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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Z
03
라이브 칵테일 바...?
뭐 유흥업소가 아니여서 천만다행이었지만 내 마음은 차마 편치 못했다. 더군다나 저 안으로 혼자 당당히 들어 갈 용기도 없다.
기본적으로 저런 곳은 예쁘고 날씬한 아이들만 일 할 수 있다는 편견 같은게 깔려있어서일까.
더군다나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터라, 검은색 상자같은 건물이 내게 주는 압박감은 무척이나 컸다.
시급이 좀 아쉽긴 하지만, 역시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나 같은거 써줄리가 없지. 엄마의 미안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다 못해 화장이라도 하고 나왔더라면 될대로 되라 하고 들어가보기나 했을텐데
대충 츄리닝 차림으로 기어 나온 내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곳은 막막한 미로의 입구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 휴... "
짧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렸을 때였다.
" 누...나? "
" .... ? "
내 앞을 가로 막은 것은 두 명의 남녀였다.
한명은 청바지에 티셔츠.
평범한 차림이지만 여기 저기 악세사리를 잔뜩 달고 있는데다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카락.
덤으로 눈가는 시커먼 아이섀도우를 덕지덕지 바른 '남자 아이'였고,
또 한명은 검은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예쁜 여자아이였다.
약간 위로 올라간 눈매가 사나워보이는 인상을 주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쁜 여자아이.
" 멍청아. 어딜 봐서 저게 언니야. 똑바로 봐 다르잖아. "
" 어? 진짜네... 점이 없구나... "
" 그것도 그거지만 언니는 좀 더 머리도 짧고, 늘씬하고 키도 커. 닮긴 닮았지만... "
무슨 이야기인진 몰라도 내가 모르는 사람과 바로 앞에서 비교 당한다는 건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구나.
멍하게 서있던 나는 문득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방금 전 통화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남자아이와 같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남자아이는 간단한 평상복 차림이지만,
여자 아이는 검은색 치마와 하얀색 블라우스 위로 검은색 넥타이를 걸치고 있었다.
딱 전형적인 바텐더의 복장.
구김 하나 없이 펴진 복장이 무뚝뚝하고 냉정해보이는 아이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듯 했다.
더군다나 이 아이들. 당장 TV 속에 들여 보내도 꿀림 없을 정도로 다들 예쁘고 개성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감지도 않아 대충 구겨 묶은 머리카락과 허름한 츄리닝에 슬리퍼차림.
돌아가자. 역시 돌아가는게 나아.
" 아, 저기 손님이신가요? 아니면 다른 일로.. "
" ...네? 아뇨 전 그냥 "
" 헉, 설마 아까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전화하셨던? "
" 아.. 아니에요! "
남자 아이가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로 내게 묻는다.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내저었고 도망치듯 그 골목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주머니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자, 청바지차림의 남자아이가 핸드폰을 들고
날 향해 사악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뻘쭘한 미소로 응했고,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것 마냥 그 어두운 바 안으로 끌려 들어 오고 말았다.
.
" 아 괜찮으니까 그냥 돌아 갈래요! "
" 왜 그래요 누나아~ 여기까지 왔으니까 사장 얼굴은 보고 가야죠!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
언제 봤다는건지 애교스러운 비음을 섞어가며 내 팔을 붙드는 아이. 바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그는 시종일관 입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을 '스물 두살 꽃다운 청년 이철수'라고 소개 했다.
개성있는 외모와 달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평범한 이름에 잠깐 피식 했더니 내 이름을 묻길래
'유지아'라고 답해주니 예쁜 이름이네요하며 사람 좋게 히히덕거린다.
반면 옆에 있는 여자 아이는 내내 말이 없었다. 그저 날 흘깃 흘깃 바라 볼 뿐.
자신에 대한 소개를 줄줄이 늘어 놓던 철수는 한참 후에야 여자 아이의 이름도 내게 말해주었다.
" 쟤는 은유희에요. 이름값 못 하는 성격에 얼굴만 반반하니까 뭐~ "
철수의 말에 유희는 미간을 찌푸렸고, 그것을 발견한 나는 당황했지만 철수는 뭐 일상이라는듯
대수롭지 않게 유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쟤도 나랑 같은 스무살인데 빠른 생일이라 따지고 보면 열 아홉! 누난 몇 살이에요? "
" 스물 넷.... "
" 우와! 우리 사장님이랑 동갑이네! "
" 사장이라면 혹시 아까 전화 받았던..? "
" 응! 아! 저기있네요. 형! 빨리 와봐 아까 전화 했던 누님 오셨는데 진짜 신기해! "
철수가 가리킨 곳엔 굉장히 멋진 남자가 하나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조명탓인진 몰라도 나보다 더 하얀 피부에 여성스런 선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바 내부의 독특한 모습이었다.
