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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리사 석불좌상
남산 임업시험장 뒷산이 미륵골인데 골짜기 초입에 보리사가 있다.
통일신라의 절터에 새로 절을 세웠는데 남산에 있는 절 중에서는 가장 넓고 깨끗하며 토함산을 바라보며
전망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비구니스님의 수행도량답게 정갈하고 구석구석에 티끌도 없어 보인다.
절 입구의 대나무 숲과 절 주변의 소나무들은 곧고 청정한 분위기를 주어 머리를 맑게 해 준다.
보리사 석불좌상(보물 제136호)-----환희롭고 오묘한 상호를 하고 계시며,광배와 좌대 모두가 아름답다.
깨달음의 희열과 중생을 향한 자비를 가득 머금고 지긋이 눈을 감으시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로
보는 이를 한없이 고요한 적정의 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것 같다.
화려한 광배는 신광과 두광이 연결된 편신주형광배이며, 보상화문 화염문으로 장식하고
일곱분의 화불을 새겼는데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광배의 뒷면에는 약사여래를 조각한 특이한 경우이다.이로 미루어 이 불상은 아미타여래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다만 두상에 비해 어깨와 몸체가 작고 무릎이 좁아 균형이 어긋나 보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더 친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비례만 갖추었다면 당연히 국보가 되었을 것이다.
좌대는 복련과 앙련을 겹으로 새기고,팔각의 중대석에는 우주를 두었다.
광배 뒷면-----왼손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를 선각에 가까운 앝은 부조로 새겼다. 광배 후면의 조각은
3-4예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
보리사 대웅전-----경내가 어디나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다.대웅전의 부처님도 비단가사를 걸치고 계시고
향로와 촛대도 칠보장식이 화려하다. 기단 면석에 안상을 새겼는데 각이 진 굴절된 원상으로
미감이 없는데, 어디에 근거한 안상인지 의아스럽다.
보리사 마애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193호)-----보리사 주차장에서 왼쪽 대숲길로 100m정도에 있다.
통일신라후기의 작품이며, 감실을 얕게 파고 1.1m의 여래상을 새겼다.
양볼 가득히 웃음을 머금은 듯한 친근하게 보이는 불상인데,불상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당시의 황룡사
사천왕사,망덕사,신문왕릉,낭산,보문사,토함산이 한 눈에 조망되는 상쾌한 자리이다.
마애불이 바라보고 있는 전망
2.불곡 감실석불좌상
부처골 감실석불좌상(보물 제198호)-----높이 3m 폭 4m정도의 바위에 1.7mx1.2mx0.6m의 감실을 파고
1.4m의 불상을 고부조로 조각 하였다. 이 불상은 양식상 고신라의 작품으로 현재 남산에 남아있는
불상중 가장 앞선 시기의 유물로 석굴암이나 군위 삼존불과 함께 석굴 양식의 변천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얼굴표정이 온화하고 아줌마같이 머리를 틀어 올린 육계와 다소곳한 표정으로 일명 할매부처라고
불리어 지며,기도 효험이 좋다고 소문이나서 보살들의 발길이 잦다고 한다.
내가 가던 날도 네명의 30-40대보살이 공양물을 올리고 딱딱한 바위에서 열심히 절을 하고 계시다.
3.경주 최부자집
경주 박물관 뒤로 교동에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14대의 만석꾼 최부자집이 있는데,
여기에 국내 유일의 연꽃석조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우리나라 갑부중에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명망있는 가문이라서 기대를 품고 찾아 갔으나,
지금은 요석궁이라는 고급 한정식집으로 개조되어 있고,연꽃석조는 물어보아도 아는 이가 없다.
시장한 차에 점심을 먹었는데 깨끗하고 풍치 있고 종업원들도 친절하고 손님도 많다.
최부자집 가훈 1.벼슬은 진사이상 하지마라. 2.흉년에는 남의 논을 사지마라.
3.곡식은 만석이상은 저장하지 마라. 4.사방 백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5.시집온 며느리는 삼년동안 베옷만 입혀라. 6.기억나지 않음.
남산 미륵골 보리사
탑골 입구에서 약400m 남으로 가면 갯마을 있다. 옛날 나룻배가 닿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있어 온 동네가 푸른데, 이 뒤쪽 계곡이 동남산의 미륵골이다. 대밭 옆길로 난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 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보리사가 있다.
근래에 새로 세운 대웅전과 산령각 및 종각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지금 남산에 현존하는 가람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49대 헌강왕의 능과 50대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 절은 두 왕릉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옛날 신라시대부터 '보리사(菩提寺)'라 불리워 왔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에는 통일신라시대 후반의 석불을 대표하는 유명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여래좌불이 지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불상을 처음 연구하는 이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석조여래좌상
법당 남쪽 위에 육중하고 웅장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유명한 석조여래좌상이 높은 연화대좌 위에 동으로 앉아 계신다. 고목의 뿌리처럼 억세게 대지 위에 놓여 있는 팔각복련대좌 위에 팔각 기둥이 솟아 있고, 그 기둥 위에 둥글고 부드러운 앙련대좌가 얹혀 있으니 이 둥근대좌는 하늘위의 부처님 세계인 것이다.
