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 묘사
어릴 적 나의 고향은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신촌이라는 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고성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앞으로는 시골 들판 치고는 꾀 큰 들판이 있었으며,
들판 끝에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이 휘돌아 가고 있었다.
강건너에는 민드레덤이라고 불리는 깍아지른 절벽을 가진 산이 놓여있었다.
마을앞 북평들(덕천강 남쪽으로는 수곡면 원내리, 원외리 들판이 있어 이렇게 불렸다.)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산 흔적인 고인돌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마을 뒷산은 밤이면 1895년 동학농민전쟁때 죽은 농민군의 원귀들이 고시랑 고시랑 수군댄다고 하여 고시랑당이라고 불렸다.
어릴 적에는 막연히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경상남도에서 동학농민전쟁 유적지로 지적하여 관리되고 있다.
이 뒷산은 겨울철 눈 온 날이며 마을 장정들과 아이들이 모두 나서 토끼몰이에 열중하던 장소이기도 하고,
가끔 여우나 늑대가 나타나 돼지새끼를 물어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산중턱에 있는 약수암절에 다녀오던 신도 한 사람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호랑이를 만났는데 절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걸 알았는지 비켜주어 무사히 호랑이밥이 되는 신세를 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마을 인근에는 숫골, 암골, 독장골, 장서박재 등 골짜기가 있었다.
이곳은 초등학교 하교후 동네아이들이 소를 몰고 꼴 먹이러가는 주요 장소였다.
주로 자기집 소 한 마리씩을 몰고가서 산골짝 아래에서 풀어놓고 동네아이들은 저 마다 가지고 온 고구마, 감자 등을 가지고
산곶을 하여 파묻어두고 그 사이에 계곡물에 들어가 물장구치며 싫컷 놀았다.
그리고는 산곶을 파혀쳐 맛있게 익은 고구마, 감자 등을 먹곤하였다. 해가 뉘엇뉘엇 서산에 지기 시작하면
산등성까지 올라간 소들을 몰아 계곡으로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여름에는 마을앞 개울이나 덕천강까지 가서 팬티까지 벗고 개헤엄도 치고 물장구도 치고 하면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장기를 못참고 남의 고구마밭이나 원두막에서 슬쩍 한 두개씩 서리하여 먹는 재미도 있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마을앞 논은 간이 축구장, 배구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돼지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어 잡아매고 축구공, 배구공 대신으로 쓰기도 하였으며, 자치기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을철 추수가 끝나고 농한기가 오면 소죽 끌이고 군불 지피기 위한 땔감을 하러 뒷산으로 아이들끼리 모여 가기도 하였다.
떨어진 솔닢을 끌어 모아놓고 까꾸리를 서로 뒤집어 가며 시합을 하여 이기는 사람이
각자 모아온 솔닢을 다가져 가는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땔감을 모으기도 하였다.
겨울철이면 마을앞 연못은 간이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앉은뱅이 스케이트와 한발로 타는 나무스키에 고무줄로 발에 고정시키고
연못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신나게 스키를 타기도 하였다.
글쓴이 : 정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