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西山落日)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러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시집 『사랑의 무기』, 1989)
[작품해설]
김남주는 1970년대의 혹독한 시대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민중 해방과 민족 통일을 위하여 평생을 군부 독재 권력과 맞서 싸운 시인이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모순들에 대한 집요하고도 강인한 시적 탐구의 결과라는 평가처럼, 그의 시는 실천을 동반하지 않은 채 상투적인 구호의 남발에 머물고 마는 다른 시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모두 힘을 합쳐 연대 투쟁하여 소망하는 세상을 이루자는 결의를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이 모두에게 함께 가자며 동참을 권유하고 있는 ‘하얀 길’은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이자, ‘가로 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이다. ‘이 길’은 가야 할 길임에는 틀림없지만, 가기에 결코 만만한 길도 아니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길도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민중이 해방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길이며, 우리 민족이 하나로 통일되기 위하여 가야 하는 길아다 그러므로 그 길은 형극(荊棘)의 길이요, 시련의 길이다. 그러나 가면 좋은 길이요, 또한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 시는 민중이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열망과, 민중 해방과 민족 통일의 그 날을 염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지며, 그것은 단호한 의지로 나타난다. 시인의 세계관은 구체적으로 민중에 닿아 있으며, 민중의 단합된 힘을 믿고 함께 투쟁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얀 길’로 나아가 모든 민중이 소망하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공동적이고 개혁적인 세계관을 엿보게 한다.
이를 위해 시인은 4음보의 전통적 율격을 적절히 변형시키면서 대구(對句)를 이용하여 주제를 형상화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요나 유행가 가사와 같은 민중에게 친숙한 구절을 삽입하여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있다. 또한 ‘전사(戰士)’라는 별명답게 그는 선동적이고 강건하고 힘찬 남성적 어조로써 사회 변혁을 도모하는 그이 웅혼한 기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소개]
김남주(金南柱)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전남대학교 영문과 수학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시 「잿더미」 등을 발표하여 등단
1979년 ~ 1988년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
1992년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1994년 사망
시집 :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산이라면 넘어 주고 강이라면 건너 주고』(1989), 『사랑의 무기』(1989), 『솔직히 말하자』(1989), 『학살』(1990), 『시와 혁명』(1991), 『사상의 거처』(1991), 『이 좋은 세상에』(1992), 『저 창살에 햇살이 1~2』(1992),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1994),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995), 『옛 마을을 지나며』(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