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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 주지 대진 스님과 14기의 차담 |14기
무상사 주지 대진 스님과의 차담
스님: 법당과 도량을 돌아보셨나요? 절의 문을 연지 10년입니다. 그 때는 이곳이 옛 절터도 아니었고 아무 것도 없었지요. 숲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질문: 처음 세운 건물은 어떤 것인가요? 스님: 지금 이 사무실(컨테이너)입니다. 1998년에 토지를 매입하여 이 사무실을 짓고 사람들이 여기서 살았어요. 여기서 법회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대웅전을 지었지요.
질문: 여기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님: 이 쪽으로 정한 이유는 숭산 큰 스님께서 연세가 70 가까이 되시기 전 몸이 안 좋아서 국제포교를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한국의 훌륭한 곳 하나를 정해 놓고 국제포교를 하기 위해 큰 불사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1992년에 삼각산 화계사에 국제선원을 만들었을 때 은퇴 후 화계사에서 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었으나 화계사가 쉴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 곳은 늘 바쁘고 서울근처이다 보니 여러 스님들이 자기 품안에 넣고 싶어하고, 조용히 참선할 곳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5년동안 서울 말고 계룡산 안에서 좋은 터를 찾았습니다. 대전에 올 때마다 지프 차를 타고 계룡산 안 몇 군데를 둘러보았습니다. 1997년 마침내 지금 여기를 찾아냈습니다. 이곳의 큰 장점은 계룡산 밖이 아닌 계룡산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은 예부터 신도안이란 이름이 있던 곳이고 무속인들이 많았던 곳입니다. 1976년 육군본부를 만들면서 무속인들이 쫒겨났지요. 숭산스님은 이곳이 “한국 명산 가운데 중심이 될 수 있다”, “선방을 만들면 도인스님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온 스님들이 한국의 풍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곳에 머물면 다른 곳보다 참선하기가 쉽습니다. 질문: 외국인들이 많이 오십니까? 많이 알려졌나요? 스님: 네, 잘 알려졌어요. 5대륙에서 다 옵니다. 최근에는 콜롬비아에서 온 거사도 있는데 밭에 나가 야채를 가꾸며 일하고 있어요. 일반인의 경우 여러 입장이 있는데, 참선만 하고 3개월 후 돌아가는 경우가 있고, 회비 내기가 어렵고 일을 하고 싶으면 아침저녁에 참선하고 낮에는 밭일을 합니다. 비 오는 날에도 참선을 합니다. 스님: 과일 좀 드십시오. 현재 인도와 리투아니아에서 온 남 자 두 분이 행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계룡산 그늘에 시비없이 여러나라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 계룡산의 특징입니다. 질문: 무상사에 와서 예불에 참석하면서 자신(self)이 없어지고 도반, 스님들과 무상사가 다 하나가 된 가운데 여기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님: 좋은 말씀입니다. 여기 앉아 있으면 내가 밖에 나가서 세상일을 볼 일을 안 느끼고, 그 일이 필요하면 내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있어요. 내가 찾아가는 것보다 그들이 내게 와요. 나도 서울에 가서 법문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제일”(We are No. 1)이라고 고집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이기적(selfish)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가서 국제선원 얘기도 하고 포교하면서 삽니다. 질문: 터가 좋아 보입니다. 국내에서도 많이 오시나요? 스님: 국내에서 많이 찾아오긴 하지만 일부러는 안 옵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우리 절이 아니고 외국인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절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 사고방식이 바뀌기가 쉽지 않아요. 한국 불교 속에서 오래 살아보니 아마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절을 자기 절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질문: 무상사를 세우신 숭산스님은 국제포교를 위해 관음선종이란 종단을 별도로 만드신 것으로 압니다. 스님: 네. 관음 School of Zen이라 하는데, 종단이라 하기 보다는 조직을 만드신 것이고 관음선학원이라 할 까요. 질문: 조계종단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스님: 그 관계를 지금 찾고 있어요. 대부분의 미국인, 유럽인들은 출가보다는 상시 수련을 원합니다. 대부분 출가를 원하지 않고 자기사회에서 계속 살면서 진리를 깨치는 것을 원합니다. 조계종과의 관계라면, 대봉스님도 저도 그리고 무상사 스님들 거의가 조계종에서 교육을 받고 출가하였습니다. 관음선종과 조계종과 정식관계는 없고, 지금 찾고 있습니다. 조계종에서 출가 못하는 스님을 관음선학원에 소속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십년 전부터 조계종에서 출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어려워졌어요. 