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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FOUR
이른 아침이다. 마력진에서 모은 물을 조절하는 수도꼭지를 손끝
을 사용해 살짝 틀었다. 가느다란 실처럼 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낙하하는 물방울 타일에 닿아 깨어지듯 의식하자마자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왼 팔뚝.
지난밤 언니가 정성스레 감아준 붕대가 열심히 아픔을 감싸 안아
주고는 있다만, 고통에 익숙지 않은 나로선 정말이지 눈물 나게 아
프다.
그렇다고 내색할 순 없다. 언니에게 걱정 끼친 것만도 미안한데
그 앞에서 아프다고 질질 짜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풀기 위해
리본 모양으로 묶인 붕대의 고리를 잡았으나, 이내 한 번 망설임을
맞이했다.
정말 놀랐다. 날 구한 첫날의 카리스마가 많이 약해졌다곤 생각
했지만, 울먹거리면서 리본 모양으로 붕대를 매듭짓는 언니의 모
습엔 정말 놀랐다. 그리고, 너무나도 미안했고 말이다.
구름 낀 날에 옷이 젖듯 자연스레 떠오르는 언니의 붕대술. 그 늦
은 밤에 밖으로 나가 치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구해
온 언니. 상처에 술을 붓고, 생전 책에서도 보지 못한 이상한 풀을
바르고, 다리고, 문지르고. 또 예쁜 병에 담긴 뭔가를 붓고. 달이고
.
그 화려한 기술 앞에 완전 무릎을 꿇었다. 나건 내 상처건 말이다
. 처음에 언니가 망설임 없이 내 팔뚝에서 팔꿈치까지 고루 술을
뿌렸을 땐, ‘언니가 정말 화났나.’ 싶어 메아리처럼 밀려올 고통에
대비했다.
거품이라도 무는 줄 알았지만, 웬걸. 이상한 풀을 바르자, 상처
부위가 달아올라 열을 내뿜어 대긴 했지만, 뜨뜻할 뿐, 비명도 못
참을 만큼 아프진 않았다. 차마, 상처부위에 시선을 못 두었지만,
팔에서 피어나는 걸로 예상되는 연기는 정말 호러였다.
먹구름은 인제 그만. 추억하는 사이 천천히 푼 리본 매듭. 그 마
지막 가닥이 고리 밖으로 빠지면서 풀어졌다. 이번엔 팔뚝부터 시
작돼 둥글게 팔을 감은 붕대를 일자로 잡아당겨 풀어나가기 시작
했다. 붕대를 천천히 당겼다가, 앞으로 옮겨 잡으며.
그러다 얇아진 붕대를 보니 계속 쭉 당겨서 풀면 상처가 약간이
라도 눌리면서 아픔이 문을 두드릴 것 같아, 정성스레 돌려가며 풀
었다. 물론 시선은 벽에 못박아 둔 채로.
붕대를 완전히 풀어 구석에 두었다. 그리고 언니가 당부한 대로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에 팔을 적셨다. 처음에는 내 상처를 보는
게 두려워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물방울들이 갑작스런 열을 받
아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데야,
깜짝 놀라 시선을 안 둘 수가 없었다.
어젯밤 삭혀두었던 고통을 지금에서야 맛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기어코 손을 빼진 않았다. 틀린 말을 해줄 언니가 아니니까.
"으~, …아얏~ 아뜨으으으!"
하지만 혀끝을 질끈 물어봐도 동굴에서 호랑이 튀어나오는 기세
로 입술 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내미는 신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벌컥.
"라웨르!"
"흐익!"
갑자기 벌컥 열리는 샤워실 문 때문에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
다. 잠에서 방금 깼는지 산발머리를 한 채로 문설주 사이에 서있는
우리 언니. 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빛 아래 감히 깜짝 놀랐
다는 사소한 것으로 뭐라 할 순 없는 일. 백치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헤헤, 언니 일어났어?"
"응."
단답. 죄인인 나에게 벌해진 형벌 단답형. 오오, 그것은 무섭고도
잔인한 형벌이라네. 모든 대답이 단답으로 돌아오는 이 어색한 형
벌 속에서 헤쳐나가기 위하선 이 분위기를 절단하는 것만이 유일
한 탈출구. 여기 톱이 하나 있다.
