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벨의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 뇌과학자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 입 베어 먹은 흔적이 선명한 사과 문신이 새겨져 있다. 애플 로고다. 그는 오래전부터 문신을 하고 있었고, 애플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마이크로소프트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이 애플을 이기기 힘든 건 '감성' 못 팔아서다. 대부부의 사람들은 삼성의 CEO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되고, 대학을 중퇴했지만, 애플을 창업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같은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애플의 제품을 더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쓰는 삼성 노트북의 로고를 가려보라. 어느 누가 이 제품이 삼성 제품인 걸 알 수 있을까? 로고를 가렸을 때 브랜드를 알 수 없다면, 브랜딩의 의미는 없다. 애플은 사과 모양을 가리더라도, 애플 제품 특유의 형태와 재질, 색감만으로도 브랜드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삼성의 비전이 무엇인가? 애플은 '복잡한 기기를 단순하게' 만드는 종교적 비전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비자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어렵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 등 서양권 소비자 대부분은 삼성이 한국 기업인지조차 잘 모른다.
애플에는 마치 신도를 방불케 하는 일부 충성 고객이 존재한다. 설령 제품이 비싸고 하드웨어 성능이 부족하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애플 제품만을 원하는 소비자가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뿐 아니라 좀 더 비싸더라도 이어폰과 마우스, USB 등 부속품도 애플의 제품으로 맞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 사는 곳, 직업이 다르더라도 애플에 대한 열정 하나로 커뮤니티를 구성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 애플 팬들은 각자의 SNS에 RIP 잡스(Rest In Peace·평화롭게 잠들기를)를 올리는 등 애도 물결을 이어갔다.
쇼핑학의 창시자인 마틴 린드스트롬(Lindstrom)은 성공하는 브랜드는 종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리 데이비슨, 애플, 헬로키티, 디즈니, 레고 등 이름만으로 소비자를 설레게 하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단순 소비자라기보다는 철저한 신자에 가깝다며 어떤 땐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기까지 하는 브랜드의 브랜딩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린드스트롬은 브랜딩 전문가다. 덴마크인인 그는 미국 광고대행사 BBDO의 유럽과 아시아 지사를 설립해 최고경영자(CEO)로 일했으며, 30대에 브리티시텔레콤과 룩스마트에서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냈다. 현재 컨설팅사 린드스트롬 컴퍼니의 CEO다. 디즈니, 펩시, 필립스, 메르세데스 벤츠, 켈로그 등 글로벌 대기업이 그의 주요 고객이다. 그는 2009년 타임지가 '영향력 있는 100명'으로 선정했고, 올해 런던에서 열린 '싱커스 50' 행사에서 18위를 차지했다. 그의 저서 '오감 브랜딩'은 월스트리트저널지에서 '최고의 마케팅 도서 10'에 선정됐고, '쇼핑학'은 뉴욕타임스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린드스트롬은 브랜드를 종교화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요소를 쪼개서 각각 일관된 특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많은 기업가가 로고가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착각하지만, 로고는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고를 가렸을 때 어떤 브랜드인지 알 수 없다면 실패한 브랜딩이다. 눈을 감고서도 코카콜라 병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키세스 초콜릿 모양만 보고도 맛을 기억해 낸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롤스로이스와 캐딜락은 신차에서 고유의 향이 나게끔 제작하고, 메르세데스 벤츠에는 아예 새 차 냄새를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로고 제거하고 브랜드 가치 고민해보라
브랜딩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게 바로 브랜딩이다. 최근 소비자는 무언가를 믿고 따르고, 의지하고 싶은 심리가 커졌다. 경기 침체, 전쟁, 노령화, 범죄 등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이기 때문에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 것이 배경이다. 이것을 잘 이용한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산리오사(社)의 캐릭터 헬로키티이다. 산리오는 30년 넘게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헬로키티는 오염되지 않은 천사다. 신이 태초에 만든 창조물이다. 헬로키티의 세상은 점점 더 번창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헬로키티 고객들은 제품의 질과 관계없이 헬로키티가 그려진 칫솔, 치약 등 거의 모든 제품을 사들인다. 많은 소비자는 헬로키티가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를 넘어서 친구, 나를 나타내는 존재, 숭배 대상이라고 말한다.
종교적 요소를 가진 브랜드 조건으로 첫째, 독특한 소속감으로 팬들끼리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면서 구성원 간의 관계가 강해지고 강한 소속감이 일어난다. 예컨대, 레고는 전 세계에 다양한 연령 집단으로 만들어진 레고 커뮤니티가 약 5000개 있다. 레고를 좋아하는 75세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레고 커뮤니티에서 환영받을 수 있다. 둘째는 목표 의식이 있는 비전이다. 애플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만드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누구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셋째는 리더나 숭배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천재 스티브 잡스, 동심으로 돌아가서 환상을 경험하게 하는 미키마우스 등 믿음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이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미래 브랜딩의 키워드는 총체적(holistic) 판매가 될 것이다. 감성과 철학, 상징성, 소비자의 개입 등 다방면의 요소가 활용돼야 한다. 브랜딩의 역사는 1950년대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을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감성적(emotional) 판매로 진화해, 코카콜라와 펩시의 경쟁이 시작됐다. 1980년대부터는 회사의 이미지가 중요한 조직적(organizational) 판매가 시작됐고, 나이키라면 무조건 믿고 사는 소비 패턴이 생겼다. 이후 해리포터와 포켓몬스터 등 브랜드가 치약과 벽지 등에서 사용되는 브랜드 판매가 시작됐다. 최근 두드러지는 브랜딩 기법은 소비자의 개별 취향을 고려한 자신(me) 판매이다. 아디다스에서는 신발의 외피, 안감뿐 아니라 디자인 패턴까지 직접 고를 수 있다. 여기서 한층 더 진화한 단계가 바로 브랜드 진화의 6번째인 총체적 판매입니다. 브랜딩의 모든 부분이 하나의 가치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시각·청각·후각 등의 감각까지 활용해야 한다.
