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상복의 교사들 “더 물러설 곳 없어”
초등교 교사 49재 ‘공교육 멈춤의 날’
전국 교사들 병가-연가 내고 ‘파업’
尹 “교육현장 목소리 새겨 교권확립”
교육부, 징계 입장서 한발 물러서
“교사 죽음 더는 없게” 추모 촛불집회 서울 서이초에서 숨진 교사의 49재인 4일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공교육 멈춤의 날’로 불린 이날 서울 국회 앞과 전국 교육청, 교육대학 등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교사들은 잇달아 연가, 병가를 냈고 예비 교사들도 집회에 참석했다. 교사들은 “우리 교육은 9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외쳤다. 이한결 기자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교사의 49재인 4일 전국의 교사들이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일부 교원단체가 주도했던 것을 제외하고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연가나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것은 공교육 역사상 처음이다. 국회 앞에 모인 교사들은 “다시는 어떤 교사도 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서이초 추모 공간을 찾은 한 초교 교사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날(3일)까지만 해도 병가-연가 투쟁에 참여하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던 교육부는 교사들의 분노에 ‘징계’ 언급을 삼가며 물러섰다. 일선 학교 현장은 출근하지 않은 교사들로 인해 수업 공백이 생겼다.
‘공교육 멈춤의 날’로 불린 4일 오전부터 서이초 추모 공간에는 검은 옷을 입은 교사, 추모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길게 줄 섰다. 헌화를 위해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손에는 하얀 국화,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한 초교 교사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연가, 병가를 낸 것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난동을 피워도 교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이제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도로에서 여의도공원까지는 검은 옷차림의 교사, 시민들의 검은 물결이 뒤덮었다. 이들은 “우리가 바꿀 것이다”, “우리 교육은 9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날 서울 4만 명(주최 측 추산) 등 전국에서 최대 10만 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학교 차원의 임시휴업을 한 곳은 38곳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연가, 병가를 냈고 교장이나 교감이 수업을 대신했다. 서울은 전체 초등 교사 약 2만7000명 중 절반 이상이 연가, 병가를 낸 것으로 추산됐다.
교육부는 전날까지 “집단 연가나 병가는 ‘사실상 파업’으로 징계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4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현장 교사들이 외친 목소리를 깊이 새겨 교권 확립과 교육 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하자 기류가 변했다. 이날 오후에 교육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병가, 연가 낸 교사를 다 징계한다는 건 아니다. 현황을 파악해 보고 판단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거리 나선 교사 등 10만명 “우리가 바꿀것”… 교육부, 징계 말 아껴
[공교육 멈춤의 날]
국회앞 4만여명 모여 ‘검은옷 물결’… 극단선택 진상규명-교권회복 외쳐
“징계 운운 교육부 사과하라” 성토
교육부 "징계, 오늘은 언급 않겠다"
교사들 “교권보호법안 의결하라”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 참석한 교사와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올 7월 극단적 선택을 한 서이초 교사 관련 진상 규명과 교권보호법안 의결 등을 촉구했다. 박형기 기자
“더 이상 교사를 죽이지 말라! 억울한 죽음들의 진상을 하루빨리 규명하라!”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49일째를 맞은 4일 전국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을 선언하고 추모 집회에 나섰다. 이날 오후 4시 반경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약 4만 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들은 검은 옷을 입고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들에 대한 진상 규명과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등 교권보호 입법을 요구하며 1시간 반 동안 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전국에 모인 교사 등은 최대 10만 명에 달했다. 시민과 교대생, 교사 가족 등이 일부 포함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국 교원(50만 명) 10명 중 1, 2명가량이 동참한 것이다.
● 연가·병가 내고 거리 나선 교사들
이날 국회의사당 앞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4500명,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5·18민주광장 앞에서 3500명 등 전국에서 최대 6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당초 국회 앞에 1만 명, 전국적으로 2만∼3만 명이 집회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근 교사 3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규모가 크게 늘었다.
주최 측은 카네이션 1000송이를 무대 위에 헌화하며 추모 집회를 시작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온 심양선 씨(41)는 “아내도 중학교 교사인데 공교육 붕괴가 걱정돼 나왔다”며 “같이 온 초등학교 3학년 딸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해서 함께 헌화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엔 숨진 서이초 교사 A 씨를 지도했다는 교대 교수도 나왔다. 그는 “A 씨를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며 “선생님의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도전과 싸우겠다. 제자들을 꼭 지키겠다”고 외쳤다. 집회 참석 교사에 대해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참석자들은 “징계를 운운하며 권한을 남용한 이 장관은 사과하라”고 외쳤다. 교사들은 대부분 병가나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했다. 병가를 냈다는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권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어느 학생을 맡느냐에 따라 교사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 한발 물러선 교육부 “징계 말 아낄 것”
이날 임시 휴업을 결정한 서이초에는 오전부터 추모를 위한 시민과 교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공식 추모제가 열린 서이초에는 이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여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소중한 선생님들이 홀로 어려움과 마주하지 않도록 함께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이 장관을 포함해 그동안 집회 참석 교사 등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던 교육부도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 교사들이 외친 목소리를 깊이 새겨 교권 확립과 교육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후 다소 태도가 달라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 징계에 대한 언급은 오늘은 말을 아끼겠다”며 “파업에 나선 교사를 무조건 엄정하게 다 징계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서이초를 제외하고 임시 휴업한 나머지 학교에 대해선 여전히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징계 수위는 다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학교에 병가를 내고 자녀 둘을 추모제에 데려온 한 교사는 “교육부가 징계하겠다고 하는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심정”이라고 했다. 조 교육감은 이날 “교육부는 교사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해달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최예나 기자, 최훈진 기자, 이상헌 기자, 김태영 기자, 최미송 기자, 최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