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힝클리 2세(당시 26세)는 1981년 3월28일 워싱턴의 파크 센트럴 호텔에 투숙했다. 그는 워싱턴 스타에 실린 레이건 대통령의 일정을 확인하고는 행동을 결심한다. 자신이 사살될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지만 부치진 안았다. 그는 조디 포스터가 영화 '택시 운전사'에 출연하였을 때부터 사모하게 되었다. 포스터가 예일 대학에 들어가자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스토킹을 하였지만 의미 있는 접촉은 없었다. 힝클리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비행기 납치도 생각하다가 대통령을 죽이기로 한다.
3월30일 레이건 대통령은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AFL–CIO 대표들 앞에서 오찬 연설을 했다. 그는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연설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 통로를 이용, 대기중인 리무진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9m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경호원들은 일반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경호원들도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
오후 2시27분 힝클리는 아무런 몸 수색도 받지 않고 군중 속에서 지나가는 대통령과 4.6m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AP 기자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면서 질문을 하려는 순간 대통령은 힝클리 바로 앞을 지나갔다. 힝클리는 리볼버를 쏘기 시작하였다. 그는 1.7초 사이에 여섯 발을 쐈다.
첫발은 공보비서관 제임스 브래디의 머리를 맞혔다. 제2탄은 워싱턴 경찰관 토마스 델라한티가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돌아서는 목등을 맞혔다. 힝클리는 이제 레이건을 바로 조준할 수 있게 되었다. 제3탄은 레이건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순간 경호원 제리 팔이 레이건 대통령을 리무진으로 밀어넣었다. 다른 경호원 팀 매카시는 대통령 앞을 막아섰다. 射線에 서게 되었다. 힝클리는 두 팔을 벌이는 매카시의 하복부를 쐈다. 이것이 레이건을 살렸다.
힝클리의 제5탄은 리무진의 열려 있는 방탄 유리창을 맞혔다. 여섯 번째 총탄은 리무진의 방탄부분에서 튕겨나와 레이건의 왼쪽 팔 아래 가슴을 맞혔다. 총탄은, 갈비뼈를 스치면서 허파로 들어가 심장에서 2.5cm 되는 곳에 멈췄다.
힝클리는 군중 속에서 제압되었다. 경호원들은 힝클리가 맞아죽지 않도록 그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리고 신병을 확보하였다. 레이건은 처음엔 자신이 총을 맞은 것을 몰랐다고 한다. 팔이 그를 너무 세게 밀어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생각하였다. 대통령은 차중에서 기침을 했는데 피가 나왔다. 리무진은 조지워싱턴대학 병원으로 달렸다. 4분 만에 도착하였다.
팔이 들것을 달라고 했으나 병원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통령은 걸어서 들어가면서 구경꾼들에게 인사를 하고 웃어보였다. 병원안에 들어가서야 그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면서 주저 앉았다. 응급실에 모셔졌고 주치의가 달려왔다. 그도 대통령이 심장마비 증세라고 생각하였다.
의사들이 와서 레이건의 옷을 가위로 잘라내었다. 대통령은 화를 냈다. 그는 쇼크 상태였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急死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옷을 벗기우고 나서야 대통령이 총을 맞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경호관 팔도 이때 처음으로 피격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자신이 너무 세게 밀어넣어 뼈가 다쳤다고 생각하였다.
낸시 레이건 여사가 달려왔다. 대통령은 "여보, 내가 피하는 걸 잊었어"라고 농담을 하였다."
"Honey, I forgot to duck"-이 말은 미국 스포츠계에서 유명한데 헤비급 챔피언 잭 뎀프시가 진 터니에서 진 뒤 부인에게 한 말이다.
총탄을 제거하는 수술은 105분이 걸렸다. 수술 직전 레이건은 산소마스크를 벗더니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겠지요"라고 농담을 했다. 의사들과 간호부들이 모두 웃었다. 의사 지오르다노는 민주당원인데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대통령 각하,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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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