바 중심에 서 있는 작은 무대 위엔 드럼과 기타들이 주르륵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한켠엔 한 남자가 통기타를 손에 들고 제목 모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까부터 들리는 잔잔한 목소리에 무슨 노래를 틀어 둔 걸까.
좋은 노래라 생각하던 나는 그게 라이브로 직접 부르는 것이란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바의 위는 가운데가 뻥 뚫려있었다.
말 그대로 가운데가 훤히 열려있는 바는 투명한 유리로 막혀 있긴 했지만
투명한 유리 너머는 해가 지기 시작한 보랏빛 하늘을 선명히 비추고 있었다.
" 하늘 예쁘죠? 근데 청소 할 땐 곤욕이야. 하루만 지나면 먼지가 쌓여있어서,
가게 열기 전에 항상 옥상 올라가서 닦아줘야 하는데 저기 유리가 투명이잖아.
그래서 아래가 다 비치니까 고소공포증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정말 죽을 노릇이라니까요. "
" 저기 여기는 공연 같은 걸 하나요? "
" 응. 매일 저녁 10시부터 11시까지. 휴일은 제외하고. 저기 있는 형아가 남자 보컬이에요. "
" 그럼 여자 보컬은 저 유희라는 아이? "
" 아.. 그건.. 음...여튼 걔는 아니고 다른 사람인데 지금은 ... 아 누나 그리고 말 놓아요. 나 스무살이라니깐~ "
여자 보컬 이야기가 나오자 철수는 미묘하게 말을 돌렸고,
그 때 저 쪽에 있던 사장이란 작자가 한 걸음씩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몸을 움츠렸을 즈음. 180은 훨씬 넘어보이는 큰 키의 남자가 나를 내려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음... "
" ... 안녕하세요.. "
마지 못해 한 마디 인사를 내 뱉자 그가 대답 없이 내게서 등을 돌린다.
역시 퇴짜인가.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그가 한 마디 꺼내기를.
" 처음에 그 광고 내 놓고 이런 글 보고 정말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신기했는데
막상 보니까 참 바꾸고 싶어질만 하게 생겼네요. "
" 뭐라구요? "
미묘하게 사람을 깔보는 말투였다.
" 여기 무슨 일 하는 곳인지 대충 알겠나요? "
" 칵테일바잖아요. "
주제도 모르고 이런 곳에 오다니, 돌아가주세요. 라고 말할 생각인가.
어차피 일 하기는 글렀고 시간 낭비만 했다. 가면서 구인 정보 신문이나 가져가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잡는다.
" 잘 알고 있지만 한 가지 모르고 있는게 있어. 여긴 라이브 바에요. 따로 밴드를 게스트로 부르는 날도 있지만
번거롭고 비용이 들다보니 여기서 일하는 바텐 애들은 다들 공연 파트도 맡아서 하고 있지.
그러니까 뭔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거나 하면 가산점이 될 수도 있으니, 뭘 할 수 있는지 한 번 말해볼래요? "
악기?...
어려운 집안 형편에 뭔가 취미로 배우고 싶다고 말 할 처지도 아니었고 딱히 배워야겠다 싶었던 악기도 없었다
그 덕에 난 정말이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
뭐라고 해야하지. 한참 고민하다 머리 속에 한 가지 떠오른 악기.
" 탬버린이요.. "
" 풉.. "
무심코 내 뱉은 내 말에 뒤에 있던 유희가 그만 웃음을 터트렸고, 기타를 치던 남자도 노래를 멈추고 킥킥 거리며 웃어댔다.
철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멈칫한다.
그리고 내 얼굴을 계속 빤히 바라보았다. 당황한 내가 얼굴을 붉히자 흐음 하며 눈을 가린 내 앞 머리를
슬며서 이마 너머로 넘긴다. 나는 감지 않은 머리를 그가 만지자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버렸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고개를 돌려 철수와 유희에게 무언가의 눈빛을 전하는 듯했다.
후..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짧은 소리를 내 뱉으며 그가 내게 묻는다.
" 그럼 혹시 노래는 잘 하나? "
" 네? "
" 노.래. 뭐 자신 있는거 없어요? 오픈까지 20분 남았는데 한번 불러볼래? "
노래는 확실히 못 부르는 편은 아니지만, 애시당초 소극적인 나는 대인공포증에 무대공포증까지 앓고 있었다.
더군다나 명령형의 말투에 기분 나빠진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 아. 여긴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냥 이만 가볼게요.. "
" 무대에 서는 날은 특별 수당도 지급하는데 "
" ........... "
" 그리고 그 특별 수당은 당일 지급이니까.
