에다 바르지 말아라. 또 이 기름을 만드는 방식대로 다른 기름을 만들지도 말아라. 이 기름은 거룩한 기름이니 너희는 이 기름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 33) 무릇 이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을 만드는 사람이나 이 기름을 제사장이 아닌 사람의 몸에 바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당할 것이다.' 34) [거룩한 향]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때죽나무와 향조껍질과 풍지향 등 향료 재료와 유향을 똑같은 양으로 장만하여라. 35) 그런 다음 이 모두를 향 제조공이 향을 만들듯 소금을 넣고 잘 섞어 깨끗하고 거룩한 향을 만들어라. 36) 이렇게 만든 향을 조금씩 뽑아서 내가 너하고 만나기로 정한 만남의 장막 안 계약궤 앞에 놓아두어라. 이 향을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37) 이렇게 만드는 향은 나 여호와를 섬기는 데 사용하는 거룩한 것인 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사로이 사용하려고 앞에서 말한 방식대로 향을 만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38) 그 냄새를 즐기려고 이 방식대로 향을 만드는 사람은 겨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당할줄 알아라.'
거룩한 관유와 거룩한 향 제조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지시하십니다.
거룩한 관유 제조(22-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고 지시하실 뿐만 아니라 재료와 양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몰약 오백 세겔, 그 절반의 육계 이백오십 세겔, 향기로운 창포 이백오십 세겔, 그리고 계피 오백 세겔, 그리고 감람기름 한 힌을 섞어 이 거룩한 관유를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십니다. 거룩한 관유의 제조자는 모세가 아니라 여호와이십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관유가 거룩한 이유는 유일한 출처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관유의 용도(26-33)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스스로 거룩하지 않습니다.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은 땅의 재료들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기구들을 다른 일반적인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거룩한 관유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관유의 유일한 출처는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관유를 바르는 기구들마다 모두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도 거룩한 관유를 바른 후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라고 특별한 존재들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여호와께서 구별하여 거룩한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는데, 그 방법이 거룩한 관유를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관유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령만이 세속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하며, 죄인을 거룩한 일꾼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최우선은 성령을 힘입는 것입니다. 거룩한 관유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섬기도록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이므로 다른 용도나 다른 목적을 위한 제조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는 하나님의 총회에서 쫓겨날 것입니다(갈 3:3).
거룩한 향품 제조와 용도(34-38) 거룩한 관유의 재료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 향 재료를 구체적으로 모세에게 지시하십니다.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과 유향으로 만든 이 향을 여호와께서 “지극히 거룩하니라”라고 규정하십니다. 이는 오직 분향단에서 사르는 목적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회막 안 증거궤 앞은 분향단이 놓인 자리이며, 이곳에 두라는 말씀은 오직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목적으로만 이 향을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적용: 거룩의 다른 의미는 구별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구별되어야 할지 각자의 상태를 생각해 봅시다.
진흙 구덩이에 빠졌을 때 양과 돼지는 각기 다르게 반응합니다. 진흙탕에 빠진 양은 그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양은 그곳에서 몸이 빠져 나올 때까지 울며 몸부림칩니다. 반면에 돼지는 진흙 구덩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구덩이를 찾으면 만족스럽게 꿀꿀거리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실제로 구덩이에서 끌어내려고 하면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의 역사 없이는 죄인은 본질적으로 마치 돼지와 같습니다. 죄인은 악과 유혹을 찾아다니며 죄에서부터 구원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성경에서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죄의 진흙 구덩이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 설 교 >
거룩한 향기름과 다섯 가지 기도의 비밀
출애굽기 30:22-38 / 이상호 목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사 짓게 하신 성막은 직사각형입니다. 그 직사각형 안에는 조그만한 정사각형의 지성소가 있고 그보다 큰 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 대제사장이 일년 일차씩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드리워 있고 그 휘장 바로 앞에 향단(금으로 두른 조그만 단)이 있고 제사장이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씩 들어갔고 일년 내내 늘 향연을 피웠습니다. 향단을 중심으로 하여 그 오른편 앞쪽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떡상에는 온 이스라엘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이 떡이 놓여 있고 매주 새떡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물려낸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왼편 앞쪽에는 촛대가 있었습니다. 촛대는 금으로 일곱 가지마다 일곱 잔이 만들어 졌는데 감람기름으로 채워서 늘 불을 밝혔고(출 30:23-24) 기름은 감람나무에서 제일 먼저 짜낸 상등품을 사용했습니다.
