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죽음
정시마
하늘은 온통 컴컴한 구름으로 뒤 덮혀 바위덩어리라도 떨어질 기세로 보이고 그 순간 나는 수증기 피어오르는 감정의 입구쯤에서 창문을 사이 두고 있었다.
어느 세신사가 유리문 사이 손가락 하나 낀 채 피를 흘렸다고 했다.
상처자리 비닐봉지로 씌워 푸른 이태리타월 속 저녁이면 흐물흐물 살과 물이 반죽된 듯 힘쓰지 못하는데 그렇지, 생계를 위해서라면 뭉개질지언정 손가락하나쯤이야 하고 태양의 흙으로 빚은 손 하나 빌려온다고 했다. 물안개 몰리는 구석진 세신사실 육중한 몸뚱이 맡겨 놓은 분홍색 비닐침대 위로 시체다루 듯 이리저리 굴리고 뒤집고 철썩 내려치다 부족한지 천장 쇠파이프 매달려 밟는다고 한다.
이태리커피는 없고 얼음커피로 냉가슴 달래보지만 탕 밖에서 두 손은 벙어리가 되고 목욕탕의 고요한 소란은 타일 장벽에 가려진 완전한 즐거운 성이라고 말한다.
고인 물속 고독을 모르는 부드러운 육체 위로 반쯤 엎드린 전신의 고독만 지닌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계절도 스며들 수 없는 같은 하루 속에서 탕보다 섬에 가까운 물 같은 세상 저버리지 못한 것이 독 오른 균 반평생 지친 심장의 정곡을 쳤다고 한다. 앰뷸런스 울음소리 가까워져 빗물 젖은 장미의 행렬조차 길 내주지만 가슴으로 뚝 꺾여 멈추는 숨, 타일 바닥으로 적막한 몸 하나 쓰러졌다고 했다.
죽음은 어둠속에서 찾아와 세상 밖으로 못나가는 우연히 아주 우연히 있다고 비 흠뻑 젖은 유리창이 말문을 닫는다.
한때는
물감 빛 가발머리 쓴 꿈의 깊은 곳에서 웃고 싶었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달리 부른다면 미소라고 부르지
입술 그림의 완성은 얼굴가득 여러 개 미소로 채우지
어둠을 가리기에 합당한 그림자라지
집고양이 수염처럼 입 꼬리 치켜세워 웃다가도 얇은 접시로 정돈되지
매일 쌓이는 미소는 이마위로 넘어가고
실험당하는 흰 쥐처럼 웃다가 지치지
너의 미소를 기억하는 아가씨가 말을 하지
어머, 사랑의 자리 빠져나간 텅 빈 여름 감성에 기대어 사셨나요
아뇨 긴 모래사장을 잇는 가슴통증에 혓속 말려들어도
입가 미소의 나라로부터 소리 없는 웃음은 버려야 원칙이죠
하얗게 번지는 눈동자 그리운 당신이 다녀간 거리에서 몹시 떨려와
겨울 장화처럼 황폐해지는 얼굴을 보이지
웃음이란 그냥 흘러나오는 건 아니지
귓불이던 눈썹 밑 광대뼈 볼록하게 묻혔다가 밖으로 나오지
때론 넘쳐나는 눈물로 헛헛한 굶주림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대형 유리창 비치는 확대된 웃음 설명되지 않을 때 함께 웃어넘기지
웃다가 울던 메타세쿼이아 길
나는 당신을 좋아했으므로
허투루 쓴 안경에 넘어지기도 하지
이젠 빛바래져 나마저 기억하지 않는 해변에서
큰 웃음 들어 봤을까 싶은 폭우 퍼붓는 날
비바람 몰아쳐 거대한 파도는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쓰러지는 파도소리 말이다
웃음 지뢰밭에서 겨우 빠져 나와 보니
꿈속에서도 이불 펼쳐 새벽까지 너의 울음 아니 웃음소리 지우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