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즐겨 피운다는 의미에서는 흡연자이지만, 그러나 골초라 할 정도로 가까이 하고 있지는 않다.없으면 없는대로 안피우고 말지 굳이 몇십미터 떨어진 담배가게에 가서 담배사오는 것을 귀찮아 할 정도로, 나는 담배매니아는 아닌 셈이다.
주로 술마실때 습관적으로 피우다 보니 한자리에서 한갑까지 피운 적도 많지만,며칠 동안이구 담배생각이 안 나는 적두 많다.특히 술마신 담날 숙취가 남아 있을 때 나는 담배자체가 역겨울 뿐인데 같은 정도의 숙취를 가진 다른 사람이 해장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담배매니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다.
최근 흡연자들의 길거리흡연을 규제하려는 법안에 대한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논쟁을 보면 난 양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머."나는 황희정승의 입장이로소이다"..이런 식의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비흡연자들의 고통이야 익히 알구 있을 것이구..흡연자들의 입장에서도 보면 억울하고 좀 심하다고 느낄만한 사정이 있다고도 보는 것이다.
또 담배 규제에 대해서 비흡연자들은 선진국의 사례 운운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프랑스 같은데는 우리나라보다 흡연자들에 대한 제도적 혹은 사회심리적 규제가 덜하다는 걸로 알고 있다. 유럽 특유의 리버럴리즘의 영향일 수도 있고, 어차피 대도시에 살고 있는 한, 자신의 정당한 권리의 주장과 이의 법제화도 중요하지만,가급적 규제 일변도보다는 시민사회의 상식과 관용으로 풀어나갈 문제두 있다는 프랑스식의 마인드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쨋든 규제보다는 각자의 양식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한데..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인적이 드문 지리산이나 덕유산 등의 국립공원 능선에서 담배를 즐겨 피운다.(아마 그 즐거움을 포기하라면 나는 아마 등산을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존재하는 관악산에서는 담배를 거의 피워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내가 미리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기도 하겠거니와 몇 번 피웠다가(그것도 사람들 없는 곳을 찾아 들어가 숨어서 한건데두) 무슨 보물찾기 하듯이 구태여 찾아와서 지적하는 아저씨들 때문이다. 나는 그때의 느낌이 저 아저씨의 행동은 담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행을 지적하는 데서 연유하는 일종의 우월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왜냐하면 나의 경우는 산에서 사람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해 해도,수미터 떨어져서 사람의 눈을 피해 조용히 담배피는 사람때문에(연기나 날라왔으면 모를까..)불쾌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누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나는 대개의 경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 생각은 모순된 것이거나 잘못되었을지 모른다..글구 이러한 나의 혼돈은 내가 흡연자이되 그렇게 골초는 아니라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인터넷 한겨레에서 퍼온 글....................
길거리흡연 금지법안 논란
길거리 흡연은 흡연자의 당연한 권리인가, 불쾌감을 주는 규제대상인가? 지난 19일 이근진 의원(한나라당)은 ‘길거리흡연 규제법안’을 다른 의원 57명의 서명과 함께 국회에 제출했다. 공공시설에 이어 길거리 흡연까지 금지당할 처지의 애연가들은 22일 집회를 열고 ‘거리금연법 반대 입법청원’ 서명에 나섰다. 흡연자들을 향한 압박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국립암센터 박재갑 원장은 담배백해무익론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고, 폐암으로 숨진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병상 금연호소도 흡연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각급 학교를 비롯한 공공시설에선 금연이 법제화되었다. 길거리 금연법안 제출을 놓고 흡연자와 비흡연자들은 날카롭게 맞섰다.