이 성막은 오늘날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곧 영생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낳으시고 만드시고 건사하십니다. 지성소가 성부 하나님을 가르친다면 떡은 "내가 곧 생명이 떡이니"(요 6:35)라고 말씀하신 성자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갈라졌지요. 그날로부터 예수믿는 모든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의 평화의 교제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촛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보내주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가르칩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불붙여 주십니다. 우리의 심령에 빛으로 임하사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빛과 진리가운데로 늘 인도해 주십니다. 교회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품속에 안겨 삽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얼마나 안전합니까? 사도 바울은 롬 8:5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불안전하고 말썽많은 세계속에 살아도 예수안에 있으면 항상 생명충만, 평안충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인간의 역할을 살펴봅시다. 성막안에 인간적인 요소는 향단밖에 없습니다. 향단은 무엇을 가르킵니까? 계 5:7-8에 보면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고, 또 계 8:3에는 "또 다른 천사가 오매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령(성령)과 진정(진리 곧 예수이름)으로 예배드리듯이 어린양 되신 예수님과 천사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제일 기뻐하십니까? 구속받은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사랑으로 드리는 찬양, 그것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즐기시는 향취는 구속받은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맡으시는 향연은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향연이란 원래 ‘모운다’는 뜻입니다. 향연 중에 제일 고급은 자연에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서 맡으십니다. 이 향수는 인공적인 싸구려가 아닙니다. 기계에서 만들어진 모조품 향연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는 거듭난 성도들의 영혼에서 울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냄새를 최고급 향수와 향연으로 맡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할렐루야! 기도는 정말 하나님께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에게도 무조건 좋은 것입니다. 성소에서 교회에서 우리 성도들의 역할이란 사실상 기도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향단에 태울 향품은 소합향과 나감향, 풍자향과 유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향품들을 동일한 중수로 섞어서 향연으로 태우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기도는 소합향과 같습니다.
소합향은 시리아 지방에서 나는 나무에서 얻는 향인데 치료제, 방향제로 쓰인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 몸과 영혼의 치료제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몸은 활력을 얻습니다. 새벽기도야 말로 건강의 비결입니다. 새벽공기가 좋은 것이 아니라 기도는 소합향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것입니다. 슬픈 날에 기도하면 기쁜 날이 옵니다. 환란 때에 기도하면 위로를 받습니다. 괴로울 때 기도하면 평안이 옵니다. 병들 때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이 세상에 치료보다 좋은 낱말은 드물 것입니다. 못쓸 것을 고쳐서 다시 쓸 때 얼마나 애착이 갑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를 고쳐서 쓰십니다. 쓴 물을 단물로 바꾸십니다. 마라를 나오미로 바꾸십니다. 쓰라린 인생을 희락의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아들이 일찍 죽어버린 나오미에게 손자를 안겨 주었습니다. 황무지에 장미꽃을 피우십니다.
우리는 모두 불모지였는데 지금 우리의 생이 얼마나 복되고 느긋하고 보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직장과 기업을 고쳐 주셨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나라를 돌이켜 주셨습니다. 기도는 소합향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사도 바울은 약 5:13-1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르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 어떤 문제도 기도하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회와 함께 기도하면 해결받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우리의 기도는 나감향과 같습니다.
나감향은 바다 소라과 조개를 빻아서 만든 향입니다. 기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가루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 정욕과 교만을 버리는 것입니다. 깨지고 부서지는 기도, 겟세마네 기도, 회개, 예방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내 속 사람이 나긋나긋하게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 베드로는 얼마나 설쳤습니까? 목에 힘을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몸에서 육적인 힘, 세상적인 힘을 다 빼 버렸습니다. 김이 빠져 파김치가 되었을 때 "나를 따르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에 힘쓰라"고 말씀하셨고, 순종하는 그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자기 잘난데 빠져 있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목에서 힘을 빼고 마음에서 교만을 제거해야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은혜를 얻습니다. 교만한 것은 하나님이 아시고 다음에 사람도 압니다. 기도할 때만 옛사람이 죽습니다. 눈물과 기도로만 혈기가 죽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뻣뻣한 사람을 부드럽게하여 하나님께 사로잡혀 쓰임받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기도는 풍자향과 같습니다.
풍자향은 단풍과 고무나무 뿌리에서 얻는 향인데 짐승들이 아주 싫어하는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뿌리 근원에서부터 토해내는 기도여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마늘 냄새를 싫어하듯이 기도는 마귀가 싫어하는 냄새입니다. 세상불의가 싫어하는 냄새입니다. 악한 세력이 기도냄새 때문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에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그런 것들이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심령에 뱀처럼, 두더지처럼 들어옵니다. 마귀는 권력도 넘어뜨립니다. 지성도 무너뜨립니다. 재산도 무너뜨립니다. 마귀는 그런 것들을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또 그런 것들로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풍자향의 기도입니다. 마귀는 기도의 냄새가 나면 물러갑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잘 안됩니까? 기도로써 쥐를 좇아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에 시험이 생깁니까? 기도로써 여우를 좇아야 합니다. 풍자향을 피우면 천사의 손이 임하므로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에 틈탄 도마뱀과 황충이 슬슬 기어나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마 17장에 보면 예수께서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이 간질병 환자를 낫게 하려고 했으나 능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건강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지 않고 구경만 하면 안됩니다. 기도의 모양만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써 마귀를 좇아낸 만큼 우리가 그 영역을 차지합니다. 지경이 넓어집니다. 사람의 영혼을 얻습니다. 우리 교회가 드리는 집단적인 기도의 힘으로써 영적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습니다. 복음전도와 세계선교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기도로써 실제로 귀신들을 좇아내는 경험을 많이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의 기도는 유향과 같습니다.
