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4 : 18. 베드로와 안드레 4 : 19. 사람을 낚는 어부
마 4 : 18. 베드로와 안드레 -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
1]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구약 성경에서는 '수금'이란 뜻의 '긴네렛' 바다로 불렸다.(수 12: 3에는 '긴네롯 바다')
* 민 34: 11 -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 수 13: 27 - 골짜기에 있는 벧 하람과 벧니므라와 숙곳과 사본 곧 헤스본 왕 시혼의 나라의 남은 땅 요단과 그 강 가에서부터 요단 동쪽 긴네렛 바다의 끝까지라.
그것은 아마 이 호수의 모양이 수금(竪琴)과 비슷하기 때문이거나 또는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성읍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신 3: 17 – 또는 아라바와 요단과 그 지역이요, 긴네렛에서 아라바 바다 곧 염해와 비스가 산기슭에 이르기까지의 동쪽 지역이니라.
* 수 11: 2 - 및 북방 산지와 긴네롯 남편 아라바와 평지와 서방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 수 19: 35 - 그 견고한 성읍들은 싯딤과 세르와 함맛과 락갓과 긴네렛과
* 왕상 15: 20 –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게네사렛 호수'(참조, 14: 34. 막 6: 53. 눅 5: 1)로 불렸으며, 신약 시대에는 '갈릴리 바다' 또는 헤롯이 남서쪽 해안에 건설한 도시 이름을 따라 '디베랴 바다'로 불렸다.
* 요 6: 1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 요 21: 1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히브리어에서의 '바다'(*, 얌)라는 말과 헬라어에서의 '바다'(*, 달라싸)는 독일어(See)와 같이 '호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곳은 다른 바다보다 염분 정도가 5배(25%)가 되는 남쪽의 사해와는 달리 담수호로서 남북이 14마일(20km), 동서가 가장 폭이 넓은 곳이 9마일(12km)이며 해수면보다 보통 212m나 낮아 헤르몬 산으로부터 불어오는 태풍이 풍랑을 자주 일으킨다.
* 마 8: 24 -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 마 14: 24 -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 막 4: 37 -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 막 6: 48 -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 눅 8: 23 -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 요 6: 18 -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이곳은 어족(魚族)이 풍부하여 어업이 번창하였고 그 해안에는 예수의 전도 활동에 주요한 배경이 된 성읍들이 자리 잡고 있다.
* 마 4: 13 -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 마 11: 20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요 6: 23 -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 베드로라 하는 시몬
'베드로'(*)라는 헬라어 이름은 '반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님의 역사적 예견의 방법에 의해서 주어진 이름이다.
* 마 10: 2 -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 마 16: 18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막 3: 16 -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 눅 6: 14 –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이에 대한 아람어 동의어인 게바(*, 반석)가 당시에 이미 널리 사용되던 이름이지만(Best, Wilson) 예수께서 시몬에게 붙여 주심으로 그의 신분과 미래의 가능성을 통찰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케 한다.
시몬(*)은 히브리어 이름으로 '들음'을 의미하며 베드로의 본명(本名)이다.
3] 그의 형제 안드레(*)
이 이름은 순수한 헬라 이름으로서 '남자다움'을 뜻한다. 그는 원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 요 1: 40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예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확신하고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최초의 선교사란 칭호를 받았다.
그는 이웃을 돕는데 신속하고 은밀하게 선(善)을 행하는 숨은 일꾼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후에 그는 아가야(Achaia)에서 X형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 요 6: 8-9 –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 요 12: 21-22 –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4]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그물'(*, 암피블레스트론)은 신약성경에는 단 한 번 밖에 안 나오는 단어로서 둥근 모양의 투망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물'의 보다 포괄적인 용어 '따튀아'(*, '그물들', 4:20)와 '사게네' (*, '그물', 13:47) 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본문에 제시된 '그물을 던지는 것'이란 그물을 어깨 위로 돌리며 던진다는 의미로 동작이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용어로 보는 것이 좋다. 이는 주님께서는 그들이 생업에 바쁘게 전념하고 있을 때 제자로 택하셨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본 기사는 눅 5: 1-11의 내용과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 눅 5: 1-11 –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누가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 것을 보신 것으로 묘사한(눅 5: 2) 반면에 본 절에서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18절)과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계셨다고 기록하고 있다(21절).
이 같은 차이점이 두 기사가 각기 다른 전승(傳承)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 차이점은 공관 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서 엄격하게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한 사건이 드러내고 있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그 사건을 시간적 순서를 무시하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고 있다. 저자의 독특한 관점 내지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가 각기 다르기에 동일 사건을 묘사하는데 세부 내용상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마태는 누가와 동일한 사건을 다루되 동일한 방법으로 기록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본문의 '다니시다가'라는 말에서 한층 명백해진다.
독자들은 이 사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 건설의 현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예수를 믿는다면서 골방에나 기도원에 앉아만 있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일할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위대한 소명을 맡기실 것이다.
마 4 : 19. 사람을 낚는 어부 -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주께서는 ‘나를 따르라’라는 초청의 말로 전도자를 부르셨다.
전도자는 주의 부르심을 통해 세워진다. 오늘날도 그는 전도자들을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은 단순한 초청 이상이다. 그것은 주의 하시는 일을 보고 배우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전도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 즉 주님의 발자취를 보고 배우며 준비되고 훈련되는 자이다.
1] 나를 따라 오라.
예수의 신적 권위에 입각한 절대적이며 강권적인 명령이다.
여기서 명령의 효력을 갖는 '따라 오라'(*, 듀테)라는 표현은 예수의 사역 수행 기간 동안 육체적으로 '쫓아다닌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마 10: 38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눅 9: 23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눅 14: 27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명령은 단순히 예수의 육체를 장소적 의미에서 좇으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삶의 방법과 목적과 관심을 모두 청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전환할 뿐만 아니라 그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라는 희생적 의미이다.
* 마 10: 39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2]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과 사명을 진술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직업과 새로운 사명을 연결시켜 그들에게 주어질 직무가 사망의 땅과 그늘(16절)에 영원히 처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성령과 복음이라는 그물을 가지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본 구절은 렘 16: 16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 렘 16: 16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포로로 삼기 위해 어부를 보냈듯이 이제 예수는 포로 시대가 끝나고 메시야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어부를 보내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직책에 대해 자만하지 않게 하도록 예수께서는 그들의 전 직업을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렇듯 주변 환경과 밀접한 일상사를 문학적인 표현(비유)을 사용하여 하늘에 속한 신령한 진리를 교훈하시고 나타내실 때가 많다.
제자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추종해야만 했다. 여기서 '사람'(*, 안드로포이)이란 복수 용어는 보편적인 것으로서 모든 인류를 말한다.
이 명령은 28: 18-20의 선교 명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모름지기 이웃의 영혼을 돌아보는 데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 마 28: 18-20 –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