…잠깐! 설마, 이 톱은. 어색의 족쇄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발목
을 자르는 것이란 말인가. 아아, 나는 어찌 해야만 …
"무슨 생각해?"
내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 모습이 꽤 심
각하게 비쳤는지, 언니의 물음에 얼른 생각을 접고 대답했다.
"으, 으응? 아냐, 뭐. 아무 것도."
"그래? 물 그 정도 묻혔으면 됐어. 옷도 입고 있으니까 잠깐 나와
볼래?"
인간은 역시 대단해. 정말 딴 일에 몰두하다 보니, 팔의 고통까지
잠시 잊고 있었다니. 왼팔은 둔 채로 물을 잠갔다. 다른 곳엔 물기
가 묻어 촉촉한데, 상처부위는 이상하리만큼 건조하다. 꼭 남의 살
을 갖다 붙인 기분이다. 그래도 흉터 없이 매끈한 건 대만족. 피부
색이 좀 변한 건 어쩔 수 없으려나.
샤워실에서 나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침대에 푹석 얼굴을 묻었다
. 역시 지은 죄가 있는지라, 본능적으로 침대에 앉아있는 언니의
시선을 피해보려는 순한 양의 몸부림이다. 그 위로 독수리 발톱이
날아와 꽂힌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야…"
로 시작된 자초지종.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표정 변화도, 한
마디 반응도 없던 언니가 마지막에서야 한 마디 흘린다.
"그래."
단답형. 더는 안 되겠다. 이렇게나 분위기를 잡다니.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나도 더는 못참겠다는 심정으로 언니에게
달려들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들어 언니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로
부드러운 바다 위를 뒹굴었다.
"우에엥, 언니 잘못했어!"
"……."
통했다. 처음엔 미지근한 반응에 실패한 줄로 알았지만, 살짝 빼
들어 살핀 언니의 표정은, 이런 나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몰라 짖은
당황스러움에 물들어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더욱 더 언니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어어언니니니잉~!"
"아, 아, 알았어. 나도, 뭐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네가 다친 게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가슴이 답답해서. 그
래서 그랬어. 미안해."
"흑흑, 아냐. 내가 잘못한 게 맞지. 나는 바보야! 언니 생각은 안
하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보!"
너무 연기에 물이 올라버렸다. 오해를 샀으려나. 아냐, 지금까지
의 경험으로 본 언니의 성격으론 속았을 여지가 충분해. 속였다니
까 어감이 이상한데? 뭐, 나도 반성 하고 있으니까. 언니랑 이런 분
위기가 싫은 착한 동기에서 나온 양치기 소년의 앙탈이라고.
"아냐, 내가 더 잘 못했지. 라웨르의 기분은 생각도 못하고…"
속은 건지, 속아주신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도 절실히 느끼는 한가지. 가끔 언니의 등에 천사의 날개가 숨겨져
있는지 손으로 더듬어볼 정도로 착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어지
는 언니의 천상의 멜로디.
"…라고 할 줄 알았냐? 라~~~웨르~~~!!!"
"꺄아악! 언니, 미안해에에~!"
"일루 안 와~?!"
여독에 지친 나그네가 갑작스런 하늘의 화려한 폭죽놀이를 나무
아래에서 즐기며 새 다짐을 새기는 시간. 딱, 그 시간 동안 미친 듯
이 언니를 피해 침대에서 나뒹굴었다.
"하악, …하~. 언니, 나 항복. 으~"
"진작 그랬어야지~"
언니에게 잡힌 팔목 부분이 땀 때문에 끈적거린다. 억울하게도
내게서 난 땀이다. 나는 이렇게 몸에서 열이 나는데, 언니는 지치
지도 않나 보다. 그래도 뻗치다 못해 이리저리 헝클어진 언니의 머
리칼을 보며 조금의 억울함을 덜었다. 아, 샤워하고 싶다.
"샤워 좀 하고 나올게. 으~ 덥다, 더워."
"그러지 말고, 목욕탕에 가는 거 어때?"
"온천?"