하얀 화강석으로 조성된 이 여래상은 거대한 둥근 연꽃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항마촉지인으로 수인을 표시한채 긴 눈을 가늘게 뜨고, 하계를 굽어 살핀다. 포물선으로 약간 치켜 올라간 긴 두 눈썹사이엔 큰 광명을 비추는 백호의 흔적이 패어져 있다. 삼각을 이룬 코, 그 밑에 조용히 다문 입술의 양가에 자비가 어려있다.
한 없는 자비는 부드럽고 풍만한 두 뺨에 어리어 우러러 보는 사람의 두 손을 저절로 모여지게 할 만큼 감동을 주는 거룩한 상이다. 나발로 표현된 육계는 높게 솟아 위엄스럽고 두 귀는 길게 어깨까지 드리워졌는데, 목에는 세 줄로 주름이 새겨져서 부드럽게 몸체와 연결되어 있다.
신광과 두광으로 된 광배는 화려하고 찬란하다. 불상은 사람의 형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모습에는 종교적인 이상이 가미되어 보통 사람과 다른점이 서른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32길상이라 하는데, 그 중 15번째가 '장광상'이라 하여 부처님의 몸에서는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고 하였다.
불상뒤에 세우는 넓은 광배는 바로 이 32길상 중 장광상을 나타낸 것이다. 보리사 여래좌상의 광배는 여섯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된 두 줄기의 주연선을 불상 몸체의 뒤에 타원형으로 돌려 신광을 나타내었고, 또 다섯송이의 연꽃으로 장식된 두 줄기의 주연선을 머리위에 원형으로 돌려 두광을 나타내었다.
신광과 두광에는 구불구불 뻗어 오른 줄기와 잎사귀사이의 간간이 핀 일곱송이의 연꽃위에 작은 여래불들이 새겨져 있다. 그 부처들을 화불이라고 한다. 주연선 마디 마디에 연꽃을 장식한 것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그 곳에 연꽃처럼 깨끗한 정토가 된다는 뜻이고, 간간이 작은 화불들을 배치한 것은 부처님의 빛이 비치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뜻이라 한다.
주연선 바깥 둘레에는 타오르는 불길이 새겨져 있는데, 불길은 부처님의 빛과 위력을 나타낸 것이다. 이 석불좌상의 광배는 화려함과 정교함에 있어 우리나라 석불광배 중 손꼽히는 것인데, 아깝게도 깨진 윗부분 조각이 없어졌다. 후세에 다른 돌을 다듬어 보수하였으나 옛 모습은 되살리지 못하고 흉한 상처로 남아있다.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으로 입었는데, 반대편 옷자락이 어깨 뒤로 넘어와서 오른쪽 어깨를 덮고 있다. 가슴에는 왼쪽 어깨에서 비스듬히 승기지가 엿보인다. 잘게 잡은 옷주름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부처님 몸체를 감돌며 잔잔히 물결친다. 이렇게 거룩한 상이 머리에 비해 몸체가 조금 약하게 보이는 것은 못내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잘고 섬세하게 표현된 가는 옷주름들은 그 약점을 더하여 주는 것 같다.
부처님이 앉으신 앙련대는 세겹으로 핀 큰 연꽃송이로 되어 있는데, 꽃잎이 백제식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므로 화려한 광배와 부드러운 이 불상이 잘 어울린다. 지나치게 화려한 것은 약하기 마련이다. 이 불상에서는 화려한 꿈속에 넘치는 무한한 자비는 느낄 수 있어도 강한 힘이나 박력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큰 시야로 볼때 이 불상은 약하거나 불안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팔각중대석 밑에 처진 열여섯잎 연꽃송이 때문인데, 그 윤곽선은 억센 팔각이다. 꽃잎마다 두 줄씩 돋을 새김하여 부풀어 오르게끔 변화를 주어 연꽃송이는 보는 동안에 국화로 착각을 일으킨다.
국화 꽃잎처럼 방사선으로 힘차게 새겨진 돋을 새김으로 인해 부드러운 불상대좌에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굳세고 힘차게 보인다. 3단괴임 위에 여덟 개의 기둥으로 앙련상대석을 떠 받고 있는 팔각중대석은 생기와 힘을 보태어 불상대좌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꽃이 만발한 벚꽃나무가 부리와 그루의 힘으로 대지에 지탱하고 있듯이 부드러운 불상과 화려한 광배가 어울려 이루어진 맑은 정토의 세계가 억센 복련하대석과 힘찬 팔각중대석의 힘에 의하여 무한한 안정감을 보여준 그 착상과 솜씨는 신라예술의 위대한 장점이라 하겠다. 이 불상의 연대는 석굴암시대가 지난후인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약사여래좌상
이 석조여래좌상의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높이가 1.27m되고 무릎넓이가 1m가량되는데, 얇은 돋을 새김으로 표현되었다. 두 겹으로 핀 앙련대좌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오른손을 가슴앞에 들고 왼손은 약그릇을 들어 무릎위에 얹고 설법하는 모습이다. 얼굴은 둥근편이데 마멸이 심하여 표정은 분간할 수 없다.