20~30년 전엔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엔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진실한 마음만 보여주었으면 인정하고 어느 정도 한국말 배우려 노력하고 진실한 노력 보여주면 그것 인정하고 스님을 빨리 만들어줬어요.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세계포교의 동기 때문에 그랬죠. 그런데 그 당시 만들었던 스님들이 5년 후, 10년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자 스님 쉽게 되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한국에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좀 더 어렵게 만들었지요. 또 다른 이유는 1970년대, 1980년대는 한국의 성장이 활성화 안 되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1990년대 한국의 성장이 활발해지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보다 훨씬 앞서가니 그들 나라들의 스님과 불자들이 갑자기 한국에 많이 왔습니다. 쉽게 머물 방법이 종교인 불자 스님인데 그것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어요. 출가동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네팔 노동자들 가운데 한국에 살고 싶어하는데 노동자 생활이 너무 어려우니 출가하고 싶어했지요. 한국에서 출가하는 과정을 종단에서 만들었습니다. 출가외국인은 무조건 학교에 가서 한국말 배워라, 동국대에 가서 한국어 배우라, 가르치고 강조했어요. 그래서 어려워졌습니다. 50세 이하는 가능한데 50세 이상은 출가하기 어려워요. 여자분들에게는 장벽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서구에서 오는 이들이 출가하려면 어려워요. 서구 사회는 여자 남자 똑같이 대우하지요. 몸의 차이는 있으나 마음은 똑 같아요. 여자 스님이 되려면 하심(下心) 많이 해야 합니다. 질문: 외국인 비구니 스님들은 어디서 출가합니까? 스님: 제일 많은 곳이 법련사입니다. 스님들은 봉녕사에 가서 공부하고, 한 스님은 운문사에도 계십니다. 스님: 차 맛이 좋지요? 지방선거가 끝나고 계룡시 새 시장이 다행히 불자여서 무상사를 좋게 생각하고 당선 다음날 찾아와서 이 차를 대접했습니다. 세작 산세미에요. 새 차를 열었어요.
질문: 숭산 스님이 현명하신 분입니다. 미국인 제자들이 스님께 꽉 잡힌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건축 사찰에서 한국식의 예불 등으로 한국의 불교를 세계에 알리면서 여기를 떠날 수 없게 하신 것 같아요. 스님: 꽉 잡혔다고요? 그걸 초월해서 세계일화를 잘 느끼고 온 세상을 한 송이 꽃처럼 한국 스님이 미국에 영향을 끼치고 미국스님들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요. 동서가 둘이 아니고 남북이 둘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죠. 원래 없는 것이고 원래 하나입니다.. 질문: 오늘 생일입니다. 공양간에서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우리 전부의 생일 같았습니다. 일생에 이런 일 다시 없을 것입니다. 지난 날의 공덕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미역국 감사하게 잘 먹었습니다. 스님: 스승 숭산스님이 다른 한국인들과 다른 점은 외국에 갈 때 김치 고추장 등 한국음식을 안가지고 다니신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음식을 그대로 먹고 받아들이시며 대중생활(together action)을 하십니다. 한국에서는 미역국이 미국에서는 토마토수프입니다. 그 나라 음식을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온 중생에게 주는 선물, 영양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질문: 제가 대전에 다닐 때 계룡산입구 오등선원에서 대원스님께 '이 뭣고' 화두를 받아 참선을 했었습니다. 서울에 가서 스승없이 참선하려 하니 진전이 없고 멍청해지는 느낌입니다. 과연 이런 선수행을 계속해야 할 지 답답한 상태입니다. 스님: 혼자서 참선하면 쉽게 외도에 빠지거나 답답한 맘이 듭니다. 차라리 도반들과 같이하는 것이 좋아요. 바른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 관음선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제일 먼저 주장하는 것이 108배 절을 하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3천배도 해보세요. 둘째는 염불인데 염불 가운데서도 관음선종이니까 천수경에 나오는 염불과 진언 등을 가르칩니다. 셋째는 좌선과 행선이 중요합니다. 이 중 하나만 알고 나머지를 안 하면 바른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절로 몸에서 나오는 업을 닦고, 염불로 입에서 나오는 업을 닦고, 좌선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업을 닦아야합니다. 질문: 간화선과 염불선 사이의 비중은 어떻습니까? 선에 대한 개념을 갖고 왔는데 산신각이 있습니다. 툇마루도 있고 황토 바닥에 세운 산신각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떤지요? 스님: 산신각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지역사회 주민들의 토속신앙이 강하다는 것이고 둘째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역의 정치인들까지도 절에 오면 첫째 산신각을 먼저 찾습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만들 필요는 없지만, 불자들이 산신각을 요구합니다. 