"목욕탕. 무슨 온천이 아무 데서나 펑펑 터지는 줄 아니?"
온천과 비슷한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천연과 인공의 차이려나.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몸을 씻을 순 있을 거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단하게 세수만 하고 나올게."
"고양이 세수."
쓸데없는 농담은 상큼하게 무시한 채 샤워실로 들어가 물로 땀만
씻어내고 나왔다. 아침은 먹고 가는 줄 알았는데, 여관 1층 식당을
그냥 지나쳐 밖으로 나가는 언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 나가
발걸음을 맞췄다.
"아침은?"
"가서 해결하자."
식당 설비도 완비되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만나고부터 항상
여행복 차림이었던 언니가 옷맵시에 꽤 신경을 쓴듯하다. 요간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신발
이 패션 샌들이다. 그것도 화사한 꽃무늬.
그 꽃향기를 따라 이번엔 내 아래쪽에 시선이 닿았다. 편하고도
평범한 하얀색 운동화. 옷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복이다. 깨닫고
나니 언니의 차림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니. 그 플랫샌들 이쁘다~"
"으, 응? 그래…? 고마워~"
워워. 정말 수상하다. 인간이 되는 데 실패해 술로 밤을 지새운
호랑이처럼 얼굴이나 붉히고 말이다. 그 앞에서 위로하자고 곰이
찾아갈 순 없는 노릇. 말을 빙그르르 돌렸다.
"뭐야, 뭐야~. 어디서 산 거야?"
"몰라, 선물 받았는데…."
선물이라면, 이틀 전에 날 두고 나갔을 때 받은 건가. 엄청 심각
한 척 하면서 나가 괜한 마음 졸였더니, 갔다 와서 보여준 게 선물
받은 샌들이라. 심히 꿈틀거린다.
복수의 의미로 누구에게 받았나는 묻지 않았다. 호호호. 아마, 물
어보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하지만, 난 물어 보지 않을 거거든~.
음훼훼. 쌤통이다. 야호~. 근데 혀가 왜 이리 쓴지는 모를 일이다.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궁금증이 봇물처럼 터져버렸다. 양을 바
라보는 이리의 눈초리로 물어보려 하는데, 언니의 관심은 이미 딴
곳으로 돌려졌나 보다. 누구에게 받았는지 안 물어봐 삐져서 그럴
지도. 하지만,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흑흑. 그런 건 물어봐
주길 바라는 게 기본적인 예의 아닙니까?!
"저 봐봐, 라웨르. 인형가게다. 물속에서 좀 놀만한 작은 거 몇 개
사갈래?"
"그래도 되나…?"
"그럼~. 룸으로 할 건데 뭐, 어때."
처음 들어보는 목욕탕에서의 ‘룸’ 이란 용어. 어느 정도 느낌은 왔
기에, 굳이 되묻지 않고 언니의 손을 이끌어 인형가게로 들어섰다.
각양각색의 진열장과 선반 위로 펼쳐진 뭉실뭉실한 동화나라. 또,
번뜩이는 해보고 싶은 한가지. 인형을 많이 모아, 그 위에서 누워
쏟아지는 잠비를 맞으며 촉촉한 꿈을 꾸고 싶다.
각양각색의 진열장과 그 위에 펼쳐진 한 폭의 동화나라. 제일 흔
하고 범위가 넓은 관상용부터 전쟁용에 이르기까지. 각각 인형들
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입으로 전해줄 것 같은 순수한 느낌이
다. 그런데, …잠깐.
"저, 전쟁용 코너라고?"
"응? 왜? 우리 라웨르, 그쪽 계열에 관심 있니?"
"전혀. 저런 거 팔면 좀 위험하지 않아?"
"괜찮을걸. 폭발력이 그렇게 세지도 않으니까."
폭발이란다.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그 코너를 낀 채로 빙그
르르 돌아보다, 드디어 그럴듯한 코너를 찾았다. ‘물놀이를 99배
로 즐기는 방법!’ 이란 코너. 비록, 우리의 목적지는 목욕탕이란 곳
이었지만, 비스름한 게 여기서 찾으면 딱 알맞을 것이다.