유향은 여리고 등지에서 많이 납니다. 약방에 감초격으로 많이 쓰이는 해독제입니다(창 43:11). 성도의 마음이야 말로 선과 악, 죄와 의가 맞부딪치는 근원지입니다. 롬 7:21-23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 마음은 항상 두 마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교회가 좋다가 싫다가 합니다.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마귀가 악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낙심하는 생각이 납니다. 절망스런 상황과 부정적인 사고들이 상처를 주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지킬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오직 기도뿐입니다. 기도할 때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독이 없어집니다. 은혜의 이슬이, 주의 빛난 이슬이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합니다. 빛나게 합니다.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기도에는 소금을 쳐야합니다.(35절)
소금은 성결하게 하고 방부, 조미도 합니다. 기도에서는 소금은 면함없는 말씀, 언약입니다. 마가 9:50에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약속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심 바랍니다. 반드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①기도의 향으로 몸과 마음과 생활을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초자연적인 치료하는 광선(말 4:2)입니다. 기도할 때 상처가 치유받고 병이 낫습니다. 암덩이가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몸과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건강과 활력을 얻습니다. 명랑하고 부요하고 강건한 삶을 창조합니다. ②기도의 향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부드럽고 겸손하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슥 4:6). 영적인 능력이 있으면 나를 쳐서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극복합니다. 하나님 앞에 온유하면 땅을 차지합니다. 직장과 사업과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③기도의 향으로 자녀에게 붙었던 마귀를 좇아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초자연적인 빛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드러나고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어두움 속에서 길을 발견합니다. 지혜와 모략이 떠오릅니다. ④기도의 향으로 무엇보다 냄새나는 자신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혼을 정련하는 초자연적인 불입니다. 내 속에 깃든 여러 가지 독들을 태워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세요.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산출합니다. 그리고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응답받을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기도의 5가지 비밀을 말씀드렸습니다. 기도의 향기 성전에 가득해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비밀 병기를 가지고 기도에 항상 힘쓰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골 4:2).
거룩한 관유와 여호와를 위하여 향을 만들라
출 30:22-38 / 조정재 목사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렇게 나라를 이루려고 하면 기본적으로 왕과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왕과 백성 사이에 맺는 언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는 1장부터 18장까지 여호와께서 애굽에게 어떻게 행하였는가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을 말했습니다. 그 후에 19장-24장까지 언약을 말씀하고 그 언약을 체결한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언약이 체결되면 왕과 백성이 함께 하는 도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5장부터 31장까지 여호와께서 회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회막이 완공되면 이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고 교제합니다. 회막은 조선 시대의 경복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 강론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보통 교회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간다, 또는 교회는 어떤 교회였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자주 합니다. 또 교회 건물에 대하여, 교회 구성원에 대하여, 혹은 교회안의 친교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합니다. 이것 외에도 교회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이야기들을 할 것입니다.
