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이다. 이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사순( 四旬)'은 본디 '사십 일'이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이 숫자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이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사십 일 동안 재를 지켰고, 엘리야는 호렙산에 갈 때 사십 일을 걸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시며 유혹을 받으셨다. 이처럼 '사십'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정화의 기간을 뜻한다.
파스카 축제를 기쁘게 맞이하려면 이 사순 시기 동안 철저히 준비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 기간에 희생과 극기의 표징으로 금육과 단식을 실천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한다. 교회는 매주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키고,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키고 있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단식재는 만 18세부터 만 60세의 전날까지 지켜야 한다. 이러한 희생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에 대한 나눔으로 드러나야 하므로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사순 시기 동안 거행하는 전례는 신자들이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 기간의 미사 때나 말씀 전례에서는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은 바치지 않는다. 그리고 제의의 색깔은 회개와 속죄를 상징하는 보라색이다.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 뜻을 새긴다.
사순시기(lent) 김인영 신부 역
I. 사순시기의 기원 사순시기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문헌이나 인물은 아무도 없으며, 이러한 사정은 특히 로마교회 안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사순시기가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는 것뿐이다. 슈스터(A. I. Schuster) 추기경이 지적한대로 공의회들의 규정 이전에 이미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 있었으며, 이러한 기간은 그 의미 자체와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적 천부적 재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부활 전 준비기간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인 언급은 4세기 초(동방), 4세기 말(서방)에 나타난다. 하지만 단식과 함께 부활을 준비하는 금욕적 관행은 이미 2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 4세기말 사순시기는 40일간의 기간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40이란 숫자는 성서의 상징적 숫자에 비추어 유래된 것으로서, 이러한 상징성이 이 기간에 구원적 가치를 주게 되었으며, 이 기간을 가리키는 사순시기(40일이라는 말에서 나옴)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성사인 표지이다. 사순시기가 발전됨에 따라 다음의 두 가지가 첨가되었다. 첫째, 성 목요일 아침에 이루어지는 죄인들과 교회와의 화해예식을 위한 참회 규율들, 둘째, 부활전야에 이루어지는 세례를 받기위한 세례준비와 함께 교리교육을 행할 필요성1)의 증대가 바로 그것이다.
II. 사순시기의 현행 전례거행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사순시기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성세의 회상과 성세의 준비를 통해서, 또한 다른 편으로는 보속을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여느 때보다 더 큰 열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면서,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케 한다. 따라서 전례에 있어서나 전례 교육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순시기 전례에 고유한 성세의 요소들을 더 풍부히 이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옛 전통의 몇 가지를 복구시켜야 한다. 이것은 보속의 요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전례헌장 109). 이러한 지침에 충실하기 위해 전례개혁은 사순시기에 무엇보다도 부활 - 세례 측면을 다시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사순시기의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성 목요일 주님 만찬미사 전까지로 정하였다.2) 사순시기의 일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난시기를 줄였다.3) 사순 6주부터 성주간이 시작되는데, 이 주일을 "주님 수난 주일" 또는 "빨마(성지)주일"이라 부른다. 이렇게 성주간으로써 사순시기를 끝맺는데, 이 성주간의 목적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순간부터의 그리스도 수난을 경배하는데 있다. 사순시기의 기도문들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위한) 성경독서들도 (그 내용이) 풍부하다. 사순 주일 성경독서는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 세례중심의 사순시기(가해), 그리스도론 중심의 사순시기(나해), 참회성격의 사순시기(다해).4) 구약성서의 독서들은 특별히 구원사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III. 사순시기의 신학과 영성 사순시기는 파스카 성삼일에 거행되는 파스카 신비에 비추어 해석되고, 또한 이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주는 파스카 '성사들'로써 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사순시기는 이전 시대의 고행적 관행을 드러내주는 고고학적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고 있음을 가장 잘 체험하게 만들어주는 시기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로마 8,17). 이것이 사순시기의 법칙이다. 여기에 사순시기의 성사적 성격이 드러난다. 즉 사순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신부인 교회를 정화시키는 시기인 것이다(에페 5,25-27 참조). 따라서 사순시기의 강조점은 고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정화(淨化)와 성화(聖化)의 행위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참회행위를 행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사막에서 단식하시며 고행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교회는 주님 자신께서 당신 신도들의 고행에 효과를 주시며, 그로써 참회행위가 전례행위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가 됨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사전례서의 기도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사순시기 성사를 해마다 지내는(annua quadragesimalis exercitia sacramenti)"5)(사순 제 1주 본기도), "지극히 공경하올 (사순시기) 성사의 기원을 기억하는(지내는)"(ipsius venerabilis sacramenti celebramus exordium)(사순 제 2주 예물기도), "주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공로와 우리 육신의 재계로 악습을 누르시고, 마음을 들어 높이시며, 덕행과 상급을 베푸시나이다"(사순시기 감사송 4). 사순시기는 본질적으로 세례성사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순시기의 참회 성격도 이 세례의 특성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교회는 세례의 공동체이기에 파스카의 공동체인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교회에 들어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회개를 통하여 자기의 기원이 된 성사를 표현하도록 불리었다는 뜻에서 특히 그러하다. 여기에 사순시기의 교회적 특성이 드러난다. 우리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분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도록 하느님의 모든 백성을 부르는 시기가 바로 사순시기인 것이다. 위에 언급한 사순시기 신학으로부터 전형적인 파스카 - 세례 - 참회 - 교회론적 영성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전망 아래에서, 단순히 내적이고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외적이고 공동체적이어야 하는 참회 행위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가진다 : ① 하느님에 대한 공격인 죄를 미워함.② 죄의 사회적 결과.③ 참회행위에 있어서의 교회의 몫.④ 죄인들을 위한 기도. 사순시기 동안 실행할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하느님 말씀에 더 자주 귀기울임.② 더 집중적이고 더 연장된 기도.③ 단식④ 자선행위(전례헌장 109-110 참조) 사목자들은 창의적으로 일해야하니, 사순시기의 전형적 행위들(기도 - 단식 - 자선)을 활성화시키고, 이러한 행위들이 현대인의 감수성에 맞도록 할 것이며, 사순시기의 본래 목표와 본성을 흐림이 없이 신도들이 개인적, 공동체적 차원에서 세례를 체험하고 실천하며, 진정으로 파스카를 지낼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파스카의 역동성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다.