길에서 담뱃불에 데인 사람들
인터넷 게시판엔 법안 제출을 환영하는 비흡연자들의 피해 보고가 꼬리를 물었다. “길 가다 담배연기 강제로 맡는 기분 알아 왜 길 가다 담뱃불에 손 데이고 그 연기 맡으며 건강 해쳐야 하는데 담배연기 뿌린 행인이 사과한 거 본 적이 없다.”(<인터넷한겨레> 게시판 아이디 ‘김치’)
“난 앞 행인이 담배를 피우면 뒤로 흐르는 연기가 싫어 그 사람 앞으로 뛰어간다. 그러고도 그 흡연자가 날 앞지를까봐 종종걸음 친다.”(〃 신혜정)
정부가 장려한 흡연은 기본권
“실내도 실외도 안된다면 어디서 피우란 말인가” 흡연자들은 음주 폐해나, 디젤차 매연에 비하면 길거리 흡연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항변한다. “길거리 간접흡연으로 건강 해치는 게 걱정될 정도라면 대도시에서 어떻게 살 수 있나 여기가 싱가포르인가”(〃 우끼네)
기호품의 특성을 무시하려면 껌도 팔지말고 충치와 비만을 일으키는 탄산음료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피해 인정한다. 하지만 세상에 피해 안받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난 담배로 피해를 주지만, 사회는 나에게 더 큰 피해를 주었다. 그 스트레스를 담배와 술 말고는 풀 길이 없다.”(〃 담 배째라)
타인의 희생을 전제한 기본권
흡연권도 존중되어야 하나 비흡연자들의 희생과 인내를 대가로 이뤄져야 할 기본권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흡연 자체보다 흡연예절이 문제다. 금연인 사무실·식당·목욕탕 등지에서 아랑곳않고 담배 피워물고 담뱃재와 꽁초를 하수구·거리에 스스럼없이 버리는 흡연자가 대부분이다. 간접흡연의 피해를 호소하면 ‘공해엔 디젤차가 더 나쁜데 왜 흡연자를 악의축으로 삼는가’라며 항변한다. 난 담배연기의 유해성보다 내멋대로 흡연자들의 철면피와 폭력성이 더 싫다.(〃 이흥식)
이제껏 흡연이 폐해에 불구하고 관용되어온 측면엔 ‘다수 권력층의 기호품’이란 분석도 있다. “흡연이 중독성과 폐해에 있어서 연성마약보다 나을 게 없는데 왜 담배와 마약에 대한 대접이 다른가. 이는 어느 쪽이 다수인가 하는 권력의 문제이다. 성인남자의 3분의2가 흡연자이고, 비흡연자가 오히려 소수이다. 담배 역시 소수만이 피운다면, 마약처럼 손가락질 받으며 숨어서 피울 것이다. 담배가 권력층인 성인남자 또는 다수의 기호품이란 현실이 소수 비흡연자의 당연한 권리를 묵살하게 만들었다.”(〃 담배5년)
‘길거리금연’ 흡연자들의 대안
담배가 전매품이었던 만큼 중독된 흡연자들에 대한 국가책임론도 나왔다. “흡연자야말로 피해자다. 중독성 강한 마약류에 빠지게 해놓고 자신의 노력만으로 끊으라 하고, 못끊으면 의지박약이니 하며 열등인간 취급하는 세상이다. 정부는 보호해야 할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류를 팔아 생긴 이득으로 뭘 했나”(〃 하루한갑)
“사무실내 흡연이 당연시되던 시절에 지어진 건물들이 하루아침에 금연건물로 되어버리니, 흡연자들은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수십층을 내려와 궁상을 떨어야 한다. 정부가 담배유통을 중지시키지 못할 거라면 건물 지을 때 주차장처럼 층별 흡연시설도 강제하라. 비흡연자들을 위해 길거리 금연을 추진한다면, 길거리 곳곳에 쾌적한 공공흡연시설도 지어야 한다.”(〃 시비걸기)
시대착오적 규제만능주의
사상의 자유와 개인의 윤리를 부당하게 간섭해온 국가보안법과 간통죄까지 없애자는 마당에 국가가 나서서 ‘길거리 흡연’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란 반론도 거셌다. 애초부터 강제할 성질이 아닌 것을 법률로 다스리겠다는 것은 국민들을 위선자와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게 되어 법의 권위상실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공중도덕을 잘 지키자”는 말로 충분하다는 논리다.
“지하철 역마다 커피자판기가 있다. 커피 든 채 열차 타지 말라고 하지, 쏟는 수가 있으니 지하철에서 커피 마시면 불법이라는 법률을 만들진 않는다.”(〃 환승역)
치열한 흡연권-혐연권 공방에서 네티즌들은 ‘길거리 흡연’을 흡연자들의 양식에 맡기자는 의견보다 법률을 통한 규제에 더 많이 공감했다.(라이브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