이처럼 그저 각자가 자기 생각으로 교회상에 대하여 말하는 것 보다는 성경이 기본적으로 교회의 모습이나 역할을 어떻게 말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출애굽기와 마가복음에서 나라를 세울 때 그 도성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서 교회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회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회막은 이름의 뜻대로 만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막과 비교하여 신약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것을 배경으로 회막을 짓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이 회막을 ‘언약의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지키며 함께 하는 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회막을 어떻게 지으라고 명하셨습니까? 먼저 회막을 만드는 식양에 대하여, 곧 설계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회막을 봉사하는 제사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명하신 것은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제사장을 통해 만나실 것임을 나타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을 통하여 서로 만나고 교제하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하고 나아가야 여호와 하나님을 회막에서 뵈올 수 있는 것일까요? 제사장이 분향단에서 향을 꺼지지 않게 사르므로 만납니다. 향을 사르는 것이 백성이 드리는 기도라면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그치지 않음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백성들이 임금님에게 항상 올렸던 상소문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알하려면 성전세를 내고 나와야 합니다. 성전 속전세를 드림을 통해서 회막에 나아오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속전세를 드림으로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됩니다. 그 나라 왕께 속하지 않고 속전세를 내지 않는 백성을 어찌 왕이 만나고 함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상소문을 올리며, 또한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서 서로 만나는 관계는 어떤 것인가? 물론 왕과 백성으로 서로 만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그 관계를 말하려면 물두멍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는 물두멍에서 제사장이 수족을 씻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남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이 물두멍에서 제사장이 수족을 씻으므로 정결한 신부처럼 곱게 단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옛날 조선 시대에 왕의 부인이나 궁녀들이 왕을 만나기 위해 자신을 깨끗케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회막에서의 만남과 교제가 최절정에 이르는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관유와 향에 대한 것입니다. 보통 ‘방점을 찍는다’라고도 하지요.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함께 읽으신 것처럼 관유와 향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22절-33절까지는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34절-38절은 지극히 거룩한 향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나누어 보면 22절-25절까지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 재료와 제조법에 대하여 말하고, 26절-33절은 관유를 사용하는 용도에 대하여 말합니다. 회막의 모든 기구에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도 발라서 그 직분을 거룩하게 합니다. 관유는 아무에게나 부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부터 제외됩니다.
그런 다음 34절-36절에 향을 만드는 재료와 제조법을 말합니다. 그 향을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만나는 증거궤 앞에 두라고 했습니다. 이 향은 지극히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방법대로 향을 제조해서는 안되고, 또 아무도 이 향 냄새를 맡아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성막과 성막의 모든 기구에는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까지 성막을 만드는 것을 설명했다면, 이제 관유를 발라야만 회막으로서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도 관유를 발라야 비로서 거룩하게 되어 자기 직무를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된다’는 의미는 갑자기 변하여 아주 깨끗하고 성결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이 한 바퀴 돌면 아주 깨끗한 천사처럼 변화가 되는 것을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경부고속도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실제로 고속도로를 만든 사람들은 건설노동자들입니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실질적인 도로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와서 테이프를 끊는 완공식을 한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테이프를 끊는 행위와 같이 거룩한 관유를 발라야만 비로서 성막으로서,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자기 기능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속한 회막으로 구별되며, 여호와께 속한 제사장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한 일 다음에 32절-33절에 경고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와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하라.” 다른 사람에게 관유를 붓지 말고 오직 제사장에게만 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부터 제외가 됩니다.
그 후에 34절 이하에 향을 만드는 법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향을 섞고 독특하게 만드는 법이 있으며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합니다. 유명한 식당마다 맛난 요리를 만드는 비법이 있듯이 여기 향을 만드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는 제조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향을 지극히 거룩하다고 하는 이유는 아무도 이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치는 이유는 성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향수나 향에다가 소금을 치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소금은 변하지 않는 언약의 의미가 성경에 있는데 그 의미인 것 같지만 우선적으로는 성결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향을 얼만큼 곱게 찧어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만날 곳인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향을 두는 장소가 지성소 안의 증거궤 앞입니다. 이 향은 관유를 말하는 것보다 더 거룩합니다. 이 향의 냄새를 맡으려고 향을 만드는 자는 여호와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집니다.
이렇게 관유와 향을 만들고 그 사용법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유와 향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관유와 향에 대하여 그런 것이 회막을 만들 때 있었다고 기억하거나, 하나의 지식을 더하기 위하여 아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까? 이는 마치 12제자들의 이름을 암송한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40편 5절-9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가 실로 많았습니다. 모든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감히 셀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다윗은 생각하며, 여호와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번제와 속죄제물을 요구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럼 여호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윗은 계속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가리켜 말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고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즉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물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더 기뻐하십니다. 이 언약의 법이 다윗의 심중에 있다고 합니다. 제사하는 것보다 주의 뜻을 행하고 주의 뜻을 많은 회중 가운데 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관유와 향을 통해서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회막과 제사장에게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하는 것과 증거궤 앞에 향을 두어 지극히 거룩하게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즉 가장 거룩한 곳은 증거궤 앞입니다. 증거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만납니다. 이곳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회막의 모든 것을 다 지었을 때 어떤 장소보다 향을 두신 증거궤 앞이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이것은 회막을 짓는 모든 목표가 바로 이 장소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향을 두고 그 냄새를 맡으며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이 나오는 곳입니다. 