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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 둘레길 4/5/16코스 시작점! 삼별초 기념비와 망양돈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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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강화군 여행] 강화 둘레길 4/5/16코스 시작점!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와 망양돈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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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강화 외포리 서편 끝자락에 있는 망양돈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 망양돈대 입구에 보면 진돗개 상
이 하나 보이고 제주의 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돌하르방[문, 무관] 이 두 개가 서 있고 마을의 수호신인 솟대와 그 뒤로 三別
抄軍護國抗蒙遺墟碑[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라 기념비가 하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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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라면 학창 시절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고려의 마지막 저항 세력 屋上屋[옥상옥] 三別抄[삼별초]!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알려진 인천 강화도엔 고려시대에 무신정권 하에서 無所不爲[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좌별초, 우별초, 신
의군의 3개 별초군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三別抄[삼별초]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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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別抄軍護國抗蒙遺墟碑[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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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 53호, 진돗개: 한국의 토종개. 중형견으로 경계심과 충성심이 강하다. 1962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보호
하는 진도개가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됐다. 진도개는 진돗개 중에서도 진도군의 진도개심의위원회가 정한 혈통과 표
준체형을 갖춘 개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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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종[고종 18] 때 무신정권 최우가 도적을 잡기 위해 야별초를 설치했는데 뒤에 그 군사가 많아지자, 좌, 우별초로 나
누었고, 몽골의 고려 침입 때 몽골에 잡혀갔다가 탈출해 온 군사와 장정들을 모아 부대를 창설하여서 신의군이라 불렀다.
삼별초는 경찰, 전투의 임무 외에 도성의 수비와 친위대로서의 임무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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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란 고려시대 대표적인 군사 조직인 2군[鷹揚軍(응양군)과 龍虎軍(용호군)]과 6위[左右衛(좌우위), 神虎衛(신호위),
興威衛(흥위위), 金吾衛(금오위), 千牛衛(천우위), 監門衛(감문위)]의 6개 부대를 통칭으로 부르는 군사 조직을 말한다.
당시 고려의 2군 6위는 활약이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1232년 고려 정부가 강화로 천도한 뒤 대몽 항전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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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마을 입구에 세워 수호신 구실을 하는 장승이다. 돌하르방이란 ‘돌할아버지’라는 제주도 방언이
다. 돌하르방은 머리에 둥근 감투가 씌워졌고,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편이며, 입은 다물었다. 한쪽 어깨를 치켜올렸고, 두
손은 배 부분에 위아래로 가지런히 모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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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이 붕괴된 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자, 이에 반발하여 1270년 6월 1일 반란을 일으켰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전
라남도 진도로 이동하여 항쟁하였으며, 다시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여몽 연합군에게 맞서 항전을 지속하였다 이들은 독자
적으로 정부를 세우고 개성 정부와 몽골에 대항하여 3년 동안 싸우다가, 1273년 고려-몽골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섬멸당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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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 비는 강화도에서 몽골의 지배에 항거하여 궐기한 遺墟[유허] 지에 삼별초의 항쟁을 기려 강화군민들이 1993년에
세웠다. 비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취지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진돗개 상은 또 뭔가? 궁금하던 차에 설명문을 읽어보니 제
주와 진도가 자매결연을 맺은 지 16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호 상징으로 삼별초 군의 원정길인 3개 군에 설치 하고 그 뜻을
기리기로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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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본래 제주현·정의현·대정현에 세워져 성문 앞에 서서 경계 표지 및 금지의 표식 구실을 하였다. 또한 성문의
수호신으로서 성안의 안전을 지키는 종교적 기능도 담당하였다. 1971년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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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삼별초 비를 둘러보고 이제 望洋墩臺[망양돈대]로 향한다. 아는 대로 강화도의 54개 墩臺[돈대]는 강화도의 역
사 문화유산이다. 돈대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하나의 섬 둘레를 별자리처럼 아우른 성채는 세계에서 유
일하다. 강화의 54개의 돈대는 군사시설이다. 외세 침입에 맞선 최일선 군사 방어 기지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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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대 최고의 築城[축성] 술과 고유한 군사전략으로 세운 護國[호국: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지
킴] 의 징표이자 예술 작품이다. 돌로 쌓은 돈대의 안팎은 자연 친화적인 조선의 感性[감성]과 美學[미학]이 스며 있을 정
도로 예술성을 자랑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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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16코스(서해황금들녘길)= 주요 코스 : 창후선착장 - 망월돈대 - 계룡돈대 - 용두레마을 - 황청저수지 - 망양
