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 6]
마지막 편입니다.
1960년 샤넬이 내놓은 컬렉션은 전 세계적인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패션계의 왕좌를 다시 차지한 것이다.
특히 미국 여성들은 샤넬 수트를 사기 위해 줄을 섰으며, 1964년 오바크 백화점에서는 반나절 만에 그 비싼 샤넬의 옷이 200장이나 팔려 나갔다. 1970년8월, 샤넬은 자신의 마지막 컬렉션을 열었다. 그녀의 나이 87세였다.
그녀의 디자인 철학은 한결같았다. 그녀에게 미니스커트 열풍도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았다. 완벽한 비율을 가진 무릎길이의 스커트와 몸에 잘 맞는 재킷, 실크 블라우스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 그리도 여러 줄의 긴 진주 목걸이, 이것만으로도 여성은 우아해질 수 있었다. 모두 샤넬의 상징적 아이템들이었다. 1971년 1월10일, 샤넬은 산책 후 돌아와 피로를 느끼다가 가정부에게 “이것 봐, 이렇게 죽는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눈에 띄게 값이 비싼 것, 그리고 복잡한 것보다 여자를 나이 들어 보이게 하는 것은 없다”
검은색 미니드레스, 무릎길이의 스커트, 벨트가 있는 카디건, 검은색 저지 이브닝드레스, 긴 진주 목걸이,트위드 재킷, 퀄팅 백, 베이지와 검은색의 투톤펌프스와 슬링백 동백꽃 모티브 그리고 No.5 향수까지, 현재까지도 그 가치와 스타일을 잃지 않고 있는 샤넬의 대표적인 상징들이다. 샤넬 이후 많은 브랜드들이 표방하는 스타일과 아이템들은 바로 이 샤넬 스타일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넬의 캉봉가 31번지 매장은 샤넬 제국의 성지가 되었다. 그곳은 샤넬의 시작이자 본거지였다. 관광객들이 이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앞에서 사진은 찍을 만큼 ‘샤넬’이라는 브랜드는 소위 ‘명품’계의 상징적 존재이다. 크고 화려하진 않아도 이 캉봉가의 매장은 단순하지만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것이 샤넬의 철학이다. 복식사에 있어 샤넬 스타일의 의의는 남성복의 실용성과 편안함을 여성복으로 옮겨 와 새로운 여성복 스타일을 탄생시켰다는 것과 새로운 소재로 만든 심플한 샤넬의 드레스가 수백 년간 변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스타일을 바꾸고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을 벗어던지게 했다는 데 있다. 여권 운동가들이 여성의 정신을 각성시켰다면, 샤넬은 여성의 몸을 해방시켰다. 이제 여성들은 가볍고 편안한 옷을 입고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어떤 활동도 할 수 있었다. 샤넬은 20세기 여성들에게 스타일과 함께 편안함까지 선사했다. 지금은 명품백의 대명사가 되어 가장 비싼 가방에 속하는 샤넬의 2.55 퀄팅백도 가방에 끈을 달아 여성들이 편하게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한 샤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퀄팅 백의 일러스트는 너무 전형적이 되어서 핸드백의 국제 기호로까지 등극했다. 사과 그림이 사과를 의미하듯, 퀄팅 백 그림은 바로 핸드백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샤넬은 터무니없이 비싼 것이 여자를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믿었다. 당시에도 비쌌지만, 현재 샤넬의 옷과 가방이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정도고 비싸서 평생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손대기도 무서운 고가의 옷에 실용성이나 편안함이나 하는 그녀의 패션철학이 웃기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스타일의 옷을 입은 것이지 고가의 명품 샤넬을 입은 것이 아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패션 사업에 뛰어들기 전에도, 그녀는 심플한 블라우스에 바닥을 끌지 않는 실용적인 스커트와 간편한 모자를 착용했다. 그것이 샤넬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