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가는 배 안에는 ‘서해 최북단-백령도 관광’ 배지를 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유난히 많았다. 울릉도나 홍도처럼 백령도도 대표적인 ‘효도관광지’다. 인천에서는 229㎞이지만, 황해도 장산곶에서는 불과 17㎞. 갈 수 없는 북녘땅을 전망 쌍안경으로 굽어보고, ‘서해 해금강’이라는 두무진을 구경하는 것이 전통적인 여행 코스다. 그럴싸한 박물관도 없고 예쁜 펜션도, 깔끔한 카페도 없다.
그러나 백령도엔 뭍에도, 다른 어떤 섬에도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쇠가마우지 서식지가 있고, 최근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서 낯이 익은 점박이 물범이 있고, 노랑무늬 백로가 있다. 물속에는 은빛 춤을 추는 까나리떼가 있고, 조피볼락, 우럭, 놀래미 같은 물고기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과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규암 덩어리와, 규암이 수천만년 파도에 깎이고 닳아 만들어진 콩돌이 있고, 콩돌이 부서져 만든 규사토가 있다. 지질학자들은 백령도를 규암의 일생을 볼 수 있는 ‘규암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1992년 인천과 백령도를 4시간30분 만에 잇는 쾌속선이 뜨기 전까지, 백령도는 뱃길로 12시간이 걸리는 먼 섬이었다. 그나마도 ‘주의보’나 ‘특보’가 내려지면 배가 끊겨 며칠씩 발이 묶이기 일쑤였다. 그 거리가 백령도를 ‘생태계의 보고’로 만들었다. 천연기념물만 4개. 우리나라에서 자연과 관광이 공존하는 ‘생태관광’이 시도된다면, 그 첫번째는 단연 백령도일 것이다.
#호주 그레이트 오션로드 연상케 하는 ‘두무진’
효도관광이건 생태관광이건, 백령도 여행 1번지는 역시 백령면 연화리 ‘두무진’이다. 횟집 벽에 걸린 달력 속 바로 그 풍경. 우뚝한 기암괴석 아래로 거친 파도가 물보라를 날리고,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날개를 뻗고 있는 사진 그대로다. 투구를 쓴 장군들이 회의하는 모습 같다고 해서 ‘두무진(頭武津)’이란 이름이 붙었다.
두무진은 인천에서 들어오는 배가 닻을 내리는 용기포항에서 14.8㎞. 낚싯배를 개조한 ‘유람선’으로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걸어서 보는 쪽을 택했다. 두무진 입구에서 20분 정도 걸어 언덕 하나를 넘으면 ‘장군들의 뒤통수’가 나온다. 50m 높이의 기암 괴석이 해안을 따라 4㎞ 정도 이어진다. 코끼리바위, 말바위, 형제바위, 병풍바위, 촛대바위…. 금강산 해금강을 옮겨놓은 것 같다고 ‘서해 해금강’이라고 부른다지만, 금강산 사진보다는 ‘세계의 절경’ 사진이 더 익숙한 세대여서인지, 엉뚱하게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떠올랐다. 그곳에 ‘12사도 바위’가 있다면, 여기엔 ‘수십 장군 바위’가 있다. 수천만년 파도에 깎이고 닳아 독특한 바위를 만들어냈다. 백령도의 바위는 사암이 열을 받아 변성된 규암. 백령도 암석의 80%가 규암이다.
깎여 나간 바위 틈에 새들은 알을 낳고 부화시킨다. 갈매기는 이미 지난 6월 번식을 끝냈다. 물 위에 솟아오른 바위 위는 한때 점박이 물범(천연기념물 332호)의 휴식처였다. 두무진 해상관광이 백령도 필수 코스가 되면서, 물범들은 이곳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규암이 깎이고 닳아 만들어진 콩돌해변
‘규암의 일생’ 가운데 중간 단계를 볼 수 있는 남포리 콩돌해안 앞에는 관광버스 4~5대가 주차돼 있었다. 콩돌은 규암이 깎여 나가 콩알 크기의 자갈이 된 것. 길이 800m, 폭 20m 정도의 해변이 작은 것은 새끼손톱만하고, 큰 것은 차돌만한 콩돌로 덮여 있었다. 몽돌이 쌓여 9층의 계단을 이뤘다는 완도 ‘구계등’과 닮았다. ‘삼계등’ 정도 될까. 두무진의 규암이 콩돌해안의 자갈이 되기까지 적어도 1만5천년이 걸렸을 것으로 지질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콩돌해안은 97년 12월 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됐다. 맨발로 콩돌을 밟으면 지압 효과가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콩돌이 파도와 바람에 계속 노출되면 모래가 되는 법. 사곶해변(천연기념물 391호)은 규암의 최종단계인 규사토 해변이다. 모래보다 입자가 가는 규사토가 단단하게 쌓여 포장도로만큼이나 바닥이 탄탄하다. 한국전쟁 때 군수송기의 이·착륙장으로 쓰였다고 ‘천연 비행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지금도 자동차도로로 쓰인다. 외지인들은 멈칫거리지만 주민들은 거침없이 자동차를 몰고 해변을 질주한다.
