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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이불문(聽而不聞)
들어도 들리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 또는 듣고도 못 들은 체함을 말한다.
聽 : 들을 청(耳/16)
而 : 말이을 이(而/0)
不 : 아닐 불(一/3)
聞 : 들을 문(耳/8)
(유의어)
청약불문(聽若不聞)
예부터 말하는 것은 줄이고 귀담아 듣는 것을 늘리라 했다. 모든 재앙은 말하는 데서 나온다고 구화지문(口禍之門), 화생어구(禍生於口)란 말이 전한다.
물론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간해야 한다는 어려운 성어 어묵찬금(語嘿囋噤)도 있지만, 듣는 것은 하나같이 귀담아 들으라고 했다.
팔십 노인도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배울 것이 있다, 부모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우리 속담이 그렇다.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세이공청(洗耳恭聽),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는 겸청즉명(兼聽則明)의 교훈도 있다.
들어도(聽而) 들리지 않는(不聞) 상태는 어떤 경우일까? 한번만 들어도 척 알아들었거나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아챌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공자(孔子)는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非禮勿聽 非禮勿言/ 비례물청 비례물언)고 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유가의 사서(四書) 가운데 분량은 가장 적지만 내용은 간단하지 않은 대학(大學)에 성어가 실려 있다. 전7장의 내용을 보자.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마음이 그 일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보거나 듣거나 먹는 것까지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헛일이란 이야기는 자신의 덕을 닦는데 있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란 것이다.
중국 제(齊)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관자(管子)에서 명군이 되기 위해서는 현명한 신하를 두어야 한다며 이 말을 썼다.
雖有名君, 百步之外, 聽而不聞,
閒之堵牆, 窺而不見.
비록 현명한 군주라도 백보 밖의 소리는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가 없고, 담장 너머로는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군신(君臣) 상편에 있는 이 말은 훌륭한 지도자는 직접 듣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의견을 바로 들려주는 강직한 사람을 두어야 잘 다스릴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듣지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상대가 말을 하든 말든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면 소통할 수가 없다.
정치인이나 한 조직의 지도자가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은 물론 꼴불견인데 아랫사람의 말을 듣는 것까지 대충 한다면 윗사람의 자격이 없다.
또 한 가지 현명해진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일부에 치우쳐 믿으면 되레 어리석어지니(偏信則暗) 주의할 일이다.
불청(不聽)과 경청(傾聽)
평소에는 홀대하지만 큰일이 닥치면 전문가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아프면 명의를 찾아야 하고 전시에는 전략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목하 한국도 일종의 전시 상태이다.
되새길 만한 고사 하나를 소개한다. 배수진(背水陣)의 명장 한신(韓信)의 이야기다. 여기서 필자는 배수진의 광휘(光輝)에 가려진 한 인물을 주목하고 싶다.
BC 204년, 한신이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정형 땅에서 조나라를 치려고 했다. 조나라 왕과 대장 진여는 한신이 군사를 정형 땅 어귀에 집결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좌거(李左車)가 진여에게 한신이 원정(遠征)인 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건의했다. '정형은 길이 험해 두 대의 수레가 함께 지나갈 수 없으며 기병도 줄을 지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갈 길이 수백 리나 됩니다.
그러므로 형세로 보아 군량미는 반드시 그 후방에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기습할 병사 3만명을 주십시오. 지름길로 가서 그들의 군량미 수송을 끊어 놓겠습니다.
장군은 물길을 깊이 파고 방어벽을 높이 쌓고 진영을 굳게 지키며 싸우지 마십시오. 그러면 한신은 전진해 싸울 수도 없고, 후퇴하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때 아군이 적의 뒤를 끊고 들판에서 약탈할 만한 식량을 치워 버리면, 열흘 안에 적장의 머리를 바칠 수 있습니다. 장군은 저의 계책을 심사숙고 해 주십시오. 그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적장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런데 진여는 유자(儒者)였다. 언제나 정의를 강조할 뿐 작전을 궁리하거나 기발한 계책을 쓰지 않았기에 이렇게 말했다. '병법에 아군이 적군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고 했소.