머리위에는 둥글게 두광이 그려져 잇고 몸체뒤에는 타원형으로 신광이 새겨져 있다. 그 둘레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연화대좌 밑에는 피어 오르는 구름이 새겨져 있다. 구름위에 높게 앉으신 이 부처님은 동방유리광세계를 제도하시는 약사여래다. 왼손에 계인의 표시로 약그릇을 들었으므로 누구나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동방유리광세계의 반대편은 서방극락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석조여래좌상은 극락세계의 주존불이신 아미타여래로 신앙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불상이 항마촉지인상으로 앉으셨기에 혹자는 석가여래로 보아 왔다. 항마촉지인은 부처님이 성도 하실 순간의 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시대 불상에는 수인에 일정한 규정 없이 자유롭게 표시하는 예가 많을 뿐 아니라 석굴암 이후로는 석굴암 부처님을 모방하여 항마촉지인상으로 조성된 불상들이 더욱 많았던 것이다. 금강산 굴불사의 사방불이나 칠불암의 사면석불의 예에 따라 이 석조여래상도 아미타여래로 보고자 한다.
찾아가는 길
톨게이트에서 보리사까지 20분 정도 소요. 톨게이트에서 보문방향으로 13분정도 직진하면 두 번째 사거리가 나오고, 7번국도 울산방향으로 우회전하여 2분정도 달리면 오른쪽에 화랑교육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면 우회전한다. 다시 1분정도 달리면 남천을 지나는 다리가 보이는데, 다리를 넘어 서면 바로 보리사 입구다. 마을 골목을 지나면 경사진 산길로 중간쯤에 차를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보리사 입구에서 보리사까지 도보로 15분정도 걸린다.
시외, 고속버스터미널 정문 맞은편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경주역 경유하여 25분정도 소요. 남천다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마을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산길로 15분정도 걸어 올라 가야 한다. 버스비: 1,050원 700원 10분간격
보리사 오르는 길목에 있는 환상적인 대나무 숲길
보리사 입구에 자리한 중수비와 부도탑
보리사 오르는 소나무 길
보리사 입구
보리사 대웅전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서 1981년 옛 절터에서 조금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중창할 때 지었다. 내부에는 높다랗게 조성한 중앙 불단에 석가삼존불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었고, 그 밖에 동종이 있다. 모두 근래에 조성하였다.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대웅전
보리사 범종각
보리사 삼층석탑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요사채
대웅전 앞에 자리한 쌍사자 석등
대웅전내 석가모니불
대웅전 좌측에 모셔진 지장보살상
대웅전 팔상도 벽화
대웅전에서 바라다본 보리사 전경
보리사 삼성각
삼성각 앞에 서있는 3그루의 멋진 소나무
석불좌상 오르는 길
미륵곡 석불좌상
보물 재136호
통일 신라 8세기 높이 2.43m, 경북 경주시 배반동 보리사지.
아름다운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이 석불좌상은 자비가 넘치는 얼굴, 유려한 옷자락의 흐름, 화려한 광배 등이 뛰어난 조각으로 완숙한 통일 신라 예술의 향기를 내뿜는 작품이다. 석불의 높이는 약 2.43m이다.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곱슬 같은 나발의 머리에 장방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양감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반듯한 이마, 가늘고 긴 눈썹과 귀, 오똑한 코,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은 단아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접근하기 힘든 위엄이 있다면 이 불상은 어딘지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얼굴은 신체와 다른 돌로 이루어졌고, 목에는 삼도(三道)를 뚜렷이 나타내었다. 좁아진 어깨에 가슴은 건장한 편이지만 석굴암의 본존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양감은 없다. 이러한 점은 다소 작게 표현된 항마촉지인의 손이라든가 좀 왜소해 보이는 하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높이 2.7m, 폭이 1.9m인 광배는 다른 돌을 댄 것이다. 앞면에는 보상문과 당초문, 화불을 조각하였으며, 뒷면에는 얇은 돋을새김으로 약사여래좌상을 새겨놓았다. 약사여래가 동방세계의 부처인 까닭에 앞쪽의 석불좌상은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형식이다.
높이 1.35m의 연화대좌는 겹으로 쌓은 복련의 밑받침에 팔각의 간석을 세우고 앙련을 조각하였다. 팔각의 중대에는 각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조각되어 있으며 비교적 단순하고 소박한 멋이 풍겨난다.
보리사 전경
보리사 찾아가는 길
경주 시내에서 울산 방면 7번 국도로 가다보면 왼쪽에 사천왕사터가 나오고 그 맞은편에 화랑교육원 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이 길로 들어서서 화랑교를 넘으면 탑골 입구 못미처 갯마을이 나서는데 우측으로 보리사 안내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