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21 레드백과 KF41 링스
2023년 12월. 호주 캔버라 국방부 청사에서 발표가 나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AS-21 레드백이 독일 라인메탈의 KF41 링스를 꺾고 호주 LAND 400 Phase 3 사업 최종 수주자가 됐다. 계약 규모만 약 3조 1649억 원. 당시 외신들은 "한국이 해냈다"고 보도했고, 방산업계는 흥분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26년 4월 29일, 이번엔 루마니아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 약 26억 유로(4조 4000억 원) 규모의 루마니아 IFV 사업 — 레드백의 2연속 우승을 기대하던 K-방산 업계에 차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루마니아는 링스를 선택했다.
1승 1패. 스코어만 보면 팽팽하다. 하지만 두 장갑차의 비교는 그 숫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다. 성능으로만 따지면 어느 쪽이 더 뛰어난가? 왜 호주는 레드백을, 루마니아는 링스를 선택했나? 그리고 앞으로 남은 무대에서 두 장갑차의 대결은 어떻게 흘러갈까.
1. 두 장갑차의 탄생 — 전혀 다른 출발점
레드백과 링스는 태어난 배경부터 다르다.
AS-21 레드백은 처음부터 호주를 위해 만들어진 장갑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도면조차 없던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해 개발했다. 모태는 한국군의 주력 보병전투차인 K-21. 여기에 이스라엘제 능동방어체계, 360도 전장감지 카메라, 고무 궤도 등 한국의 독자 기술을 더하고, 호주의 극한 환경에 맞게 설계를 전면 재설계했다. 이름의 뜻도 호주 감성을 그대로 담았다 — 레드백(Redback)은 호주에 서식하는 맹독성 독거미다.
KF41 링스는 다른 길로 왔다. 라인메탈이 독일연방군의 요구도 없었고, 특정 수출 대상국도 없었던 2010년대 초에 순수하게 글로벌 수출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장갑차다. 링스(Lynx)는 영어로 스라소니. 이름처럼 유연하고 기민한 이미지를 의도했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듈화 — 독일 방산업계의 기존 부품들을 레고처럼 조합해 만들었다. 변속기는 푸마와 아약스에서, 화생방 방호 시스템은 복서 장갑차에서, 궤도는 PzH2000 자주포에서 가져왔다. 이 전략 덕분에 개발 리스크는 낮추고, 검증된 부품의 신뢰성은 높였다.
2. 스펙 비교 — 숫자로 보는 두 장갑차
AS-21 레드백과 KF41 링스
3. 같은 스펙, 전혀 다른 철학
가벼운 레드백의 비결 — ISU와 고무 궤도
링스보다 2톤 가벼운 레드백.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는 현수장치. 링스는 기존 장갑차에서 보편적으로 쓰는 '토션 바' 방식을 쓴다. 가로로 긴 쇠막대가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인데, 지뢰 공격 등 차체 하부가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두꺼운 하부 장갑이 필수다. 무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레드백은 '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SU)'를 쓴다. 각 바퀴에 소형 ISU가 개별 탑재되어 능동적으로 충격을 흡수한다. 차체 하부에 두꺼운 장갑을 덧댈 필요가 없다. 그렇게 아낀 무게는 상부 장갑 강화에 투입됐다.
둘째는 고무 궤도. 레드백은 국내 IFV 중 처음으로 고무 궤도를 채택했다. 효과가 상당하다. 진동과 소음이 철제 궤도 대비 최대 70% 감소한다. 연비는 30% 개선. 정비 수요는 80%나 줄어든다. 지뢰 폭발 시 철제 궤도는 그 자체가 파편이 되지만, 고무 궤도는 그 위험이 훨씬 적다. 단점이 있다면 내구성 검증 데이터가 철제 궤도에 비해 아직 축적이 덜 됐다는 점 정도다.
링스의 강점 — 모듈성과 확장성
링스의 진짜 경쟁력은 모듈화 철학에 있다. 포탑을 교체하면 IFV에서 APC로, 경전차로, 대공화기로 바꿀 수 있다. 8시간 안에 전환 가능하다고 라인메탈은 주장한다. Lynx 120이라는 파생형은 120mm 활강포를 탑재해 경전차와 IFV의 경계를 허문다. 이 수준이면 장갑차계의 트랜스포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 속도 70km/h를 가능하게 하는 엔진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 리베르(Liebherr)의 750마력에서 최대 1140마력까지 선택 가능한 디젤엔진. 무겁지만 빠르다.