지금 한신의 병력이 수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에 지나지 않소. 천리 먼 곳에 왔으니 벌써 매우 지쳤을 것이오. 이런 적을 피하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대군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싸우겠소? 그렇게 되면 제후들이 우리를 비겁하게 여기고 쉽게 쳐들어올 것이오.'
결국 이좌거의 계책을 듣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듣고 한신은 기뻐하며 행동을 개시한다.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배수진을 사용한 한신의 대승이었다.
진여의 목을 베고, 조나라 왕을 사로잡았다. 이때 한신은 전군에 이좌거를 사로잡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좌거가 끌려오자 한신은 그의 결박을 풀어주고 상석인 동향으로 자리를 마련해 앉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스승을 모시듯 서쪽을 향해 마주 대하며 앞으로의 계책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했다.
이좌거가 거절하며 말한다. '듣건대, '패장은 용기를 말할 수 없고(敗軍之將不可以言勇), 망국의 벼슬아치는 나라의 살길을 말할 수 없다(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고 했소. 나는 패망한 나라의 포로인데 어찌 큰일을 말할 자격이 있겠소.'
한신이 말했다. '제가 들으니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우나라가 망했지만, 진나라에 있을 때에는 진나라가 패자(覇者)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우에 있을 때에는 어리석었다가 진에 있을 때에는 지혜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그를 등용했는지 않았는지,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는지 않았는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聽與不聽).
만약 진여가 선생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저는 벌써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선생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좌거의 정확한 분석도 귀를 닫은 사람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진여는 인의(仁義)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기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명예욕에 눈이 가려 탁월한 전략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반면 이좌거의 태도는 다르다. 그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패장이기에 자신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패전의 책임을 감수하는 태도에 진정한 무인의 기품이 느껴진다. 실패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근자에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에서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 국가라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신에 몇 줄 나온 것을 거듭 인용하는 태도를 보며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우리가 내세울 실력은 방역 능력이 아니라 진단 역량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말자. 한 장의 마스크를 사나흘 써야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대만과 싱가포르 등의 감염병 대처는 우리보다 월등하지만 부산을 떨지 않는다.
다시 주목받는 고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더클래식, 2017)
지금은 안심도 할 수 없고 방심도 할 수 없다. 해답은 교의(敎義)나 구호가 아니라 관찰에서 나온다. 문제가 없다는 사람에게는 답도 없다.
▶️ 聽(들을 청)은 ❶형성문자로 聴(청)의 본자(本字), 听(청)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呈(정, 청)의 생략형과 나머지 글자 덕(세우다)으로 이루어졌다. 소리가 잘 들리도록 귀를 기울여 듣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聽자는 ‘듣다’나 ‘받아들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聽자는 耳(귀 이)자와 壬(천간 임)자, 悳(덕 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耳자에 두 개의 口(입 구)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후에 口자는 생략되었고 대신 눈과 심장을 그린 悳자와 壬자가 더해지면서 ‘보고(直) 듣고(耳) 느끼는(心) 사람(壬)’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획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단순히 ‘듣는다’라는 뜻에서 ‘듣고 용서하고 살핀다.’까지 모두 표현하려다 보니 이렇게 다양한 글자들이 결합한 것이다. 