그중 손바닥만 한 귀여운 곰인형 하나를 들었다. 귀여운 다리와
확 눈에 띄는 그곳에 달린 꼬리표. 물속에 넣으면 점점 인형의 얼
굴이 커진단다. 우와, 무지 귀여울 것 같다.
"언니, 이걸로 하자~"
"의외로 정말 뻥 터지는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어, 어째서…?"
영문을 알 수 없어, 어깨를 으쓱이는 중 눈가를 스치는 곰인형 발
바닥의 쪼매난 글씨들. 처음엔 무슨 문양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
히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타이밍 암살용으로 좋다.’ 라고 수놓인 곳 위로 당당하게 그 빛을
내뿜어대는 점장 추천 마크. 물속에 너무 오래 담가두면 머리가 커
지다 못해 뻥 터지나 보다. 그것도 나름 귀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절로 나는 미소를 그리며, 당장 인형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언니, 나가자. 이 가게 무서워."
물속에만 있기 심심하니까 뭐든 하나만 고르자는 언니에게 생떼
까지 부리며 집는 족족 제자리에 돌려놓았지만, 기어코 하나를 사
집어온 언니.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기에 그 인형의 쓰임새를 묻
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물 먹는 인형이라든데, 그리고 배를 누르면…"
"터진다거나?"
"그런 유, 너무 좋아하지 마. 이건 그냥 누르면 입에서 물줄기가
나가는 인형이야."
심한 오래를 받은 거 같지만, 상관치 않고 직접 인형을 조사해 봤
다. 다행히 숨겨진 기능 따위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은 없었다. 안
심하고 나니, 지금 이 악어 인형이 곰인형보다 백만 배는 더 귀여
워 보였다.
약간의 에피소드를 곁들인 걸음이 드디어 멈췄다. 목용탕에 도착
한 것이다. 딱, 우리가 묵고 있는 여관만한 크기였으나, 인테리어
가 다르다 보니, 이 목용탕 쪽이 훨씬 더 넓고 풍성해 보였다.
미리 말해둔 대로, 룸을 잡은 언니와 함께 여러 사람이 함께 목욕
하는 곳을 지나 카운터에서 받은 팔찌와 번호가 같은 방으로 들어
갔다. 5~6인 실이다. 꽤 비싸 보이던데, 부르주아 언니.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뜨거운 공기 냄새. 숨을 쉬어도 가슴 끝
까지 공기가 닿는 거 같지가 않다. 녹슨 피스톤 같은 숨쉬기랄까.
그나저나 신발은 입구에서 벗었다 치지만, 옷은 입은 채라, 이러다
옷에 땀 다 배게 생겼다.
쇄골에 딱 달라붙은 옷을 때어 흔들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언니
를 바라봤다. 이미, 상의를 탈의 중이신 우리 언니. 그 손가락을 따
라가보니, 작게 마련된 원형 탕에다 옷을 넣고 있었다.
"거기다 벗으면 되는 거야?"
"응. 자동 세탁이거든~"
나도 언니에게 다가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미 목이여, 등이며,
쫙 달라붙어 있는 셔츠의 옷깃을 잡고 스트레칭하듯 위로 쭈욱 당
겼다. 은근, 벗겨질 때 기분이 좋다. 대충 옷을 정리해 넣고 따듯한
온탕으로 들어갔다. 워낙 뜨거운 공기에 몸이 데워졌다 보니, 주
춤거림 없이 단번에 목까지 잠글 수 있었다.
"언니도 어서 들어와."
"악어인형 좀 챙기고."
으아, 이거 진짜 살 빠지겠다. 탕도 뜨끈하고 공기도 뜨끈하고.
몇 걸음 앞 냉탕으로 눈이 갔지만, 언니에게 참을성 없는 동생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에 싫
은 티가 났는지 언니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물었다.
"온도가 너무 뜨겁나?"
"아니야. 적당해, 적당해."
"그래? …우와, 이봐라. 이 악어인형 물을 이렇게 많이 흡수하고
도 물에 떠있는데? 귀여워. 푸웁."
나처럼 축 늘어진 주제에 이 악어 녀석은 잘도 물에 떠있다. 인간
인 내가 이딴 인형에게 끈기로 질 순 없지. 몰라, 나도 버틴다~!
