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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친친
학창 시절, 김두관은 공부를 아주 잘했던 것은 아니다. 시험을 보면 과목별 점수 차이가 심했다. 특히 김두관의 수학 점수는 늘 형편없었다. 반면 사회나 역사, 국어 점수는 아주 높게 나왔다. 그때부터 김두관은 상식과 시사에 강했던 셈인데, 덕분에 고교 시절 차인태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MBC <장학퀴즈>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김두관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영배라는 친구네 집으로 텔레비전을 보러 가곤 했는데, 그날도 장학퀴즈를 방영하고 있었다. 김두관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장난삼아 문제를 풀다 보니 그날 장원한 학생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다. 그러던 중 광부가 되어 서독으로 떠나는 큰형님을 배웅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 남해 촌놈이 처음으로 상경을 한 것이다. 배를 타고 여수까지 나와서 열차를 탔는데, 영등포역까지 12시간이나 걸렸다. 그러나 김두관의 형님의 출국 일정은 연기되었고, 그 바람에 본의 아니게 대림동 큰누님 댁에서 일주일 정도인가를 더 머물게 되었다.
“장학퀴즈에 출전하고 싶어요.”
배포가 두둑한 편이었던 김두관은 서울에 온 김에 장학퀴즈에 출전하고 싶다고 형님을 졸랐다. 방송국에 알아보니 학교장 추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빠르게 연락할 통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추천을 받아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녹화를 진행하는 토요일에 공개홀로 직접 나오세요.”
김두관은 형님과 함께 정동에 있는 MBC 공개홀을 찾아갔다. 방청석에 30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출전을 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단답식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예선이 진행됐다. 그중 단 한 명만이 선발되어 다섯 명이 출전하는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약 스무 개 의 문제가 출제됐는데, 김두관은 열여섯 개인가 열일곱 개의 문제를 맞췄다.
“남해에서 온 김두관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방청석에 앉아 있던 김두관은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이미 출전이 확정된 네 명이 기다리는 무대로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그의 가슴이 떨렸다. 차인태 아나운서가 출전자 전원에게 한 가지씩 질문을 던졌다.
“김두관 학생은 장래희망이 뭐죠?”
“스포츠 해설가가 되고 싶습니다.”
“하하하, 장학퀴즈 출전자 중에서 장래희망을 스포츠 해설가라고 답한 사람은 김두관 학생이 처음이네요.”
초반에는 성적이 부진했다. 50점짜리 문제 5개를 남겨둔 시점에서 김두관의 점수는 기본점수 200점에 140점. 부저는 빨리 눌렀지만 오답을 말해 벌점을 받은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막판에 김두관의 시동이 걸렸다. 50점짜리 문제를 연달아 네 개나 맞힌 것. 순식간에 340점이 됐다. 그중 정답 하나는 ‘주은래周恩來’였던 것으로 김두관은 기억한다. “조선의 진경 산수화가”를 묻는 질문에 ‘겸재 정선’이라고 대답한 것도 기억하고 있다. 1위는 380점의 담양여고 학생, 2위는 340점의 남해종고 학생인 김두관. 마지막 한 문제를 맞추면 장원도 가능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말한 것은 다른 학생이었다. 결국 차석에 만족해야 했지만 김두관은 개선장군처럼 남해로 돌아갔다. 녹화한 내용이 TV로 방송되던 날, 김두관은 남해의 영웅이 되었다.
1995년 남해군수 선거에 나갈 때 이어리 이장 경력 밖에 적을 것이 없어서 장학퀴즈에 나가 차석한 것까지 집어넣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선거에서 ‘장학퀴즈 차석’이라고 적었던 사람은 김두관 밖에 없을 것이다. 수석도 아니고 차석을!
첫댓글 대통령출마말고 1대100출연강추.........
김두관 훌륭한거 다 압니다. 경남지사 사퇴전까지는요.
그러나 야권지지 여론이 문재인, 안철수 요 두분이외에는 관심도 없어요.
저도 요 두분만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문재인 안철수 이분들 없었다면 아예 정치에 관심도 두지 않았을겁니다.
경남지사 사퇴는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동토의 땅 경남을 객토할 수 있는 기회를 김두관의 욕심으로 그릇쳤다고 생각하닌 분하고 원통합니다.
경남지사보궐선거(대선과 같은날짜)시 대선후보 김두관과 함께하는 분이 나가서 승리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