IV. 성주간 성주간으로 불리는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은 특히 주의 수난 사건들을 역사 안에서 구체화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예수 생애의 마지막 순간의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성지주일부터 부활까지의 사건들을 다루는 전례가 풍부하게 발전되었다. 이에 대해 것은 에테리아 여행기(4세기 말)에 묘사되어 있다. 복음사가들이 그린 사건들을 재현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의 전례를 모방하기 위해서 서방전례는 이와 비슷한 전례를 구성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성주간의 기원이 된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를 지나치게 재구성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개개의 일화들의 가치에 주의를 너무 많이 기울이게 하는 면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스카 신비의 일체성을 깨뜨리게 되었다. 사실 중세에는 성주간을 '고난주간'이라 불렀으니, 이는 예수의 수난을 신비 안에서 기념하기보다는 극화(劇化)함으로써 고통과 감상적인 연민의 측면을 부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예수 수난의) 구원론적 측면과 죽음에 대한 승리, 부활의 측면들이 희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실된 일체성을 복구하고자 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주의하지 않고, 또 잘배우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같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순시기를 마감하고 파스카 성삼일을 여는 성주간의 주요 전례는 다음과 같다.
1. 주님 수난 성지주일 로마미사전례서가 말하고 있는 대로, 이날 교회는 당신의 부활신비를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기념한다. 미사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 성대한 행렬(1양식); 성대한 미사를 위한 성대한 입당(2양식); 성대 미사 외의 다른 미사를 위한 간단한 입당(3양식). 신도들이 많은 때는 미사를 할 때마다 행렬 없이 성대하게 입당식을 가질 수 있다. 사목적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와 세상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알아모시는 신앙을 부각시키는 가장 알맞은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사목자의 할 일이다. 따라서 예수의 입성 예식에 있어 부각시켜야 할 것은 성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왕권을 선포하는, 행렬을 통해 표현된 신비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는 주님의 수난을 기리는 하나의 예식이다. 주의 수난기를 읽으면서 주님의 '죽음의 신비'를 기념하는 유일한 주일이 바로 이 성지주일이다. 이미 복음사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신학적 의미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즉 예수께서 거룩한 도시로 가시어 개선하듯 입성하신 것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2. 성 목요일 : 사순시기의 마감 옛날에는 중죄를 지은 사람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일정한 기간동안 참회를 하였다. 성 목요일 아침에는 참회기간을 다 마친 이들 참회자들을 위한 화해예식이 거행되었다. 재의 수요일에 주교는 이들 죄인들이 참회복을 입도록 시키며, 이들은 성 목요일까지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었다. 성 목요일에 이들은 용서를 받으며, 그로써 부활전야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 같이 엄격한 참회 규율이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사순시기를 마치면서 고해성사 예식서에 마련된 형식에 따라, 그리고 각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화해의 파스카 성사를 거행하도록 초대받는다.
3. 성유 축성 미사 갈리아 전례의 흔적을 담고 있는 병자성유, 성세성유 및 크리스마 성유를 강복하는 예식의 기원은 로마전례에 있다. 아마도 7세기까지는 성유축성이 성 목요일이 아니라 사순시기 동안에 행해졌던 것 같다. 성유축성이 성 목요일로 정해진 것은, 성 목요일이 성찬례가 제정된 날이어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실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즉 부활전야 때 그리스도교 입교성사를 거행하기 위한 성유들, 특히 성세성유(예비자 성유)와 크리스마 성유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성유축성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성사들이 성찬례와 연계되어 있다는 성사 신학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성유축성 의식의 역사를 논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다음의 사항만을 기억하기로 하자 : 라틴전례의 관습에 따르면 병자의 성유는 감사기도를 마치기 직전에 축성하고, 성세성유와 크리스마 성유는 영성체 후에 축성한다. 그러나 사목적 이유가 있다면 모든 성유축성 예절을 말씀 전례 직후에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순서는 앞에 설명한 대로 지켜야 한다(미사전례서 성 목요일 미사). 이 같이 성유축성이 거행되면, 주교의 강론 다음에 즉시 사제들의 약속 갱신식을 거행한다. 이 성대한 전례는 교구 사제들이 자기 주교 주위에 모여 사제직을 기념하는 자리가 된다. 이 미사의 성서 본문과 기도문들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며 상기시킨다. 사제들이 충실하겠다고 서약하는 자신들의 사제적, 즉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근거한 사제직의 예언적 본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루가 4,18). 본질적으로 사제직이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다면, 이 사제직은 성찬례와 복음의 선포에 초점을 맞추며, 사제직의 예언적 차원이 갖는 깊이와 넓이를 성찬례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