…라고 생각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나중엔 그런 것 따윈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상쾌한 바람까지 느껴진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마력진을 언니가 구동한 상태지만, 그 이상으
로 말이다.
입가를 동글게 말아 천천히 공기를 쏘며 놀고 있을 때였다. 어깨
에서 톡톡 치는 느낌이 찾아와 옆을 돌아보자 무릎을 굽힌 채 사선
으로 이쪽을 향해 언니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천천
히 등 뒤를 돌려 보이는 언니.
피로 물든 어릿광대의 대가리가 우리 언니의 등을 독차지하고 있
었다. 그렇게 잠시, 아무 반응도 못 찾고 있을 때, 설익은 주먹을
쥔 언니의 아람 같은 눈.
"이게 내 과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와서 언니의 과거 따윈 아무 상관도 없거
니와, 어떤 과거든 양팔을 양끝으로 쭈욱 벌려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후로도 그럴 것이기에, 오
늘은 이런 반응을 선택해 주었다.
"언니, 너무 멋있어~! 꺄아~. 나 책으로 본 적 있어! 조커 길드!
가만 있자…. 등에 문신이라면, 고위 간부잖아~! 보통 평범하진 않
을 줄 알았지만, 진짜 딥따 대단해, 자랑스러운 우리 언니~"
"…이 놈의 마스터,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명색이 어둠
의 길드란 명패를 달고도 책에 보란 듯이 정체가 까발려져 있다니.
"
"나 똑똑하지?"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와 머리칼을 비벼주는 언니의 손을 역류해
나도 언니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보았다.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언니가 곧 우습다는 듯 미소 짓는다. 나를 생각했는지,
자신을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긴장이 다 풀린다, 얘."
"이름으로 불러줘."
멍.
"…? ……응, 라웨르."
다시 돌아온 여관방. 물론, 그냥 돌아오진 않았다. 상점가부터 시
작된 윈도쇼핑. 가끔 돈이 드는 놀거리도 즐겼지만, 마지막 코스
노점가를 지날 때까지 손에 든 거라곤 여전히 악어 인형 하나뿐이
었다. 그러다 마지막 길목에서 유혹을 참지 못하고 집어든 게 ‘불
우마블’ 이란 보드 게임, 바로 지금 침대에 올려져 있는 이것이다.
누가 더 불우한지를 가리는 게임이라는 짤막한 설명이, 심리적으
로 더욱 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옷을 간편복으로 갈아입은 언니도
관심이 가지고,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내용물은 간단했다. 판때기 하나랑, 용도 모를 측정기, 그리고 게
임에 필요한 말. 게임 말은 판 위 ‘start’ 라 쓰여 있는 곳에 올려놨
으나, 측정기 같은 이 물건은 대체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언니에게
들어 보였다.
"그건, 프로빌이라고 말하자면 룰렛이지. 조금만 마나를 주입하
면 안에 있는 바늘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랜덤으로 임의 숫자를 가
리킬 거야. 꽤 잼있다구."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해보았다.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요
동치던 바늘이 중앙 살짝 옆, ‘3’ 이란 숫자에 정확히 꽂혔다. 1부터
12까지 있는 걸 보면, 그리 높은 숫자는 아니었다. 다음엔 언니가
해봤는데, …허걱. 히든이란 글자를 이루며 반짝이는 불꽃. 정중앙
에 꽂혔다.
"이러면, 한 번 더 돌린 다음에…"
12가 나왔다.
"…제곱하면 되는 거야."
왠지. 이번 게임 예감이 좋질 않다. 그렇게 산들산들 하게 진행된
언니와의 불우 게임. 초반에는 잘 나가나 싶더니만, 후반에 다 말
아먹었다. 수많은 악수를 내가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순전
히 그게 다 운인데, 어떻게 하나같이 안 좋은 수로만 빠지는지.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나의 완패. 당최, 싱글벙글 웃음을 잃지 않
는 언니의 입가. 은근, 언니도 엄청 단순한 것 같다. …그리고, 언
니를 닮은 나도. 후후, 언니의 저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투지가 불
타오른다.
