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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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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마르16,9-15)<복음을 선포하여라>반영억 라파엘 신부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다양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며 위로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주어진 기쁨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보람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행복과 보람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정성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와 만남을 이루는 이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은총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금맥보다 중요한 것이 인맥이다.’라는 말도 합니다. 한 개인과의 관계를 얼마나 큰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맺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관계의 형성이 곧 복음의 선포입니다. 한 사람을 주님 안에 감사할 수 있도록 눈뜨게 한다면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될지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과의 선한 관계가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었던 까닭입니다. 자기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들어갈 수 없는 법입니다. “담기는 것은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는 옛 말이 있듯이 은총이 풍부해도 담을 그릇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담을 수 없습니다. 비어 있지 않은 그릇에 무엇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부활의 사실을 이미 예고해 주었고 또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고 이르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 완고한 마음은 말씀이 전달되는 것을 막고 부활이 선포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 마음이 거칠어지고 굳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완고해진 내 마음을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고쳐주시길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 선포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일상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이야 말로 주님을 만나는 감동을 줍니다. 어떤 기회를 특별히 만들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매 순간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큰 사랑이요, 복음의 선포입니다. 어영부영, 양다리 걸치기는 증거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님께서는 듣는 사람의 반응에 상관없이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유의지를 지닌 본인의 몫입니다. 우리도 누구의 말에 구애 받지 말고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자상함과 따뜻함으로 사랑을 가지고 온 정성을 다하여 그러나 사람의 눈에 들기보다 하느님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들의 눈높이로 접근해야 효과 있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
2020년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마술 공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분명 눈으로 보았지만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손동작 하나로 눈앞에 있던 동물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모자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새 한 마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보자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색색의 스카프가 계속 나오기도 합니다. 허공에 손동작을 했는데 카드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규모가 커져서 탱크가 사라지기도 하고, 비행기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할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마술의 묘미입니다. 마술사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마술을 보여 줍니다.
바이러스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인류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질병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30년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인류는 바이러스를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인류는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백신을 만들었고, 인류에게 고통을 주던 많은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인류는 바이러스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동물에게 있는 바이러스가 변형되어 인간에게 전해지는 겁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이번에 세계적으로 퍼진 코로나19는 변형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백신이 만들어지면 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입니다. 철저한 개인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전해졌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냈던 공동체의 신앙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표징을 보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가신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감격했습니다. 매일 함께 모여 기도하였고, 어려운 이들을 도왔고,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표징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예수님과 함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의 신비는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해 주어야 했습니다. 무엇으로 신앙을 전했을까요? 예수님을 체험했던 사람들이 전해준 ‘전승’입니다. 전승은 교리가 되었고, 신학이 되었고, 법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전승’을 수호한 사람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저의 신앙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전해주신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평생 성서를 번역하였던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를 모르면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라고 하였습니다. 성서를 가까이하면 우리의 신앙은 더 뜨거워지고, 더 깊어집니다. 나의 신앙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나의 신앙이 무뎌졌다고 생각하면 교회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성서를 가까이 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출처 :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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