괜히 시간 낭비하고 돌아가서 변변찮은 알바자리 찾지 말고 한번 불러보는게 어때? "
" ........... 그 특별수당이라는게 얼만데요? "
" 그건, 네 능력이 따라 달라지겠지. "
어느새 그는 내게 말을 놓고 있었다.
분명히 나랑 동갑이라는 말을 들었던터라 나는 더욱이 그의 말투가 신경 쓰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말을 놓고 욕을 한바가지 해 주고 싶지만 소심한 나는 그저 상상에서 그칠 뿐이다.
" 그냥 단순히 시급 보고 혹 해서 온 거라면 그냥 돌아가도 좋지만,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온 거라면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텐데 괜찮겠나? "
재수없어. 돈 몇푼 있고 남한테 주는 입장이라고 한참 위에서 바라보는 사람마냥 대하는건 뭐야?
가자. 따지고 보면 이것도 술 장사잖아? 이런데서 일 한다고 했다간 아빠한테 몰매 맞아 죽을지도 몰라.
그냥 가자. 어차피 이런 나를 써줄리가 없잖아. 그냥 노래만 부르라 시켜놓고
비웃음거리로 만든 다음에 집으로 돌려 보낼 것이 뻔해.
하지만 나는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풀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 ........... 할게요. "
태어나서 한번도 무대위에 서 본 적 없는 나.
노래라곤 1년에 한 두번 가족, 친구들과 찾아가는 노래방에서 부르는게 전부인 나였다.
더군다나 무대의상이나 화장은 커녕 변변찮은 복장.
가운데의 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가는데 심장이 두근거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주먹을 꽉 쥐었지만 쥔 주먹이 덜덜덜 떨려온다.
" 무슨 노래 할래요? "
앉아서 기타를 치던 남자가 내게 넌지시 묻는다.
무슨 노래를 해야 할까. 아는 노래가 뭐 있더라.
" 갑작스러워서 좀 그렇죠? 여성 보컬 음악 괜찮은게 뭐뭐 있더라... 혹시 노다웃의 Don't Speak라고 알아요? "
" 아.. 그거 혹시 자우림이 불렀던...? "
" 자우림도 불렀었나. 우리 나라 애들이 자주 부르던데.. 기다려봐요. "
낮지만 상냥한 목소리의 남자가 잠시 허벅지에 올려뒀던 피크를 다시 쥐고 천천히 반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몇 소절 불러 내려가는
노래는 내 귀에 꽤 익숙한 노래였다. 대학 시절, 캠퍼스 내의 한 밴드 동아리가
1년 내내 부르던 노래이기도 했고, 어쩌다 자우림의 보컬이 부른 버젼을 몇번 듣기도 했었다.
" 알겠어요? "
" 네.. 2절은 모르겠지만 1절 영어가사라면 대충 알 것 같기도.. "
" 그럼 다행이네. 이 노래 원래 있던 보컬이 좋아했던 노래라 공연할 때 자주 했었거든요. "
" 아하... "
" 서완아! 이 분이 다인이 애창곡 하신다던데 어때 간만에 같이 해보게 애들 데리고 올라 와 "
" 아? "
당황한 나를 향해 그가 넌지시 윙크하며 말했다.
다인이라면.. 그 이전 보컬을 말하는걸까.
" 어차피 무대 위에서 들으나 아래서 들으나 보컬 목소리는 같은데,
여러 사람들이 밑에서 보고 있으면 긴장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위로 올라오는 편이 더 부르기 쉬우실것 같아서요.
우리로써도 직접 무대에서 보컬하고 호흡하는 편이 실력 파악하기 더 쉬우니까. "
" 그럼 저.... 분도 무대 위에 서시나요? "
하지만 그는 이미 통기타를 내려두고 일렉 기타를 셋팅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내 말을 듣지 못한듯 했다.
인형 같은 유희와, 철수. 그리고 그 무뚝뚝한 사장님까지 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중심엔 아직도 손을
덜덜덜 떨고 있는 내가 서 있었다.
지잉-거리는 기타 음이 몇번 울리고, 다 된 것 같네- 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드럼 위엔 철수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고,
희경은 베이스. 그리고 그 뻔뻔한 사장은 검은색 일렉기타를 매고 있었다.
" 누나 화이팅! "
철수의 요란한 응원과 함께, 드럼스틱끼리 맞 닿는 마찰음이 시작되고,
긴장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노래의 반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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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으으으으으으으에- 이렇게중요한부분에서-이흐-아노래라도잘했으면좋겠어요-왠지더측은해지는느낌! 주인공이- 작가님간바떼제가첫번째에요 효효
오오오오,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다음편 기대할께요'ㅅ'
기대되요ㅋㅋ노래 찾아서 바로 들어봤어요^^보컬 목소리가 매력있어요^^작가님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