돈대 – 외포여객터미널.[이동 거리 및 소요시간 : 13.5km,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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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돈대들을 주목하는 이들은 드물다. 대다수 시민들에겐 ‘돈대’라는 이름조차 낯설다. 이렇다 보니 강화도 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1호, 지정일: 1995.3.1.]는 제대로 역사 문화유산으로서 보존,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폐
허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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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돈 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
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
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망양돈대 역시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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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어우러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적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만나는 망양 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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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망양돈대는 밀물 때 하천을 따라 육지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망양돈대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7호
로 바닷가 경사진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유랑자는 소나무가 울창한 언덕길을 올라 돈대 성벽에 올라섰다. 돈대 성벽
위에 서면 사방이 훤히 다 내려다보인다. 외포리 앞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저 멀리 마니산과 그 아래 바다도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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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멀리 내다보는 돈대라니, 외포리가 가진 역사적인 의미와 딱 맞는 이름 같다. 그렇다. 삼별초가 떠났던 외포리에 돈
대가 들어섰다. 숙종 5년, 1679년이었으니 삼별초가 떠난 지 400여 년 뒤다. 돈대가 들어선 곳의 지명을 따서 정포 돈대
라고 이름을 지었을 법도 한데 구지 '望洋墩臺[망양돈대]'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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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삼별초의 피눈물이 외포리에 전해져 내려왔던 것일까. 그래서 돈대 이름을 바다를 멀리 내다본다는 뜻의 望洋[망
양]이라고 지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망양돈대에는 여느 돈대와 마찬가지로 바다로 향한 성벽에는 대포
를 안 치기 위한 포대 문 4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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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축의 윗부분에는 성가퀴[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 가 40개 있었는데 현재 원형을 살려
서 복원해 놓았다. 外浦里[외포리]는 이렇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외포리는 밖을 내다보는 곳
이다. 외적의 침탈이 있을까? 불안해하는 곳이 아니라 그 너머를 모색하고 궁리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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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건평돈대·삼암돈대·석각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30m, 석벽의 높이는 300~340㎝이다. 동쪽으로 외포리 항이 있고 바로 아래 삼별초항몽유허비가 있다.
남쪽은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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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벗어나 밖을 지향하는 포구가 바로 외포리다. 전에는 유랑자가 석모도 보문사에 가려면 외포리에서 차량을 싣고 배
를 타고 들어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석모대교라는 다리고 놓였다. 이제 세월의 더께만큼 바다도 포구도 세월 따라 변했다.
아무튼 오늘 유랑자가 방문한 망양돈대! 삼별초가 떠난 지 400여 년 뒤에 망양돈대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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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몽골에 대항했고 조선시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돈대를 쌓았다. 유랑자는 한동안 돈대에 올
라 바다를 바라보며 삼별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외포리 망양돈대에서 750여 년 전인 1270년 6월 1일을 그려본다. 무심한
갈매기들이 그때인 듯 끼룩끼룩 날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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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돈대.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으며, 석벽의 높이는 약 3미터, 둘레는 130미터인 방형 구
조로 이루어졌다. 인천광역시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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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돈대 찾아가기
.*소재지 :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680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37호.
.*크기 및 모양 : 정사각형이며 둘레는 130m.
.*망양돈대의 보존 현황 : 1995년 지표 조사후 정비, 복원함.
.*근처 돈대 : 북쪽으로 삼암돈대가 남쪽으로 건평돈대가 있음.
.*주변볼거리: 외포젖갈시장이 근처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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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기 이어보기 클릭
*https://cafe.daum.net/b2345/9toB/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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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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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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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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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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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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