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을 부추기는 것이야말로 동방 전역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주효한 수단이다.
-Thomas Lawrence-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사막의 절경과 영웅의 열정을 담은 세기의 걸작이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영국인 장교 로렌스가 있다. 그는 아랍인들의 독립과 외세 배척을 위하여 아랍인들을 이끌고 연전연승을 거두며 아랍인들의 존경심을 얻는다. 그러나 전후 영국이 아랍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로렌스는 장교를 그만두고 영국에서 살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불꽃같은 인생을 마감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기초는 로렌스의 저서인 <7가지 지혜의 기둥>과 <사막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랍의 영웅도, 절친한 친구도 아니었다. 그는 거짓말로 거짓된 역사를 지어낸 인물이다. 실제로 로렌스에 대한 모든 전설적인 이야기는 오로지 그의 저서로만 밝혀진 이야기일 뿐, 다른이들의 증언은 거의 없다. 사진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그가 아랍 반란의 선두를 지휘한 영국인 지도자라는 증거도 역시 어디에도 없다. 막상 아랍인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아랍인들을 기만한 인물이다. 영화속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미화'와 '허구'에 불과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아랍의 봉기를 옹호하지 않았다. 그의 편지를 보면, 아랍인들의 해방을 지원할 의사가 없었으며, 아랍인들의 단결을 지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랍의 봉기를 옹호하는 척 했던 이유는, 단지 아랍의 도움으로 동방전쟁에서 신속히 승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오늘날은 아랍의 영웅으로 불릴까?
당시 아랍 반란의 주역은 파이잘 왕자의 아버지인 후세인 왕 휘하의 아랍청년단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로렌스는 파이잘 왕자와 만나 그의 군대를 이끌고 선두에서 반란을 지휘했을까?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파이잘 군의 지휘관은 이라크 장교들이었으며, 모든 군단은 아랍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자리에 로렌스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고, 아랍 반란의 모든 것은 아랍인들끼리 이뤄낸 것이었다.
로렌스의 이야기를 접한 아랍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로렌스 신화'가 나왔는지 알 도리가 없다고 한다.
아랍 반란은 많은 아랍인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결실인데, 어째서 모든 공로가 로렌스에게 돌아가 버렸단 말인가?
도대체 로렌스는 그럼 누구인가?
원래 그는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중동 문명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당시 영국 외교사절단의 외교관을 맡았고, 아랍 반란의 경과를 관찰하여 영국정부에 제공한 중재자였다. 그는 전쟁에 나서지도 않았고, 아랍 장교들의 눈에 띄지도 않았다.
도리어 아랍인들은 그가 반(反)아랍 정책의 지지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후세인 왕에게 1921년 팔레스티나에 유대인들이 독립국을 가지도록 하는 '벨푸어 선언'을 인정하라고 협박한 인물이다. 영국의 무력을 배경으로 후세인 왕을 협박한 영국의 외교관, 이게 아랍인들의 로렌스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슐레이만 무서는 <아랍이 본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저서를 통해 로렌스에 대한 허구를 낱낱히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너무나도 유명하여서, 로렌스의 이미지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참고문헌
리처드 생크먼, 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2001)
이윤희, 에세이 세계사(1994)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2004)
첫댓글 새도메스틱을 즐기는 동성애자였다는게 지인들의 증언이죠......터키에 포로로 잡혔을때 간수들에게 집단으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함, 지인들에게 채찍으로 때려달라고 부탁을 여러번 했다죠.....
흠;;; 터키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면 거의 화간이라고 봐야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