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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7월16일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
....... (안젤라 | 2010.07.16 Ud.)
△ 가르멜산의 동정녀 -
The Virgin of Carmel-MORETTO da Brescia.
c.1522.Oil on canvas,271x298 cm.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 축일: 7월 16일
<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
-Beata Vergine Maria del Monte Carmelo
-Our Lady of Mount Carmel
(- (이)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 (영) 가르멜산의 우리 어머니)
* 위 (한역 韓譯/ '19.7.17, -아타시 韓)
갈멜산은 엘리야 예언자와 깊은 관계가 있는 팔레스티나에 산이다.
구약에 의하면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심한 가뭄에서 구해주시도록 탄원했던 산이다.
바로 그곳에서 비를 몰고 오는 구름위에 성모님이 엘리야에게 발현했다고 한다.
성서는 예언자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옹호했던
가르멜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12세기에 일단의 은수자들이 이 산에 정착하고
그후 천주의 거룩한 모친이신 성모님의 수호 아래 관상 생활을 하는 가르멜회를 설립했다.
7월 16일은 "가르멜산의 성모님" 축일이고 이 날은 가르멜 수도회의 가장 큰 대축일이다.
이 날을 축일로 서방 교회가 거행하기 시작한 것은 1926년이며,
가르멜산의 성모 공경, 가르멜회의 영성 그리고 스카플라의 하사 등을 기념한다.
가르멜 산에서 엘리야는 오랜 가뭄 끝에 간절히 기다리는 비를 위해 일곱 번이나 기도하니,
마침내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한 장 떠올라,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1열왕 18:41-46).
축복의 비를 몰고 온 이 작은 구름 속에서 우리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상징을 알아본다.
5세기에 이미, 예루살렘의 크리스뽀는 동정 마리아를 "성인들의 영혼을 적셔주는 비구름"으로 언급하였다.
그 후 12세기부터, 가르멜 산은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1220년경에 쓰여진 순례자를 위한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가르멜산 위에는 가르멜의 형제들이라 부르는 라틴계 은수자들의 집들이 있다.
또 그곳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한 소성당도 있다."
봉건 시대의 사고 방식에 따르면, 마리아께 성당을 봉헌한다는 의미는 성전 봉사에 자신을 바칠 뿐만 아니라
서원으로써 인준 받은 인격적인 봉헌을 통하여 마리아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가르멜회의 은수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우리 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우리 수도회의 공식 명칭을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형제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명칭은 가르멜 회원들에 대한 마리아의 보호만을 뜻하지 않고,
동정녀께 대한 우리의 봉헌이 진실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르멜산은 마리아의 산이다.
이곳에서 가르멜의 은수자들은 복되신 동정녀의 영적 발자취를 따르고,
동정녀께 대한 신심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17세기에는 가르멜산의 성모 경당이 가르멜 대수도원과 함께 건립되었다.
가르멜 회에 있어서 마리아는 항상 관상의 어머니요 모델로서 함께 걸어가신다.
즉 마리아 어머니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가는 자녀들과 함께 걸으시는 분이다.
가르멜의 신심 작가 아르놀드 보스띠오(+1499)는 이렇게 말한다:
"낮도 밤도, 여행이나 공부도, 대화나 일도, 기쁨이나 여가 또한 마리아를 본받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기억 중에서도 마리아가 첫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는 매일같이 더 위대하고, 더 내면적이며 더욱 강하고, 더 빛나며 더욱 순결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보호하심에서).
또 다른 위대한 가르멜 영성 작가는 성 아우구스띠노의 미카엘(+1684)이다.
그는 "마리아적인 생활과 마리아를 닮은 생활"의 저자인데,
마리아와의 친밀한 일치 생활이 곧 하느님을 위한 삶의 "새로운 길"임을 밝히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어떤 특별한 환시를 본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중재와 영적 모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것이다.
마리아께 붙여지는 호칭 가운데, 어머니와 자매 그리고 수호자는
가르멜회의 카리스마에 속하며, "가르멜회는 온전히 마리아회"임을 확인해 준다.
가르멜 회원들에게 내려지는 동정녀의 특별한 은총은
1400년경에 기록된 요한 그로씨의 "푸른 숲"이란 책 속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성 시몬 스톡크
한번은 성 요한 시몬 스톡크가 당신의 성명을 증거하는 형제들에게 어떤 특전을 허락해 달라며
영화로운 동정녀이시고 천주의 모친이시며, 가르멜의 수호자인 어머니께 간청하였다.
그 후 어느 날, 요한이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있는데,
영화로우신 동정녀이시며 천주의 모친이신 마리아께서 천사들의 무리를 이끌고 발현하셨다.