회막을 언약의 거처라고 표현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모든 제사의 목표도 지성소 안에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함께 교제함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외형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를테면 부부가 결혼하여 신혼집에 함께 살 때 그 집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가, 또 어떤 진수성찬을 함께 먹는가, 또 무슨 옷을 입고 사는가 이런 점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보다 부부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사랑의 언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부가 사랑으로 언약 가운데 함께 하는 것이 그 집으로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부가 나가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보며 문화생활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보다 서로 사랑하여 사랑의 말로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제물로 어떤 제사를 드려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증거궤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고 함께 언약을 통해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건 당연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포함된 것이겠지요.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가 사랑의 언약으로 교제하는 증거궤 앞이 가장 탁월한 향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표현하는 깨소금 맛이 바로 이 향을 둔 곳의 냄새가 가장 거룩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한 집에서 의례적으로 밥상을 차리고 아무런 의미나 마음도 없이 나누는 식사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무리 돈이 많고 훌륭한 지식이 있어도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좋은 옷을 사서 주고, 좋은 음식을 먹은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부부가 함께 사는 집에서 나타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집을 지으라고 할 때 모든 회막의 기구와 제사장의 옷 등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회막에 속한 것들보다 제일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은 증거궤 앞 향의 냄새를 맡는 것을 통해 언약의 말씀이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다고 오늘 출애굽기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출애굽기 본문의 말씀을 정리하고 이해하면 마가복음의 말씀을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8절-34절입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이런 저런 물음에 대하여 답변하신 것들이 마가복음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단지 예수님께서 현명하게 답변하셨다고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난처한 질문들을 예수님께서 교묘하게 빠져 나가셨다고만 하면 성전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아주 단순하게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뒤에 나오는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내용과 성전에서 헌금함 앞에 앉으셔서 과부의 두 렙돈을 드린 것들도 모두 성전에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주 뛰어난 현명한 가르침과 아주 지혜롭게 처신하신 것을 나타내려고 이 말씀들이 성전을 배경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전체적으로 예수님이 지으실 성전이 어떤 성전이며 누구와 함께 만나고 교제하며 살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예를 들어 드렸던 바와 같이 조선 시대의 한양이라는 도성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4대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4대문이나 성곽을 만들 때 여러 가지 흙과 돌이나 건축재료들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인부들이 동원이 되어 일을 했을 것입니다. 이 도성을 만든 재료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4대문에 새긴 이름이 무엇을 표방하는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교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나라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조선은 인의예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막을 지을 때 그 모양과 넓이, 사용된 재료에 대하여 아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보다 이 회막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만나고 교제하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처럼 마가복음의 최고의 계명에 대한 말씀도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이 새롭게 지어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마가는 성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나타내었습니다.
이제 오늘 마가복음 말씀의 끝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고 함으로 이제까지 모든 물음이 끝이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말이 단순히 예수님이 질문공세를 잘 피하고 넘어간 것에 대하여 말하려고 마가가 기록을 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오늘 출애굽기와 시편을 통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렸던 내용이 마가복음 12:33절에 나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증거궤 앞에 향을 두어 지극히 거룩한 곳을 말하는 것과 같고,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은 관유를 발라 거룩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본문을 그냥 형식을 원하지 않고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원한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해석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어찌 들으면 교회에 올 때 슬리퍼를 질질 끌며 와도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왜요? 행위가 아니라 마음만 가지고 오면 가장 진실하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해석함으로 마가복음 말씀이 아주 엉뚱한 교훈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제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셔야 합니다. 왜 마가는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의 물음 뒤에 최고의 계명을 묻는 서기관들의 물음을 편집하여 배열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런 순서로 마가가 기록을 왜 했는지에 대하여 아무도 답변을 주지 못합니다. 그냥 하나 하나 별개의 물음과 답변으로만 이해할 뿐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관유와 향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본다면 왜 최고의 계명에 관한 말씀이 바로 이 자리에 나와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유를 바르는 것과 지극히 거룩한 향을 두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 비로서 우리는 여기 마가가 배열한 최고의 계명에 관한 질문을 잘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새로 지으시는 성전은 어떤 성전이었습니까? 먼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성전을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시고 이방인들의 죄를 사하시면 이방인들이 이 성전에 나아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전의 별명은 용서의 성전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아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기도하는 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이방인에게 빼앗겼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70년의 포로생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성전을 재건토록 했습니다. 돌아와 지은 성전은 열방의 모든 백성이 함께 들어오는 그런 성전이 될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루살렘 성전을 멸하고 예수님은 그의 몸으로 새 성전을 지으실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새 성전을 지으시면 천하만민이 이 성전에 들어와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성전의 당국자들은 강도의 굴혈처럼 이 성전을 빼앗으려 하였습니다. 자기들만의 성전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 성전의 상속자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죽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포도원을 지어 놓고 농부들에게 맡겨 놓고 타국으로 떠나갔던 주인이 다시 돌아오면 이런 옛 성전의 건축자들을 다 내어쫓고 새 농부들에게 이 성전을 맡길 것입니다. 그 새 성전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돌이 되어 새롭게 지어질 것입니다.