‘콘크리트’ 소리를 듣던 해변은 그러나 최근 몇년 사이 급격히 물러졌다. 취재진의 자동차 바퀴도 그만 모래밭에 빠져버렸다. 주민들은 사곶 해변의 변화가 백령호 공사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령중·종고 이우평 교사(지리)는 “간척지를 개발하기 위해 95년 화동과 사곶 사이에 백령둑과 백령대교를 건설하면서 사곶 앞바다 해수의 흐름이 변했다”며 “점토질 퇴적물이 예전처럼 먼 바다로 쓸려 나가지 못하고 해안으로 유입돼 사곶 모래에 엉켜붙어 해안이 물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91년부터 99년까지 계속된 사곶~남포리 간척사업은 350ha의 농경지와 129ha의 백령호를 만들어냈다. 섬의 모양을 ㄷ자에서 ㅁ자로 바꾸고, 백령도의 크기를 국내 14번째에서 9번째로 올려놨다. 그러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담수호인 백령호는 짠물이 유입돼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잠자리와 모기가 가득한 백령호엔 왜가리 한 마리만 목을 축이고 있었다.
백령도의 독특한 생태계를 볼 수 있는 정점은 면소재지인 진촌리 동북쪽의 하늬바다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해변에 검은 현무암 바위와 높이 10m의 현무암 절벽이 있다. 현무암이야 제주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곳의 현무암엔 엄지손가락만한 녹황색 암석, 감람암이 노출돼 있다. 감람암은 지표에서 35㎞ 아래, 맨틀층을 구성하는 암석이다. 마그마가 분출될 때 맨틀 상층부가 함께 뜯겨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감람암포획현무암분포지’는 천연기념물 393호로 지정돼 있다. 한반도의 지층 내부구조를 연구하는 주요 자료다.
짧은 시간에 돌아본 ‘효도관광지’ 백령도는 가는 곳마다 ‘자연의 보고(寶庫)’가 숨쉬는 생태관광지였다.
〈백령도|글 최명애기자 glaukus@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백령도는 동·식물의 보고다. 천연기념물인 점박이 물범을 비롯해 쇠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노랑부리백로 등이 백령도에 서식하거나 이 섬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류만 94종이 발견됐다. 범부채, 대청붓꽃, 순비기나무뿐 아니라 눈에 익은 해당화, 갯메꽃, 해국 등 식물도 풍성하다. 야생화 동호회원들이 꽃을 관찰하기 위해 찾을 정도다.
달력 속 풍경으로도 익숙한 두무진은 백령도 ‘여행 1번지’다.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4㎞에 걸쳐 이어진다.
용기포항 옆 용기원산(136m)은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동물인 쇠가마우지 서식지다. 물 위에 드러난 바위마다 얼굴이 붉은 쇠가마우지들이 목을 길게 빼고 앉아 있다. 바위에 하얗게 붙어있는 것은 쇠가마우지의 분비물. 잠수해 물고기를 낚아 먹은 뒤, 바위 위에서 날개를 펼쳐 말리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백령도에서만 서식한다.
사항포 일대는 대표적인 갈매기 서식지다. 아직까지 갈색 솜털이 보송한 새끼들이 해안 곳곳에서 눈에 띈다. 멸종위기 보호종인 노랑무늬백로와 검은머리물떼새는 백령도를 중간 기착지로 이용한다.
두무진 주변에서는 수풀에서도, 식당 바닥에서도 손바닥만한 도둑게가 눈에 띄었다. 육상화돼 부엌까지 들어가 밥을 훔쳐먹는다고 해서 도둑게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곶 해변은 조개가 지천이었다. 바닥을 한 움큼 움켜쥘 때마다 백령도 사람들이 ‘비단조개’ ‘명주조개’라고 부르는 개량조개가 대여섯 마리씩 손에 잡혔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쇠가마우지 서식지.