대봉 스님(조실 스님)이 산신을 좋아해요. 다른 스님(위의 대원 스님)이었다면 필요없다고 했을 거에요. 성철 스님도 산신 신앙 필요없다 그러셨고 산신 탱화도 태웠습니다. 대봉스님은 올바른 신앙은 지역사회에서 오래된 전통으로 좋아하는 산신사상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 스님께서는 불교도서관에서 육조단경을 강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가라는 것이 진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면, 스님의 출가 동기는 어떠하셨습니까? 스님: 자신을 활연히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참 나 자신이 되고 나를 깨닫게 됩니다. 금강경에 참된 보살이라면 이만큼 보살이다 라는 이만큼이라는 생각(사상)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이것은 조계종에서 6조스님 이래 내려온 사상입니다. 소아(Small I)를 버리면 대아(Big I)가 되지요. 그것이 잘 되는지 아닌지 본인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스승이 필요하고 도반이 필요합니다. 질문: 수행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고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스님: 그건 스승하고 잘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수행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서양에서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먼저 '분명한 마음'(clear mind)과 '모른다'(don't know)를 가르칩니다. 사람들마다 다르니까 그것이 잘 안되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을 가르칩니다. 수행방법은 스승과 얘기를 해야 합니다. 질문: 조계종에서 선을 얘기하는데 경전을 공부안하고 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께서 먼저 좋은 말씀을 하시고 (수행자들이) 선정에 들어가서 자신을 관찰했는데요. 막상 '이 뭣고'만 찾아 가지고는 쉽지 않지 않겠습니까. 경전이 외국어로 다 번역되어 있지 않는데, 무상사에서는 어떤 경전을 공부합니까? 스님: 경전공부를 하게 되면 평생 동안 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팔만 사천 대장경은 평생해도 끝나지 않아요. 그래서 가장 핵심적 경전인 반야심경을 합니다. 반야심경은 팔만사천 진리가 다 담겨있는 위대한 경전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두세 번 법당에 올라갈 때마다 반드시 반야심경을 합니다. 그 다음이 천수경입니다. 천수경은 참선하는데 실용적 경전에요. 계속 경전만 하게 되면 참선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핵심들만 공부하고 있는데 어떤 외국 스님들은 경전을 깊이 읽고 있기도 해요. 남에게 가르칠 때, 설법할 때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자기경전은 ‘이 뭣고’를 해야 잘 됩니다. 질문: 숭산스님이 국제포교를 많이 하셨고, 대진 스님이 숭산스님을 많이 모셨으니 우리 국제포교사들에 대한 조언을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요즘 세상이 많이 발달했습니다.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다 가지고 있지요. 숭산스님이 처음 미국에 가실 때 돈도 얼마 없고 영어도 평양에서 다녔던 중학교 실력으로 다만 참선법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서 재미있는 가르침(법)이 많이 나왔어요. 요새 사람들은 그것과 다릅니다. 어느 나라에 가게 되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그 나라의 상황, 안정상태, 숙소까지) 그 나라에 대해 다 연구하고 갑니다. 그러니 '처음처럼' 마음이 없어졌어요. 해외에 나가 국제포교를 하려면 둔하게(stupid), 처음처럼(초심)이 있어야 포교를 할 수 있어요. 그것이 없으면 포교가 어렵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 생활습관을 내가 관찰해야 해요. 나도 국제포교 하고 있지만, 그게 중요해요. 처음처럼, 사람들을 관찰하고, 미리 결론적으로 이 나라가 불심이 있는 나라인가 없는 나라인가 결론을 내리지 말고 관찰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포교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나누지 못한 말은 법회에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2010.6.13. 12:30 ~ 1: 30, 무상사 사무실) |
첫댓글 2010년 6월 13일 국포사 14기들이 무상사를 참배하고 주지 대진 스님과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나눴던 차담 기록입니다.
국제포교사회를 많이 사랑하셨고 청할 때 마다 법문을 나눠주시던 스님이 홀연히 열반에 드시니 벌써 스님이 그립습니다.
스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님과의 차담을 복사해왔습니다.
정성스러운 기록,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