"체체쳇. 그렇게 좋아?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나는 이기는 게
뭔지도 몰라."
"꺄하하~! 그럼 나 이기는 법 알려줄게~"
"응?"
괜스레 눈을 번뜩이며 호응했다. 이렇게 활달한 나의 반응과는
반대로 언니의 눈매는 점점 가라앉기만 한다. 이윽고, 완전히 부스
스해진 눈으로 나의 무릎베개를 청한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을 이
마에 가져다 대며 웃는 언니. 얼굴에 그림자가 반쯤 드리웠다.
"나는 따듯한 거에 약하지롱. …그리고 간지럼에도 약해. 누가 간
지럼 태우면 바로 항보옥~"
"…해봐도 돼?"
"아니. ……으엑! 우하하, 하, 하지 말라니까~!"
복수하였습니다. 또 너무 움직이면 땀이 날까 봐 어느 선에서 봐
주기로 하고, 나도 침대에 드러누웠다. 고급 침대라서 그런가, 항
상 느끼는 거지만, 꼭 하늘을 여행하는 깃털이 된 것처럼 푹신푹신
하다. 천사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은 끝이 아니라, 여행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 언니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느새 언니는 잠이 들은듯하다. 언니와 함께하는 세 번째 저녁.
야속한 언니의 외출만 없었더라도, 네 번째 저녁이었을 텐데. 아쉽
지만, 앞으로 백 번째, 천 번째, 만 번째 저녁도 함께할 것이기에,
끈적끈적한 미련함은 쉽사리 털어 낼 수 있었다.
그런 수많을 저녁들 가운데서 첫 번째로 언니보다 늦게 잠드는
날이다. 언젠가 잊어버리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이 조금은
더 특별해 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날개가 좋아.
하늘을 날고 있다. 새콤달콤 솜사탕 구름도 보이고 황혼을 비추
는 미지근한 태양도 보인다. 그리고 옆으로 그것과는 비교할 수조
차 없이 가장 소중한 언니가 보인다. 나는 붉은색이 싫다. 언니의
날개는 붉은색이지만 싫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는 순백의 순결한 깃털이다. 문득,
내 날개 색이 궁금해 졌지만, 하늘을 나는 중이라 보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언니에게 물었더니, 웃기만 하며 가르쳐주질 않는
다. 답답한 마음에 무리하게 멈춰서 라도 보려 했다.
조금 땅으로 추락해도, 다시 날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날개가 없
었다. 그것을 아는 순간 끝없이 땅으로, 땅으로, 땅으로만 떨어졌
다. 살고 싶은 마음에 아득히 멀어진 높은 하늘을 나는 언니에게라
도 손을 뻗어본다.
탁.
"라, 라웨르?"
잡았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잡았습니다. 이 포근함을
다시는, 다시는, 절대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어, 언니?"
가는 바람 따라 뻗쳐진 나의 가지가 물들인 건 언니의 오솔한 손
목이었다. 나갈 채비를 마친 언니의 차림과는 안 어울리게 아직 어
둑한 밤이다. 그런데도 언니의 당황한 표정은 뻔히 보였다.
"좀 더 자, 라웨르~"
"…어디 가는 거야?"
"잠깐 바람 좀 쐬려고…. 추우니까 방에 있어. 혼자 다녀올게."
"나 버리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지껄이며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언니의
발걸음을 바닥에 붙였다. 그럼 어쩌라고. 지금은 잠시도 혼자이기
싫은 걸 그럼 어쩌라고. …정말 어쩌자고 내가 그런 소릴 했는지
지금에서야 살짝 후회되지만, 눈을 돌리긴 싫다.
"나도 데려가 줘."
"그게…!"
"……."
"……옷 입어."
이겼다. 이것보다 더 쓸쓸한 승리가 있으려나. 미안한 마음에 얼
른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도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자꾸
만 우습다. 그래서 미소가 그려진다. 간편한 언니의 분위기에 맞춰
입었다. 이 정도면 조금 눈치가 있단 소리 좀 들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검은색 머리띠로 앞머리를 올린 언니를 따라 밖으로
나와 구름 위처럼 스산스런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향한 곳은 아름
다운 추억이 간직된 술집. 그래, 바로 어제 일련의 사건이 있었던
그 술집이었다.