백령도 주민을 먹여살린다는 까나리는 이제 철이 지났다. 5월부터 하지 전까지 집중적으로 잡는다. 까나리에 소금을 넣고 6개월 정도 삭히면 형체는 없어지고 액젓만 남는다. 용기포항 입구에는 까나리액젓을 담근 플라스틱통 수백개가 늘어서 있었다. 지금은 우럭과 놀래미가 제철이다.
백령도의 내륙은 마치 뭍같다. 과연 여기가 섬이 맞나 싶을 정도의 논밭이 펼쳐진다. 꽃도 많다. 담장 아래 봉숭아, 채송화, 아기 주먹만한 꽃을 단 접시꽃, 나리, 과꽃, 무궁화…. 뭍에 흔한 꽃뿐 아니라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 해국, 해당화처럼 해안에 피는 꽃도 많다. 두무진 주변에는 범부채가, 콩돌해변에는 숨비기나무가 자란다. 대청붓꽃은 백령도와 대청도에서만 자생한다.
▶백령도 여행 길잡이
서해안 최북단, 백령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매일 3회(오전 7시10분, 8시, 8시45분) 쾌속선이 다닌다. 백령도 출발은 낮 12시10분, 오후 1시, 1시45분이다. 결항이 잦기 때문에 미리 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여름엔 안개, 겨울엔 강풍 때문이다. 성수기엔 예약이 필수다. 온바다(032-884-8700), 진도운수(032-888-9600). 왕복 9만7천5백원. 차량은 실을 수 없다.
현지에서는 교통수단이 거의 없다. 마을버스가 1일 3회 운행한다지만 찾아보기 힘들었다. 택시나 렌터카가 일반적이다. 식당, 민박집 등에 이야기하면 콜택시를 불러준다. 택시(032-836-0201)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6만원. 5~6시간 걸린다. 용기포항~두무진은 2만원 정도다. 렌터카는 아반떼 기준 1일 8만원부터. 기름값은 별도다. 진촌리 주변에 주유소가 2곳 있다.
용기포항 앞엔 까나리액젓을 담그는 플라스틱통 수백개가 줄지어 있다.
진촌리에 모텔과 장급여관이 모여 있다. 용기포항에는 민박집이 많다. 민박 1박에 3만원. 민박집에서 1식 5,000원 정도 받고 밥도 해 준다. 성수기엔 방이 없는 경우도 많다. 미리 예약하는 편이 좋다. 등대민박(032-836-0102), 서해민박(032-836-7272).
패키지 상품은 까나리여행사(032-836-6789) 등에서 1박2일 14만원, 2박3일 18만원 정도에 판매한다. 인천~백령도 배편, 두무진 유람, 숙식이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로 유람선을 이용할 경우 어른 8,000원, 중·고생 7,000원, 어린이 5,000원이다. 유람선 이용시간은 40분 정도다.
백령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냉면. 해방 전만 해도 황해도 장연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황해도 사람이 많아 냉면을 잘 한다. 사곶냉면(032-836-0559)은 까나리 액젓으로 국물을 내는데, ‘섬에 놔두기엔 아까운 맛’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오후 4시40분에 찾아갔으나 “육수가 떨어졌으니 내일 오라”고 했다. 사곶해수욕장 근처 한국통신 건물 뒤, 사곶교회 정문을 끼고 들어가면 된다.
진촌리 ‘옹진냉면’(032-836-3637)은 메밀냉면과 짠지떡을 낸다. 메밀냉면 4,000원, 짠지떡 1접시 1만원. ‘반냉’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섞은 형태로, 물냉면의 국물을 줄이고 비빔 양념을 얹은 냉면이다. “군부대 애들은 다 이걸(반냉) 먹는다”고 하는데, 메밀면이 약간 텁텁하지만 양념이 새콤달콤해 먹을 만하다. 짠지떡은 찹쌀과 메밀을 섞은 떡피에 김치를 소로 넣은 일종의 만두다. 콩돌해변 앞 노점에서도 판다.
횟집은 두무진 유람선 선착장 앞에 모여 있다. 그 자리에서 잡은 우럭, 광어, 성게, 해삼 등을 낸다. 우럭 3만5천원 정도. 까나리는 5월까지가 제철. 까나리 액젓은 5㎏에 2만원 정도다.
백령도 인구는 4,500여명. 어민은 7%에 불과하며, 대부분 벼, 보리, 옥수수, 콩 등 농사를 짓는다. 교회가 10곳이 넘을 정도로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도다.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는 중화동 교회는 1898년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세워진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