이 새로운 성전에 참여하는 백성들은 옛 성막을 봉사했던 것으로 참여하지 않습니다. 즉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속전세를 드림으로 참여했던 이스라엘 백성과 다릅니다. 그 당시는 종으로 주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회막을 봉사했지만, 이젠 아들로서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를 합니다. 종이 주인을 위하여 봉사하는 옛 성막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섬김과 다릅니다. 아들이 자기 기업을 봉사하듯이 이제 주님의 성전을 봉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새 성전은 가나안 땅의 왕 정도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로마의 황제에게 세를 바쳐도 곧 하나님 앞에 바친 셈이 됩니다.
여호와의 회막에서 교제하는 관계는 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손을 씻음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제사장은 죽음의 권세 아래서 떨림으로 손을 씻고 여호와의 회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보았다고 말을 합니다.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이들을 정결케 하셔서 자기 신부로 대면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 주님의 성전에서 우리가 주님과 누리는 교제 중 가장 최고의 것은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처럼 일곱 귀신이 들렸던 아주 비천한 여인이,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하셔서 용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교제가 바로 주님의 몸된 성전에서 교회가 누리는 생명입니다. 이 주님의 성전에서 가장 최고의 만남과 교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마가복음 12장 본문에서 말씀하는 최고의 계명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와 다르게 마가복음은 첫째는, 둘째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첫 단계, 둘째 단계와 같이 계급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31절 끝에서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계명은 같은 하나의 계명입니다.
마가복음의 이런 말씀은 출애굽기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출애굽기에서는 관유를 바르되 제사장들에게만 발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바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사장과 다른 사람을 구별되게 했습니다. 향을 만들 때도 같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만이 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은 맡으면 안되었습니다. 회막을 만드는데 있어 최종적인 의미를 말하는 출애굽기의 관유와 향에서는 서로 차등이 있는 교제를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등이 있는 교제를 말하는 출애굽기의 말씀을 이해하면 마가복음의 최고의 계명은 어떻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 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둘째 계명이 차등이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의 예배, 즉 성찬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고 마시는 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냥 형식적으로 떡을 떼고 예배순서상 먹고 마시고 있는 것입니까? 떡과 잔을 먹고 마심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이, 이젠 좀 이 말이 남존여비와 같은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여튼 그 밥상에 밥과 김치 한 조각이 올려 있다 하더라도 그 밥상에 올라 있는 밥과 반찬이 무엇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함으로 만든 밥상이란 점입니다. 또한 그 밥과 반찬이 어떤 특별한 맛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 남편은 그 아내를 사랑함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제사장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곳,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구별되었던 이스라엘과 다릅니다. 주님의 상에서 12제자들이 함께 둘러 앉아 먹고 마셨던 것처럼 하나됨으로 먹고 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둘째 계명이 서로 차등이 없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는 없었던 법이요 계명입니다. 유월절 최후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또한 요한일서 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는 마가복음 14장에서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왜 이런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고 여자를 책망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셔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새 영광의 몸을 입으실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일을 주님께서는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새 성전으로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는 이 주님의 몸에서 그의 지체로 교제를 나눕니다. 주님의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이 자기 몸을 죄인을 위한 제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가장 값진 제물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희생제물이십니다. 아버지를 사랑하여 자기 몸을 순종함으로 드리신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역사나 왕조 가운데 이처럼 순종하신 아들이 없었습니다. 의인도 아닌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심으로 세상을 사랑하신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보다 더 비천한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지극히 큰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아들의 사랑하심 안에서 교회는 주님의 상에 앉아 먹고 마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식탁이 주님이 함께 하신 유월절 최후 만찬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신 주님을 따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랑함으로 주님의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건물의 크기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모이는 유명한 사람들로 말해도 안됩니다. 이와 같은 외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함으로 사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와 같이 교회가 나타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함을 이웃을 사랑함에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의 몸된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무엇을 최고의 계명으로 여길 것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함과 이웃을 사랑함이 동일한 가치로 우리에게 보여질 때 교회는 정말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내는 곳이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당할 때에 믿음에 있어 물러서지 말아라, 담대하라,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러한 외적인 핍박에 대하여 내적으로는 꼭 이 말씀을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형제 대접하기를 계속하라!
자기 집과 자기 가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교회의 최고의 결정체입니다.
바로 이러한 집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의 나타남도 이 최고의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이루는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부활하신 날에 교회로 모이는지 확실하게 정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을 사랑하셔서 자기 몸에 연합시키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려고 모였습니다. 세상에 없는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교회가 연합함이 교회가 이룰 최고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나오는, 주님의 몸에서 나오는 영광의 말씀으로 교제하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건 사랑의 계명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면 이방인들도 이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이것을 기뻐하고 자랑하면 죄인들이 함께 이 자리에 참여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 사랑을 전해야 할 목표입니다.