이때 마리아 어머니는 가르멜회의 스카풀라를 당신 손에 들고 계셨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요한에게 하셨다:
"내가 너와 가르멜의 모든 자녀들에게 주는 특전이 여기 있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단지 가르멜회의 수도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항구 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말씀일 것이다.
그러므로 스카풀라를 입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은혜가 내릴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리아처럼 듣고 실행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가르멜의 이상을 살 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스카풀라에 대한 신심을 갖는 것이 옳은 일이긴 하나,
그 실행이 영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서에 있는 마리아의 삶을 그대로 본받으려는 열망으로 스카풀라를 입어야 한다.
Our Lady of Mount Carmel-NOVELLI, Pietro.
1641.Oil on canvas.Museo Diocesano, Palermo
▷ 성 대 레오 교황의 강론에서
(Semo I in Nativitate Domini, 2.3: PL 54,191 192)
마리아는 아드님을 육신에 잉태하시기 전 마음에 이미 잉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 왕가에 속하는 한 동정녀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간택하셨습니다.
그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신 아드님을 육신에 잉태하시기 전 마음에 이미 잉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을 잘 몰라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놀라운 일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한 천사가 동정녀께 그 계획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천주의 모친이 되신 그분께서는 이 일이 동정을 잃지 않고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지존의 권능으로 말마암아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새롭고 신기한 잉태에 실망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동정녀의 믿음을 더 굳게하고자 천사는 전에 있었던 기적을 상기시키면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엘리사벳의 잉태로써 그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 아기를 가질 수 있게 하신 하느님께서는
동정녀께도 아기를 갖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게 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그를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으며
그 없이 생겨난 것이 하나도 없는 하느님이시요
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말씀께서는
사람을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키고자 당신 자신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비천함을 취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낮추셨을 때
원래 지니신 엄위를 감소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지닌 것을 그대로 간직하시고 아직 지니지 않은 것을 취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느님의 본성과 동일한 본성의 모습을 참된 종의 모습과 일치시키셨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유대로써 두 본성를 일치시키실 때
당신께서 받으신 그 영광은 이보다 낮은 인성을 흡수해 버리지 않았고
또 취하신 인성은 이 보다 높은 신성을 낮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각 본성은 자신의 고유성을 모두 간직하면서 한 위격 안에 일치하여
엄위가 비천을, 권능이 나약을, 영원성이 사멸을 취했습니다.
인간이 진 빚을 갚아 주기 위해 모든 고통을 초월하는 본성이
우리 고통받는 본성과 일치하여 참된 하느님과 참된 사람이 한 주님 안에 일치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분께서 한 본성으로 인해 죽으실 수 있었고
다른 본성으로 인해 다시 일어나실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구원이 되신 분의 탄생은 성모의 동정성에 아무런 흠도 내지 않고,
오히려 진리이신 분의 탄생은 그 동정을 더 완전히 보호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러한 탄생은 "하느님의 권능이시요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께 알맞는 탄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같은 처지에 계시면서
또 한편 당신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보다 훨씬 위에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참된 하느님이 아니셨다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었고
또 참된 사람이 아니셨다면 우리에게 모범이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주님의 탄생을 보고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은 천상 예루살렘이 세상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세워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도 위대한 피조물인 천사들이 하느님 자비의 이 놀라운 업적을 보고 기뻐 용약했다면
지극히 비천한 피조물인 사람들은 더욱더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축일:11월10일.게시판1462번
가르멜 산의 예언자 엘리아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의 경계 지대를 따라 나자렛에서 20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르멜산은
화려할 만큼 아름답기에(이사 35:2, 예레 50:19), 은총과 축복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가르멜은 히브리어 카렘 엘(Karem El)로서 "하느님의 정원과 포도나무"라는 뜻이다)
성서에 따르면, 가르멜산은 무엇보다도 계약을 갱신한 산,
그리고 엘리아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개입이 드러난 산이다(기원전 9세기).
가르멜산 위에서 불에 의한 대결이 승리로 끝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섰고, 그분과 더불어 계약을 갱신하였다(1열왕 18:20-40).
이와 비슷하게, 가르멜산에서 엘리아는 오랜 가뭄 끝에 간절히 기다리는 비를 위해 일곱 번이나 기도하니,
마침내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한 장 떠올라,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1열왕 18:41-46)
이렇듯 가르멜산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예언자 엘리아가 생각난다.
엘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이자, "내가 섬기는 만군의 야훼께서 살아 계신다....
나는 그 분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있노라"(1열왕 18:15)는 실천적인 모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주도했고, 계약을 갱신시켰던 인물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삶을 기름지게 만든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항상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 체험을 제일 우선하는 것으로 믿었고,
그 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 계시다고 믿었다.
