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제13,14화
🎎(태조4, 정종)1차 왕자의 난(2)
방원은 권력 구조 핵심에서 차츰 밀려나고, 진법훈련이 강화되어 세력 기반이 마지막 보루인 사병마저 혁파될 위기에 놓인다.
위기를 느낀 방원은 정도전 일파가 밀모해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며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여 단번에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트집을 잡아, 이것을 미연에 방지 한다는 명목으로 사병을 동원해 반대파를 제거하였다.
그는 이숙번 등의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 일파를 갑자기 습격하여 살해했다.
그리고 세자 방석을 폐위하여 귀양 보내는 도중에 살해하고 생모가 같은 방석의 형 방번도 함께 죽였다.
이로서 방원의 정적은 거의 제거되었고, 정치 정세도 크게 바뀌었다. 왕자 종친과 조준 등 일부 개국 공신 및 방원의 심복인 하륜 등이 실권을 잡았다.
이들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방원 자신이 사양해 둘째 방과(후에 정종)가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실권은 방원 일당이 장악하였다.
양보가 없는 권력의 세계에서 1차 왕자의 난 이후 방원은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훗날을 기약할 자신이 있고. 장자 승계 원칙을 내세워 난을 정당화 하며, 태조와의 관계,이복동생을 죽이고 권좌를 탐했다는 세상의 비난을 고려하여 택한 포석 이었으리라......
1차 왕자의 난 이후 태조는 왕세자 방석과 방번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한달 뒤인 9월에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 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이로부터 태조는 상왕으로 칭하게 되었다.
왕으로 즉위한 정종은 즉시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하여 신덕왕후 강씨와 동급으로 승격하였으며,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은 신의 왕후를 원비로 교체하여 선덕왕후보다 윗서열로 만들었다.
이로도 성이 차지 않아 생모인 신의왕후를 왕후보다 상급인 왕태후로 격상하고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을 낮추고 신덕왕후의 소생들을 서자로 격하시켜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왕비와 왕자의 서열이 권력에 따라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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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제14화
🎎(정종) 2차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세력구조는 방원 일파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이들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으나, 아직 사병을 거느린 같은 한씨 배속에서 나온 형제들이 여럿 있고, 그들의 세력도 적지 않았다.
방원으로서도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어 항상 그들을 견제하였다.
정종의 동생이자 방원의 형인 방간 역시 왕위를 계승하려는 야심과 호기가 있었으나, 인격. 공훈.위세가 방원에 미치지 못하면서 항상 시기심과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어느 논공행상에도 불만이 있는법...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이 방원을 제거 하려 한다고 말하는 등 난의 성공에 공이 많았던 박포가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해 불평하다가 충북 영동으로 귀양갔다.
불만을 품고 있던 박포가 방간이 방원에 대해 불평하자, 방원이 장차 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 밀고하여 방간의 거병을 선동했다.
방간은 이 말을 믿고 사병을 동원하여 방원을 치러 갔으나, 이미 밀정을 심어 방간의 동태를 파악한 방원도 곧 사병을 동원하여 개경시내에서 맞부딪혀 결국 방원이 승리하였다.
두 사람은 체포되고 방간은 유배되었고 박포는 사형 당했다.
이로써 방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고, 그의 정치적 세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방원의 세자 책립은 결정된 셈이었다.
1차 왕자의 난이 이복형제 간의 싸움이라면, 2차 왕자의 난은 같은 뱃속에서 난 형제의 싸움이었다.
난이 평정된 뒤 방원의 심복 신하인 하륜의 주청을 받아들인 정종은 1400년 2월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고 11월 왕위를 방원에게 물려주니, 그가 제3대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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