절대로 교회는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누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차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의 나눔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서로 사랑함으로 한 몸을 이루는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 일에 여러분이 함께 최고의 계명으로 주님의 몸된 성전을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룩한 관유
출 30:22-38
하나님께 바쳐지는 관유(관제에 쓰는 기름)와 향은 거룩한 것이므로 특별한 제조법에 의하여 최상의 품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성막에 있는 다른 기구들처럼 향도 하나님만을 위해 거룩하게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용하는 것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했습니다.(33, 38절)
1. 향의 제조(34, 35절)
관유는 4가지 “상등 향품”이 합해져 제조되었습니다. 액체 몰약(화장품, 의약품, 요리 등에 널리 사용되던 씨스터스 장미 나무의 진액) 왕의 모든 옷에서 풍기는 향기(시45:8, 아3:6) 인 육계(계수나무의 껍질로 육계에서 뽑아낸 진액은 약재로 사용되었음), 향기로운 창포, 찧어 빻으면 가장 좋은 향기가 나는 계피, 이 향품들이 혼합되어 나는 향기가 어떠했겠습니까? 한 가지만 해도 향기가 넘치는데 감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이 4개의 향품을 고도의 제조기술을 동원하여 조제법대로(25절) 만들게 했습니다. 이 관유는 장차 우리가 부음 받을 성령을 상징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관유”는 하나님의 축복의 성령입니다. 그러니 성전 제사 때 관제로 부어진 관유에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이 그처럼 괴로운 영혼에게 그토록 향기를 줄 수 있겠습니까? 향기와 사랑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2. 기름의 역할
기름의 향기는 은은히 퍼집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때 그 향유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요12:3) 곧 관유는 예수님의 성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예수님은 조용하고 온유하심으로 우리들에게 강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사이에 조용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점차로 그의 임재하심을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도록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는 “불의 혀나” “강한 바람”의 질주 같아서 믿음이 약한 사람은 두려워 떨게 될 것이며, 심한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유”인 예수님의 사랑의 향기는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이”(시133:3) 우리를 위해 사뿐히 강림하십니다.
(2)평상시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난폭한 자극이나 갑작스런 공포 분위기로 충격을 주지 않고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회개하도록 영혼의 귀에 부드럽게 속삭임으로 선한 생각을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거룩한 기념을 나타내 줌으로서 그의 목적을 달성하십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유순하게 우리들이 그를 영접하도록 양육하십니다. 우유가 필요한 곳에는 우유로, 고기를 요구하는 곳에는 고기로 그는 채워주십니다. 예수님의 은사는 다양하니 각 사람을 유익하게 하십니다.(고전12:7)
(3) 우리들이 방황할 때 우리와 더불어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6:3)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성령을 거스리고”(행7:51), “성령을 소멸” 하기까지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방해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화내지 아니하시고 근심하십니다.(엡4:30) 우리를 그 주님을 근심케하고(사63:10) 걱정케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회개의 빛이 보이기만 하면 그는 곧 용서하시고 격려하고 기쁨을 주며, 위로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잠18:24)고 했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그러한 친구는 곧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4) 향의 성질
향은 아무리 썩고 냄새나는 것도 거부하지 않고 스며들어가 냄새를 감쌉니다. 성령님은 신자라도 우리가 그에게 아뢰기만 하면 귀를 기울려 주십니다. 우리들처럼 가치 없고, 부정하고, 거역하고, 고집 투성이 이며, 자기 안일만을 추구하는 자들임에도 우리와 더불어 교제하십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16:13) 주님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4)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교제로부터 풍기는 향기는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향기롭습니다. 그 향기는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기에 족하며(아4:9) 우리를 사랑으로 병이 나게 만듭니다.(아5:8)
3. 그 향을 어디에 계속 두게 했습니까?
향을 “곱게 찧어 증거궤 앞에” 두라고 했습니다. 즉 궤와 하나님의 모습 앞에는 계속 향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빛을 비추기 위함이 아니요, 불붙일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품은 항상 밝게 빛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곁에 있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천사들의 향연과 함께 하늘 보좌로 올라갈 것입니다.(계8:4) 참되고 진정한 기도의 가치는 무한하니 전능하신 자의 은혜는 그만큼 한(限)이 없기 때문입니다. 37절에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관유와 향을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거짓 교사나 선지자들은 그러한 흉내를 내고 위장하여 하나님을 만홀히 여깁니다. 또 거짓 선지자들의 그 같은 향내를 맡으려고 깐죽거려서도 안 됩니다.(38절) 우리는 성령의 향기만 맡아야 합니다.