화력 — 30mm vs 35mm
두 장갑차가 주포 구경에서 갈린다. 레드백의 Mk44S는 30mm 전동식 기관포다. 전동 방식의 핵심 장점은 불발탄이 발생해도 승무원 개입 없이 계속 사격이 가능하다는 것. 반면 링스의 35mm 포는 구경이 더 크다 — 더 강력하고, 더 긴 사거리. 단 불발탄 발생 시 수동 대처가 필요하다.
35mm vs 30mm, 어느 쪽이 '더 좋다'는 단순 정답은 없다. 상황과 교리에 따라 달라진다.
생존성의 핵심 — 아이언 피스트
레드백의 가장 독보적인 기술은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방어체계다.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의 기술로, AESA 레이더가 장갑차로 접근하는 적 대전차미사일을 탐지해 자동 요격하는 하드킬 방식 APS다. 차량 상부를 노리는 드론·미사일에도 대응 가능하다. 360도 AR 카메라 시스템 '아이언 비전'과 연동되면 지휘관은 헬멧으로 차체 외부 상황을 투시하듯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입증했듯, 현대 보병전투차의 가장 큰 위협은 드론과 대전차 미사일이다. 레드백의 아이언 피스트는 이 위협에 직접 대응하는 체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4. 호주전 복기 — 독거미가 스라소니를 이긴 이유
2023년 호주의 최종 선택은 레드백이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링스가 유리하다고 봤다. NATO 동맹국인 독일의 외교 채널이 강하게 가동됐고, 라인메탈은 호주 박서 장갑차 계약을 내세워 관계의 연속성을 어필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이것이 오히려 레드백에게 기회였다.
한화는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지원을 등에 업고 신뢰를 구축해 나갔다. 방위사업청은 '수출용 무기체계 군 시범운용 제도'를 통해 레드백을 육군 11사단에서 실제 운용해 호주 측 우려를 불식시켰다. 무엇보다 질롱(Geelong)에 K9 자주포 공장을 이미 짓고 있었다 — 레드백을 선택하면 같은 공장에서 동일 파워팩을 사용하는 자주포와 장갑차를 함께 생산하고 정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단순한 장점이 아니었다. 운용 비용, 납기, 후속 지원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패키지였다.
결국 호주의 선택을 가른 건 장갑차 하나의 성능이 아니라, 누가 더 믿을 만한 파트너인가였다.
5. 루마니아전 결과 — 이번엔 링스가 이겼다
2026년 4월 29일, 루마니아 정부는 차세대 보병전투차로 KF41 링스를 선택했다. 약 26억 유로(4조 4000억 원) 규모. 링스 232대를 EU SAFE 기금으로, 이후 66대를 자체 국방 예산으로 추가 도입해 총 298대를 운용할 예정이다. 루마니아 의회 승인을 거쳐 8년 이내 전 차량이 인도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치열하게 싸웠다. 80%에 달하는 현지화율을 제안했고, 이미 루마니아 현지 생산 공장 착공에도 들어갔다. K9 자주포와 파워팩을 공유한다는 상호운용성 논리도 강하게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링스였다.
왜였을까. 복수의 배경이 겹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라인메탈은 루마니아 현지 방산 업체 Automecanica Mediaș를 아예 인수해 현지 생산 의지를 못박았다. 헝가리와의 링스 생산 라인을 이미 가동 중이라는 검증된 유럽 생산 기반도 작용했다. EU SAFE 기금을 사용하려면 부품의 65% 이상이 EU·EEA 내에서 조달되어야 한다 — 유럽 방산 생태계 내의 링스가 본질적으로 유리한 구도다. 방산은 성능만의 게임이 아니다. 정치, 동맹, 자금 조달 방식까지 모두가 변수다.
6. 1승 1패 이후 — 남은 무대들
지금 레드백과 링스의 경쟁은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다음 라운드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인도 FICV 사업 : 인도군의 차기 보병전투차 사업(FICV)에 레드백이 참가 중이다. CV90, ASCOD, 링스 등이 경합 중이며, 규모 면에서 지금까지의 어떤 사업보다 크다.
미국 OMFV : 미국의 차세대 유무인 보병전투차 사업. 레드백은 오시코시 컨소시엄과 참가했으나 2023년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링스는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그리핀 III와 함께 최종 후보로 살아남았다.
그리스, 우크라이나 등 : 다수의 국가가 레드백과 링스 모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승 1패. 레드백은 호주에서, 링스는 루마니아에서 각각 자신의 강점을 증명했다. 그 강점이 서로 다른 것이 오히려 흥미롭다.
AS-21 레드백과 KF41 링스, 세계 IFV 왕좌 쟁탈전 < 무기체계 < 기사본문 - 데일리방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