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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전이 늦었던 판자촌 동네에 살았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제일 높은 곳에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5일 내내 학교에 같은 옷을 입고 갔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상해서 '난 똑같은 옷이 5벌이 있다'고 했었다"
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newsid=201301151447118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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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그는 살 집이 없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여기저기 얹혀사는 신세였다.
돈암동, 흑석동, 신길동, 부천, 수원 등 한 학기에 10번 넘게 이사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자랐다.
수원에 살 때는 학교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두 시간이나 가야했다.
새벽 5시반에 일어나야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얹혀살면서 새벽부터 학교에 간다고 부산을 떠는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안정환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 그냥 학교에서 자자.’ 안정환이 생각 해 낸 곳은 학교 창고였다.
그는 밤 늦게 몰래 학교에 남아 창고로 숨어 밤을 지샜다.
부모에게 어리광을 피울 11살의 나이에 안정환은 혼자 학교 창고에서 잠을 청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노량진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운동이 끝나면 곧바로 한강둔치로 향했다.
지금은 한강둔치가 시민들의 공간이 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강둔치는 을씨년스러웠다.
무당들이 한강 주변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굿도 자주 열었다.
굿이 끝나면 떡과 과일을 그 자리에 놓고 갔는데
안정환은 무당들이 굿판을 벌인 뒤 남은 음식들로 허기를 채워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에게 있어 한강둔치의 떡과 과일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이마저도 없을 때면 배추밭에 가서 배추 밑동을 뽑아 먹었다.
안정환의 외할머니는 “배불리 먹지 못해 또래에 비해 체구가 유난히 작던 (안)정환이의 모습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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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집없이 방황하던 안정환은 항상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이모 집에 얹혀살면서 축구를 시작한 무렵에는 이모와 이모부의 부부싸움이 잦았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밤늦게 이모 집으로 돌아와 문을 살짝 열고 집안의 동태를 파악하는 게 안정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 11시건 12시건 골목에 쭈그려 앉아 싸움이 잦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어머, 어린 애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니? 너 집 없니? 이거라도 먹어.”
당시 이모 댁은 중앙대학교 근처 언덕이었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면 대학생 누나들이 오가다가 건네 준 과자와 사과로 끼니를 대신했다.
힘든 훈련을 마친 어린 안정환에게는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김현회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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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과일이죠?”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안정환에게는 낯선 과일이 있었다.
바로 오렌지였다.
안정환은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오렌지라는 걸 직접 봤다.
생전 처음 본 오렌지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남은 오렌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동료들은 “(안)정환이는 먹을 것만 보면 욕심을 부린다”고 놀렸다.
하지만 안정환은 이 오렌지를 아끼고 아껴 집까지 가져왔다. 외할머니를 위해서였다.
생전 처음 먹어본 오렌지를 외할머 니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안정환은 운동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합숙을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도 직접 그의 손으로 지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목동역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열심히 내 손으로 목동역을 지었다.”
결혼한 뒤 그의 아내는 안정환이 깎은 과일이 너무도 가지런해 놀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럴 이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신길동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이었다.
곱상한 외모지만 안정환은 막노동부터 웨이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다.
-김현회 기자 기사 중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130n03946
Laura shigihara -Eveeything's Alright.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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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첫댓글 안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외모랑 전혀 안어울리는 성장통
22222222222 그런 고통과시련이잇엇기에 지금의 안정환이 잇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환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우.....
ㅜ.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