그런 곳에 들어가길 꺼리는 낌새로 비쳤는지, 어깨를 풀어주는
언니의 손길. 하지만 어쩌나, 언니. 난 혼자서도 들어가 봤을 정도
로 발랑 까졌는데. 그래, 설마 이렇게 어두운 밤인데 아저씨가 알
아보거나 하진 않겠지.
그렇게 언니의 뒤를 따라 들어선 술집. 언니 역시 저번의 나처럼
바로 스탠드로 향했다. 아무 말도, 주저함도 없이 돈주머니 하나를
던져올린 언니가 머리띠로 앞머리칼 올리고 주인장의 반응을 기다
렸다.
"뭐로 드릴까?"
"열 넷."
"둘."
무슨 대화가 저런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그리고서, 돈주머니
를 하나 더 올려놓는 언니의 행동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했
지만, 정말 말들을 왜 저리 짧게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더러, 신비
주의라고 칭하나.
왕 손바닥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술집 뒷골목으로 이동한 우리는
이 술집의 진정한 주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많
이 피폐해 보이는 이미지의 남자. 눈썹은 황야의 모랫바람 같았고
눈꺼풀이 움푹 팬 게 꼭, 책에서 본 마약에 찌든 사람의 얼굴이었
다.
뒷골목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그는, 왕 손
바닥이 올려놓은 돈주머니 두 개를 보고 나서 우리의 인기척을 쫒
아 시선을 걸었다. 심각한 분위기. 이럴 땐 괜히 나서지 않는 게 최
고려니 싶다. 시작은 언니였다.
"브렌서스 가 납치사건."
"열하나."
꽤 높은 숫자가 불렸다. 지금 언니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해결
하지 못할 액수인 걸 알기에 떨리는 걱정이 찾아왔다. 먼저 다섯
개의 똑같은 돈주머니를 올려놓은 언니가 천천히 머리띠를 풀러
내밀었다.
"여섯 개."
"우리 규칙은 이렇다. 상대가 사실을 말하면 우리도 사실로 답한
다. 그리고 똑같은 의문은 두 번 있을 수 없다. 시작해라."
또다시 뜬구름 잡는듯한 말. 하지만 언니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고요하다. 인위적인 표정이겠지만, 날카롭고, 무서울 정도로 명료
하다. 그 무거운 기세에 눌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채 언니의 소
맷자락을 꽉 쥐었다. 역시나 뜬구름 쥐듯이 말이다.
그리고 시작된 언니의 말은 정말 놀라웠고 한편으론 충격이었다.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인지의 차이가 곧 보는 능력의 차
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 고요한 밤에 언니가 외출하
려 했던 것과 그곳이 이곳이라는 것도.
첫 번째로. 지금의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던 로베 극단 공연 당일,
아침 일찍 간 우리보다 먼저 앉아 있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
해서 언니는 얘기했다. 꼭,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준비한 사람들 같
았다나.
그게 신경 쓰여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솜털
베개를 사로 갔다 온다던 게 그때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서 ‘이벤
트’ 란 이름으로 극단과 엮인 언니와 나. 아무것도 몰랐던 나야 마
냥 두근거렸지만, 언니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오스렌 씨에게 조금 까칠
했었나 보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 상황에 대해 다른 느낌을 받
았다.
두 번째로는 언니가 삼거리에서의 음료 대회를 말했다. 직접 참
여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아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
고 말한다. 직접 참여한 나로선 귀가 번뜩이는 얘기였다. 우선, 거
리에서 대회를 연다는 자체가 특이하다고 한다. 얼마나 장소가 많
은데, 하필 거리에서.
하지만, 인간 만사 새옹지마.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있을 수도 있
는 일. 언니가 진짜 여기서 의문을 품은 건 그게 언제부터 계획된
것이냐는 사실이다. 만약, 갑작스럽게 그런 대회를 삼거리에서 주
최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단숨에 범위가 좁혀질 뿐만 아니라, 우
리 쪽에서는 거의 확실해 보이는 용의자도 있다.