가르멜회의 위대한 신비가들은 엘리아의 이런 자세를 영성 생활의 모토로 삼았으며,
엘리아와 같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기 위하여,
아빌라의 데레사는 "완덕의 길",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멜의 산길",
그리고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는 "작은 길"을 썼던 것이다.
(*가르멜수도회홈에서 http://mr.catholic.or.kr/carmelite)
*가르멜산의 성 엘리야 예언자 축일:7월20일.게시판1280번.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축일:10월15일.게시판1420번.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축일:12월14일.게시판1523번.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동정 학자 축일:10월1일.게시판1398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Ave Mundi Spes Maria-베네딕도수도원
Ave Mundi Spes Maria:
https://youtu.be/c5id5Bv65Y8
ㅡㅡtㅡ ♥ ㅡtㅡㅡ
2. 가톨릭대사전
▶ 가르멜회(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수도회)
한자 : ~會
라틴어 : Ordo Carmelitarum
영어 : Order of Our Lady of Mountain Carmel
♧♧♧♧ T ♧♧♧♧ T ♧♧♧♧ T♧♧♧♧
• 계율이 엄격한 관상(觀想)수도회. 가르멜은 하느님이 인간들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산의 이름이다. 이 수도회 역사의 뿌리는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1열왕 17-19장)까지 소급한다. 예언자 엘리야도 이 산에서 늘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가르멜 수도회는 특별한 창설자가 없다. 가르멜산에 은수자(隱修者)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수도회 창설의 시작이었다. ‘은수자의 골짜기’에는 570년경에 벌써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피아첸자(Piacenza)의 한 순례자는 기술하였다. 가르멜 수도회는 구약을 거쳐 신약에 이르면서 성서를 토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수도회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 1205년부터 1210년까지 예루살렘의 초대 주교였던 성 알베르토(St. Albertus)에 의해 성 브로카르도(St. Brocardus) 수사에게 공동체 삶을 통한 은수자적인 수도회의 첫 규칙서가 주어졌다. 이 규칙서는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탁발(托鉢)수도회로 인준되었다. 가르멜산에서 주어진 이 첫 회칙(會則)은 이미 체험되어 온 은수자적인 삶과 정신에 따라 수정과 정리를 가한 것이다.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엘리야는 지금도 가르멜 수도회 정신과 삶을 이끄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십자군의 패배로 13세기에 새로 일어난 탁발교단의 형식에 순응하여 가르멜 수도회도 한때 규율이 해이되고 쇠퇴해 갔는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해 초기 가르멜의 정신으로 중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개혁된 수도회를 ‘선족(跣足, 맨발) 가르멜회’(라틴어로는 Ordo Carmelitarum Discalceatorum, 영어로는 The Discalced [Barefooted] Carmelites)라고 하며, 현재 한국에 있는 가르멜 수도회는 여기에 속한다.
• 가르멜 수도회의 순수 관상의 정신은 하느님과 직접적이고 내적인 삶의 체험을 무엇보다 선행시키며 중요하게 본다.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수도회’라는 명칭이 말하고 있듯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영성적 전통은 가르멜의 소명이 성서적이고 성모 신심적인 성격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수도생활 자체를 성모님께 맡기고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신비를 생활화하는데 그 소명을 두고 있다.
• 가르멜수녀회(Carmelitae, Carmelites Sisters) : 이 수녀회는 13세기부터 존재하였으나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인준에 의해 정식 설립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Our Lady of the Angels' 수녀원이 그 최초이다. 엄격한 봉쇄의 규율 아래 끊임 없이 기도하고 복음의 정신에 따라 자신을 포기하며, 사도직을 도모하고 교회 전례와 하루 7회의 성무일도, 두 시간의 묵상기도 등으로 수도생활에 전심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심원한 영성생활을 통해 깊은 신비적 체험으로 교회의 생명 자체 안에 침투해 갔으며 모든 힘을 교회 봉사에 기울이고자 가르멜을 개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녀들의 서원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서원하는 그 순간부터 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한 도구가 된다.
• 가르멜 제3회(Third Order of Carmel) : 가르멜 재속회(在俗會)라고도 하는 제3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다양한 의무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르멜 3회는 본회의 도움을 받아 데레사적 가르멜의 영성과 지도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을 영위하며, 세속에서 복음적 완덕(完德)을 지향하는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완전히 가르멜 수족(修族)에 속한다. 가르멜 재속 3회는 특히 형제회로서 가르멜적 이상에 일치된 생활을 하고, 영성적으로 고귀한 도움을 보장하며 제 1회에 대한 아름다운 관계를 가꾸어 나간다. 6개월 정도의 예비과정을 거쳐 입회할 수 있으며, 입회 후 1년 반이다 2년이 지난 다음 서약 및 착복을 할 수 있고, 그 뒤 3년이 지난 다음 허원을 하게 된다.
