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냥 빚을 쉽게 갚는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2026년 3월 셋째 주일에 하날새에서 하늘빵을 올려드립니다.
한 냥, 두 냥 할 때의 '냥'은 철전, 즉 쇠를 녹여만든 돈이 만들어진, 고려 성종 때부터 쓰인 화폐 단위입니다. 엽전이 열 푼 모이면, 한 돈이 되고, 한 돈이 열 개 모이면, 한 냥이 됩니다. 한 냥이 천 개가 모인 것이 천 냥이니까, 천 냥은 아주 큰돈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만 잘 하면 천 냥이나 되는 큰 빚도 갚는다'는 말이니,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에서 말하는 '천 냥 빚'이라는 말에서 '빚'은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은 물론이거니와, 받은 은혜나, 신세 진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속담에서 '천 냥'은 돈의 액수가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큰일이나, 아주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도 말 한마디 잘하면 해결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속담은 광의적으로는, '말 한마디에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말은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는 것입니다. 고운 말은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진심이 담긴 말은 상대방을 감동시켜 나에게 닥친 힘든 일도 쉽게 풀리게 만들어 줍니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 천 냥의 빚이라도 갚을 수 있는 말을 소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소개 드리는 말은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라는 말을 하도록 해봅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혼자는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독방에 며칠만 살아보면 실감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불편한 관계를 만들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많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고받는 말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주 오래전 한 개그 프로에서는 자석의 N 극과 S 극의 특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극과 극'이라는 코너로 웃음을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같은 '극'을 만나면 무조건 밀쳐냅니다. 절대로 손잡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무조건 밀쳐내고 보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장 먼저는 자신이 힘들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피곤하며 상처를 입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부정하고 보는 그런 사람은 마음이 좁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해 주는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신이 분명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남의 의견도 존중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이 옳다면 다른 사람도 그 나름으로 이유와 타당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는 양보치 말아야 하지만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며 사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것이며 또한 지혜입니다. 갑자기 네거리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오래지 않아 네거리는 차들로 뒤엉켜버립니다. 서로 먼저 가려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서로가 양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양보가 늦은 것 같아도 양보가 편하고 빠릅니다.
어떤 작은 사무실에서 점심을 짜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하는 것으로 논쟁이 일어나서 결국 점심시간, 1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점심을 굶었다는 그런 웃으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단체에서는 가을 야유회를 '설악산으로 갈까?', '내장산으로 갈까?' 하고 의논하다가 결국 싸움이 붙어서 이산 저 산도 가지 못하고 경찰서로 갔답니다.
사람의 모임에는 의견이 분분하고 구구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찬물부터 끼얹지 말고 "참 좋은 생각입니다?"라는 말부터 해봅시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봅시다.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두 번째 소개 드리는 말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라는 말을 해봅시다.
어릴 적 저의 동네 앞에는 마주 보고 있는 산이 있었습니다. 소꼴 먹이려고 올라가다가 아이들은 메아리 소리를 들으려고 건너편 산을 향하여 소리칩니다. "야" 하고 소리치면 "야" 하고 돌아옵니다. "이놈" 하고 소리치면 "이놈" 하고 돌아옵니다. "나쁜 놈" 하고 소리치면 "나쁜 놈" 하고 돌아옵니다. 자기가 나쁜 놈 소리 듣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그다음에는 "착한 놈" 하고 소리치면 착한 놈" 하고 돌아옵니다.
이웃을 두고 한 말도 메아리처럼 돌아옵니다. 내가 좋게 말하면 그 좋은 평가가 내게로 돌아옵니다. 특히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듣고는 그 사람도 나를 두고 좋은 말을 합니다. 말은 독특하게도 항상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우리는 서로 얽혀서 삽니다. 혼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비방과 수군수군함과 거짓말은 사람들의 관계를 얽히게 하고 꼬아버리게 합니다. 그것을 풀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수군수군거리고 비난하고 거짓말로 모함하는 것을 좋아하면, 그 사람 자신이 불행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입으로 꼬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꼬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게 되어, 비틀어지고, 꼬여진 인생을 살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입니다", "그분 참 멋진 분이십니다"라고 말해 봅시다. 그러면 그 칭찬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그대로 돌아옵니다. 산을 가득 울리면서 돌아옵니다. 세상 사람 다 듣도록 돌아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소개 드리는 말은, "사진에서도 미남이시더니 직접 보니 더 미남이십니다. 사진으로도 이쁘시더니 직접 보니 더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해봅시다.
187년 전에 프랑스 사람인,'다게레오타이프'에 의하여 이 땅에 최초의 사진기가 발명됐습니다. 사진은 사람을 직접 볼 수 없을 때 아쉽지만 볼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사진이 합니다. 중매결혼이 대부분이었던 옛날에는 결혼하기 위한 첫 수순이 중매하는 분이 상대편의 사진을 갖고 와서 보여주는 것이 결혼으로 가는 첫 순서였습니다. 맞선을 보기 전에 보고 나갔던 사진 속의 인물보다 실물이 더 잘 생겼을 수도 있고, 더 이쁠 수 있었습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봅시다. "사진으로 봐도 미남이시더니, 직접 보니 더 미남이십니다", "사진으로도 이쁘시더니 실제로 보니 더 이쁘십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러면 상대도 틀림없이 "선생님도 사진 보다 더 잘 생기셨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말 한마디 잘하면 천 냥 빚도 갚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 잘못하면 원수가 되기도 하고, 살인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라는 것도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말만 잘하면 죗값을 치르지 않고 탕감 받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죄를 깨달았을 때에 또는 설교를 통해서 죄인 것을 알았을 때에, 입다물고 가만있으면 죗값을 예수님이 대신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고 말만 하면 내가 지은 죗값을 예수님이 대신 갚아 주십니다. 이 또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맹인이 함께 길에 있었습니다. 이 두 맹인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무리들이 두 맹인에게 "잠잠하라" 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두 맹인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두 맹인은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꾸짖었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둘 다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의 말 한마디가 천 냥이 아니라 수천 냥, 수억만 냥으로도 고칠 수 없는 눈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마라" 하면 더욱 소리 내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도 한마디는 천 냥 빚도 갚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빚을 대신 지시려고 온 우주 안에 꽉 차고도 넘칠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빚 갚기가 참 쉽습니다. 아멘
🔔 '하날새에서 드리는 ‘하늘빵'은 '하나님이 늘 주시는 일용할 빵'의 줄임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