대단한 언니. 위화감까지 들 정도로, 지금까지 무너졌다고 생각
했던 카리스마가 꼿꼿하게 세워져 멍한 구름을 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언니의 음성이 암묵적으로 뜻을 밝혔다.
"예상은 가지만, 일을 하려면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이제 그쪽
차례."
이번엔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말한 사실은 음료 만들
기 대회가 갑작스럽게 개최된 것이라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구름 사이로 느낌이 팍팍 꽂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납치에 관한 진부한 수법에 관한 것들. 삼거리
대회는 당연히 아리비를 성 밖으로 안전하게 빼내기 위한, 이른 바
하이딩 서비스란 것이다. 은폐를 위한 연막이다, 연막.
"가장 자주 이용되는 건 마차. 하지만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평상
시 외로 마차를 돌린 적이 없다. 따지자면…"
그리고 이어지는 단어, 술통.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들을 거
론했으나, 술통이란 단어만은 뇌리에 번개가 친 듯 나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설마 하면서도 자꾸만 나를 감전시키는 기억 속 그 한
자락. 세아토와 내가 대회전에 잠깐 앉아 쉰 술통. 그 술통 향기로
취했는지 어푸어푸 입술이 달싹였다.
연거푸 답답하게 오물거리는 나의 주등이가 뚜껑으로 덮였다. 그
러면 안 된다는 듯 나의 술 향기를 제지한 손 위로 언니의 머리칼
까지 흔들린다. 뭐, 그 술통은 전혀 관계도 없을 테니까 조금 더 묵
혀두기로 하자. 설마, 아무리 대담하다 해도 그렇게 눈에 띄는 술
통으로 납치를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어진 남자의 말로는 성 밖으로 빼돌리는데 실패한 것으
로 보인다고 한다. 얘기치 못한 마찰음이 있었다고 하는데, 경비병
과도 아니고 다른 귀족들과도 아니라고 한다. 예상하건데, 아마 오
스렌 씨와 극단원들일 것이다. 그들도 대회에 참가해 삼거리 쪽에
있었으니까.
한 성의 대귀족이라고 한들, 모든 경비병들을 휘하에 둘 순 없는
일. 화살이 억울한 로베 극단에게 쏠린 걸 보면, 주위 귀족보다 꽤
나 우뚝 섰나 보다. 이 성의, 성주. 그리고 잠시 후 남자의 말이 끝
나는 대로 휙 돌아나가 버리는 언니를 따라 음침한 남자에게 살짝
고갯짓으로 인사를 흘리고 나왔다.
이번엔 구출 작전인가 싶었는데, 무뚝뚝한 언니의 발걸음은 다시
여관에 닿았다. 작전을 짜고 내일 구출하려나 싶어, 도와줘서 고맙
다는 인사를 전하려던 찰나, 나의 사고를 정지시키는 언니의 한마
디.
"여관에 있어."
아까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때 부릴 수 없었다. 게다가,
무슨 염치로 나 때문에 엮인 일에 도움도 안 되는 짐짝이 될 수 있
겠느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가 바보 같고, 언니에겐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는 날개가 없지만 추락하고 싶지도 않은 참으로 이기적인 사람
이다. 그래서 이렇게, 애달프게 손길을 쥐고 있지만, 날 이끄는 이
는 참으로 한없이 높이 나는 새다. 지금 날개가 없다고 끝까지 없
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한 번쯤은 내가 위에서 도와주
고픈 소망을 간직한 채로 날개가 돋아날 날을 기다릴 뿐.
누가 아는가. 오늘도 웃지만, 내일도 웃는다. 펄럭펄럭.
"언니야, 화이팅!"
"…그래. 새벽이 가기 전에 옆에 누워 있을게."
"약속~"
"호~"
지금까지의 나는 도대체 언니에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루
하루 언니에게 피곤한 일을 만드는 기계는 아닌지. 거기에 더해 비
싼 기름 값도 못하는 멍청한 고철 덩어리는 또 아닌지. 하지만, 세
아토 일은 가만 두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걸. 지금은 말릴 수 없어 언
니를 조금 힘들게 한 거, 꼭 다 갚아줄 거야. 기대해줘.
언니. 고마운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