거룩한 관유
출 30:22-33
우리는 거룩하여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히 12:14, 요일 3:3). 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이루지 못하면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서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두 말 할 것 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야 됩니다. 본문 22-33 에서는 성막과 그 모든 시설에 기름을 바른 사실과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바른 사실을 보여줍니다. 즉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없으면 모세가 여호와를 위해 새운 성소가 열납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름은 감람유에다 네 가지 주된 향료를 섞어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성막과 그 신령한 기구들에 바르며 또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임에 헌신될 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집에서 섬기는 일에 연관된 모든 것과 같이 거룩한 관유는 그 향기로운 성분과 함께 주 예수님의 인격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탁월성, 특히 그를 통하여 나타난 성령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1. 관유의 성분 출 30:22-25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향품을 칠하되 액체 몰약 500세겔과 그 반 수의 향기로운 육계 250세겔과 향기로운 청포 50세겔과 계피 500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기름 한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유를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를 한데 섞어 그 성분을 조성했으며, 그 향들은 기름에 힘입어 함께 탔습니다. 히브리어의 향료는 “향기로운 냄새”라는 어원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향유의 기본적인 개념은 그 향기로운 냄새에 있습니다. 분명히 그것들은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주된 향료들이 상징하는 의미를 종합하여 요약하면 몰약은 쓰라린 것이지만 향기로운 그의 죽음으로 부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키며, 육계는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한 그의 거룩한 열성을 가리키며, 창포는 죄 많고 사악한 세상에서의 그의 공명 정대함을 가리키며, 계피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경배를 가리킵니다.
2. 관유의 비율 23-24절에 “몰약은 500세겔이요. 육계와 창포는 250세겔이며, 계피는 500세겔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네 가지 향료를 기름에다 섞었으며 각 향료마다 식물의 생명으로부터 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고루 섞여졌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골고루 침투되어 성령의 기름에 골고루 섞여져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몰약 복음으로 500세겔의 향재료가 있는 완전한 진리입니다. 요한복음은 계피복음으로 500세겔이 있는 예배를 나타낸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육계 250세겔이 있는 복음으로, 누가복음은 창포향 250세겔을 혼합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올리는 종으로서의 교리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3. 용액과 용도 이는 성령의 모형이 되는 감람유였으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며”(행 10:38) 함과 같습니다. 향료들은 기름에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했으며 기름은 그 향기를 타게 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나타내신 아름다운 은혜는 모두가 성령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며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기름에 의하여 향기로운 향료들을 한데 섞을 수 있었고 기름이 그 모든 것 속으로 스며들어가 모든 것을 잘 혼합시켜 주었습니다. 향료들의 향기는 한 힌의 감람유 전체에 골고루 녹아 그 중한 가지로 다른 것보다 두드러지게 더 냄새를 발하는 것이 없었으며, 그 기름은 모든 향기로움을 골고루 나타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골고루 나타냈습니다. 성막과 기구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헌신할 때 출 30:30에 기름 붓는데 사용했습니다. 성소에 기구들은 무리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갖가지 직임과 섬김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중 어떤 것은 그가 이 땅에 계실 때 시행하신 것이요 다른 것들은 그가 지금 하늘에서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4. 금지 사항 아론의 아들들을 이 거룩한 기름으로 붓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출 30:32에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라고 했습니다. 오직 제사장 직분에 속한 가족들만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성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만이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을 가짐을 말합니다. 갈 4:6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1:22에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속한 자만이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만이 성령의 열매가 그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5. 성령은 기름으로 표현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성령을 기름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서만 거룩함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수 4:3에 보면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그 두 나무는 기름을 등대에 공급하여 빛을 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우리에게 빛을 주심으로 깨끗해지게 하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요 15:3에 “그의 제자들이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졌다”고 하셨으니 이 역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알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하였습니다. 무디는 말하기를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충만한 것이 곧 성령 충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함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의 말씀, 곧 성결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2) 기름은 기쁨과 평화의 상징인데, 성령은 신자에게 기과 평화를 주셔서 거룩하게 살도록 하십니다. 사람은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선을 힘써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기쁨과 평화를 주셔서 거룩되이 살도록 하십니다. 사람은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서야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감당해 나갈 수 있으며 모든 어려운 일들을 기름 바른 기계와 같이 순조롭게 해결하여 나갑니다(슥 4:6). 신자들이 핍박을 받을 때는 마음을 정하고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과 담력까지 받아서 그 고난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어떤 어려운 핍박이 온다 하더라도 이 고난이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면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담력과 믿음을 얻어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는 양면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하늘의 것이요, 다른 하나는 땅의 것입니다. 이 양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깨끗케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자신 편에서 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기쁨과 평안을 소유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름은 치료하는 역사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 죄인을 치료하는 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해 주신다는 말씀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파상된 심령을 성령으로 치료해 주시고 소망을 가지게 해 주십니다. 갈 5:25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