그래서 聽(청)은 ①듣다 ②들어 주다 ③판결하다 ④결정하다 ⑤다스리다 ⑥받아 들이다, 허락하다 ⑦용서하다 ⑧살피다, 밝히다 ⑨기다리다 ⑩따르다, 순종하다 ⑪엿보다, 염탐하다 ⑫맡기다 ⑬마을 ⑭관청(官廳) ⑮염탐꾼, 간첩(間諜) ⑯이목(耳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소리를 듣는 감각을 청각(聽覺), 방송이나 진술 따위를 자세히 들음을 청취(聽取), 강연이나 설교 등을 듣는 군중을 청중(聽衆),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강의를 들음을 청강(聽講), 귀로 소리를 듣는 힘을 청력(聽力), 명령을 들음을 청령(聽令), 송사를 자세히 듣고 심리함을 청리(聽理), 듣고 봄을 청시(聽視), 소리가 귀에 들리는 범위를 청야(聽野), 이르는 대로 잘 들어 좇음을 청종(聽從), 죄의 고백을 들음을 청죄(聽罪), 몰래 엿들음을 도청(盜聽), 눈으로 봄과 귀로 들음을 시청(視聽),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것을 경청(敬聽),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음을 경청(傾聽), 듣기 기관의 장애로 듣는 힘이 낮아지거나 없어진 상태를 난청(難聽), 듣지 아니함이나 청하는 것을 들어 주지 아니함을 불청(不聽), 참여하여 들음을 참청(參聽), 소문을 들음 또는 그 소문을 풍청(風聽), 공손한 태도로 조심성 있게 들음을 근청(謹聽),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음을 청이불문(聽而不聞), 듣고도 못 들은 체함을 청약불문(聽若不聞),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거문고 소리가 하도 묘하여 물고기마저 떠올라와 듣는다는 뜻으로 재주가 뛰어남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을 유어출청(遊魚出聽),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하는 말을 이시목청(耳視目聽),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겸청즉명(兼聽則明), 남의 말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담아 듣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세이공청(洗耳恭聽),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꾸짖지 않음을 내시반청(內視反聽), 여러 사람을 거쳐 전해 오는 말을 들음을 전지전청(傳之傳聽)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聞(들을 문)은 ❶형성문자로 闻(문)은 간자(簡字), 䎹(문), 䎽(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門(문; 입구)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聞자는 ‘듣다’나 ‘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聞자는 門(문 문)자와 耳(귀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聞자를 보면 사람의 귀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에는 어둑해진 저녁에서야 결혼할 신랑이 신부의 집에 당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이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혼인하다’라는 뜻으로 썼었다. 후에 이러한 모습이 바뀌면서 사람은 女(여자 여)자와 昏(어두울 혼)자가 결합한 婚(혼인할 혼)자가 되었고 사람의 귀는 耳(귀 이)자에 門자를 더한 聞자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聞자는 문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듣다’나 ‘소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聞(문)은 소리가 귀로 들어가다라는 말로 듣다, 들리다의 뜻으로 ①듣다 ②소리가 들리다 ③알다, 깨우치다 ④소문나다, 알려지다 ⑤냄새를 맡다 ⑥방문하다, 소식을 전하다 ⑦묻다, 질문하다 ⑧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알리다 ⑨틈을 타다, 기회를 노리다 ⑩견문(見聞), 식견(識見) ⑪소식(消息), 소문(所聞) ⑫명성(名聲), 명망(名望) ⑬식견(識見) 있는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들을 령/영(聆), 들을 청(聽)이다. 용례로는 듣고 보는 것으로 깨달아 얻은 지식을 문견(聞見), 도를 들음 또는 도를 듣고 깨달음을 문도(聞道), 들어서 얻음을 문득(聞得), 이름이 널리 알려져 숭앙되는 일을 문망(聞望), 부고를 들음을 문부(聞訃), 소문으로 전하여 들음을 문소문(聞所聞), 들어서 손해 봄을 문손(聞損),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을 문인(聞人), 들어서 앎을 문지(聞知), 들어서 배움을 문학(聞學), 뜬 소문을 들음을 문풍(聞風), 향내를 맡음을 문향(聞香), 이름이 세상에 드러남을 문달(聞達), 들려 오는 떠도는 말을 소문(所聞),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전하여 들음을 전문(傳聞), 퍼져 돌아다니는 소문 또는 설교나 연설 따위를 들음을 청문(聽聞), 아름답지 못한 소문을 추문(醜聞), 이전에 들은 소문을 구문(舊聞), 여러 번 들음을 천문(千聞), 바람결에 들리는 소문으로 실상 없이 떠도는 말을 풍문(風聞), 들어서 앎 또는 듣고 앎을 문이지지(聞而知之),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