• 한국 진출 : 1939년 프랑스의 두 수녀가 제1진으로 내한하여 1940년 4월 서울 혜화동의 작은 집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들은 멕틸드, 마들렌 두 수녀였으며, 1940년 5월에 앙리에트 수녀등 3명이 도착, 그 곳에서 조촐한 가르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최소한의 경비로 1941년 7월 수녀원 건물을 낙성하였다. 한국 진출이 일제 말기였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감시와 조사는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었고 수녀들의 생활난은 1945년 광복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1946년에는 그 동안 입회를 못하고 기다리고 있던 10여명의 지원자가 속속 입회하였다.
• 1950년 3월 5일, 이들은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면서 확장계획을 세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얼마 후 북한의 남침을 당하게 되자 수도원의 희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날부터의 상처 많은 기록은 이북으로 납치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돌아온 마들렌 수녀의 수기 ≪귀양의 애가≫에 자세히 씌어 있다. 가르멜 수녀회는 1953년 10월 부산 피난생활을 마치고 서울 혜화동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1954년 1월에는 그 동안 북한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본국에 가서 쉬고 있던 앙리에트 수녀와 마들렌 수녀를 맞이하였다. 그들은 다시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서울에 왔다. 가르멜 수녀원은 그 뒤 발전을 계속하여 서울 수유동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으며, 부산?대구?대전, 경기도 광주의 천진암 등에도 수녀원을 설치하게 되었다.
• 가르멜 남자 수도회 : 가르멜 남자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74년 9월 8일 서울 삼선동에서 수사들의 공동생활을 시작한 날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의 창설 멤버는 이탈리아 베니스 관구 소속의 요아킴 귀초(Joachim Guizzo) 신부와 한국인 박병해, 정대식 신부, 그리고 또 1명의 수사였다. 한국 가르멜수도원은 진출 2년 후인 1976년 2월 인천시 북부 계산동에 대지 7,200평을 구입하여 수도원 신축공사에 착공, 그해 12월 23일에 입주하였다. 입주 당시 수도자수는 신부 3명, 종신서원(終身誓願) 수사 1명, 청원자 2명이었다. 1977년 5월 1일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참석한 가운데 축성식이 거행된 뒤, 한국 가르멜 수도회는 정식 수도원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수련 수도원이 되었다.
• 동년 6월에는 수도원 대성당 및 피정의 집이 착공되었는데 피정의 집 건축목적은 개인 피정을 통해 많은 신자가 기도생활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특기해야 될 것은 대부분의 한국 수도회가 외국인에 의해 창설되었으나 가르멜 남자 수도회는 몇 명의 한국인이 프랑스에 가서 수련과 공부를 마치고 한국인 스스로 수도회를 창설한 점이다. 1978년 1월 8일 한국에서는 최초로 4명의 청원자가 착복식을 갖고 수련을 시작해서 다음해 1월 첫 유기 서원자를 배출했으며, 1980년에는 두 번째로 유기 서원자를 배출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수도원의 회원은 현재 서원자 7명, 지원자 10명, 모두 17명이며 영성분야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수도회는 은수자적이면서도 사도적인 삶, 즉 순수 관상생활이면서도 교회가 요구하는 사목을 담당하려고 한다. 따라서 영성신학 연구, 영성사목을 위한 연구와 실천들이 이 수도회 활동의 중추를 이룬다. 영성신학 강의, 영성대화, 고백성사, 피정지도 등이 현재 한국 가르멜 수도회가 실천하고 연구하는 분야이다.
• 가르멜 3회는 1948년 가톨릭대학 신학부 공베르(Antonius Gombert, 孔安國) 신부가 처음 발족시켰으나 6.25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서울 수복 후 1953년 수유리 가르멜 수녀원에서 다시 피정을 갖게 되었으며 회장으로는 고(故) 엘리사벳을 선출하였다. 1968년에야 총장 신부의 인준을 받아 정식으로 가르멜 재속회의 발족을 보았다. 1970년 10월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1979년에는 피정장소를 인천 계산동 남자 수도원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허원자 166명, 착복자 25명, 입회자 77명 모두 268명이다.
★ [참고문헌] C. de Villiers, Bibliotheca Carmelitana, ed. G. Wessels, 2 v. in 9, Rome 1927 / G. Mestres, LexThK25 / P.R. McCaffrey, The White Friars: An Outline of Carmelite Histo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English-Speaking Provinces, Dublin 1926 / W. Nevin, Heirs of St. Teresa of Avila, Milwaukee 1959 / Andre de Ste. Marie, The Order of Our Lady of Mt. Carmel, Bruges 1913 / 오늘의 수도자들, 분도出版社, 1983 / 귀양의 애가, 서울 여자 가르멜 수도원,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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