감각이 브랜드를 만든다
롤스로이스는 1965년에 독특한 냄새를 재현하는 데 수천만 달러를 들였다. 이전의 롤스로이스 인테리어는 나무, 가죽, 삼베, 울 같은 천연물질의 냄새가 났는데 현대 제조 기술에서 천연물질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면서 과거의 냄새가 나지 않게 됐다. 지금의 롤스로이스는 공장에서 출시되기 전 클래식 롤스로이스의 냄새를 자동차 좌석 안쪽에 인위적으로 삽입한다. 포드 역시 2000년 이후부터는 회사만의 브랜드화된 향을 사용한다. 캐딜락의 가죽 의자에 가공 처리되는 향은 '뉘앙스'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다.
브랜드를 각인시키려면 다양한 감각에 호소해 브랜드 기반을 확장해야 한다. 식품을 판다고 했을 때 맛과 시각에 주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후각이다. 슈퍼마켓에서 갓 구운 빵을 진열해 빵 냄새를 퍼트리는 것이 한 예이다. 하지만 브랜드로서 더 가치를 지니고 싶다면 더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야 한다. 예컨대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를 먹을 때 나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촉감은 연구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제조법에 특허를 냈다. 이 바삭거리는 식감은 켈로그의 상징이 됐고, 소비자들은 유리병에 담긴 콘플레이크를 보면 타사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해도 켈로그를 떠올린다. 시각과 미각을 넘어서 청각과 촉감을 포함해 4가지 감각을 통합시킨 것이다.
소리를 이용한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인텔 광고의 브랜드 구축 캠페인마다 나오는 짧고 독특한 소리인 '인텔 인사이드'음은 컴퓨터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인텔 칩의 존재를 알렸다. 연구 결과 파도 소리 같은 효과음은 인텔 로고보다 더 인상적으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촉감을 잘 활용한 브랜드 중 하나가 가전 회사 뱅앤드올룹슨이다. 뱅앤드올룹슨은 TV와 라디오, 전등 등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는 리모컨을 개발했는데 일부러 묵직하게 만들었다. 가볍게 만드는 게 더 고급 기술이지만, 소비자들은 전자제품이 너무 가벼울 때 제품이 허술하거나 고장 날 거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로 가전제품의 촉감 테스트를 하면, 뱅앤드올룹슨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맛은 음식과 음료 산업을 제외하고는 어울리기 어려운 감각인데, 콜게이트는 예외적으로 자사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치약 맛으로 특허를 냈다.
시각은 대부분의 브랜드가 이미 상당히 활용하는 감각이지만, 더 효과적으로 시각을 활용하려 한다면 코카콜라의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코카콜라는 빨간색과 흰색이라는 아주 명확한 컬러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산타는 전통적으로 녹색 옷을 입었다. 하지만 코카콜라 광고에 산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모두에게 붉은색과 흰색으로 각인됐다. 시각적으로 최고의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브랜딩이 아니다. 기업체 브로슈어를 만드는 것은 최악이다. 임원실 테이블 벽에 걸린 미소 띤 정장 차림의 인물 사진, 기업 본사의 건물 사진, 그리고 CEO의 상투적인 얼굴 사진은 브랜딩과 관계가 없다. 브랜드 구축과 상관없는 홍보는 전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후각과 청각 같은 요소는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우선 브랜드의 대표색부터 만들어라. 많은 소비자들이 빨간색과 하얀색을 보면 코카콜라, 케첩 브랜드 하인즈 등을 떠올릴 정도로 브랜드의 색은 중요하다. 보석회사 티파니의 경우 고유 색상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브랜딩을 구축한 사례다. 1987년 이후 티파니는 한결같이 같은 색상의 포장을 한다. 이 색은 '로빈 에그 블루'라고 부르는데, 매장의 인테리어뿐 아니라 카탈로그, 광고, 쇼핑백에서도 볼 수 있다. 많은 여성은 이 색을 '티파니 색'으로 부르고, 비슷한 색상을 봤을 때 티파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 모양을 만들어라. 특정 모양이 그 브랜드를 암시하는데도, 모양은 브랜드 구성 요소 중에서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코카콜라, 샤넬 넘버5의 병 모양을 생각해보라. 병 모양을 손으로 그린 것만 봐도 브랜드가 연상된다. 마지막으로 브랜드만의 언어를 만들어라. 어떤 특정 단어만 들으면 그 브랜드가 생각나야 한다. 예를 들어, 연구 결과 미국 소비자의 70%는 '바삭바삭' 소리를 들었을 때 켈로그를 떠올린다. 또 60%는 '남자다움'이라는 단어를 면도기 질레트와 동일시한다.
디즈니는 언어를 잘 활용한다. 많은 사람이 환상, 행복, 마법, 꿈, 미소라는 단어에 디즈니를 연결 짓는다. 이 단어들은 디즈니 안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디즈니 놀이동산을 방문하면 수많은 캐릭터가 다가와 '마법 같은 하루가 되세요'라고 말한다. 이런 브랜드의 언어는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강력한 인식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