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19일)도 지나 찬바람은 한결 누그러젔다. 지리산 자락과 남도 들판을 적시는 섬진강, 강변으로 줄지어 늘어선 매화나무·벚나무 가지들도 물이 올라 촉촉하다. 3월 들어서면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꽃·벚꽃·배꽃 들이 피고 지고 흩날리고 떠서 흐르기를 4월 중순까지 되풀이할 터이다. 미리 떠나는 구례 섬진강 봄마중 여행이다.
사성암의 섬진강 전망=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의 암자 사성암(四聖庵)은 봄이 오는 길목을 지켜보기 좋은 곳이다. 오산은 해발 531m에 불과한 산이지만, 섬진강 줄기에 붙어 우뚝 선 까닭에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백제 성왕 때(544년) 연기조사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성암은, 본디 오성암으로 불리다 연기조사에 이어 원효·도선·진각국사 등 네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으로 불리게 됐다. 폐허가 되다시피했던 암자터에 지난 90년대 말, 절벽에 기둥을 세우고 약사전·지장전 등 암자를 새로 조성했다.
담장과 운치 있는 돌계단 좌우론 소원성취 글귀를 적은 기왓장들이 촘촘히 쌓여 있다. 약사전에 오르면 곡성 쪽에서 흘러와 한 굽이 꺾이며 구례 쪽으로 내닫는 섬진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잡힌다. 저물 녘 섬진강 물줄기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순천 쪽으로 넘어가는 해넘이 모습이 아름답다. 도선굴 들머리로 돌아나오면 풍경은 더욱 시원해진다. 구례읍과 섬진강 주변 너른 들판,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자 마당 동쪽 50m 지점의 암벽엔 높이 4m 가량의 대형 마애여래입상이 음각돼 있다.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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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의 바위벽에 기둥을 세우고 조성한 사성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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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타면 한시간 가량 걸려 오르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가파른 찻길이 닦여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구례에서 문척교를 건넌 뒤 팻말 보고 우회전해 잠시 달리면 오산 등산로 들머리 지나, 왼쪽 가게 옆으로 포장길이 나온다. 길은 매우 가파르다. 눈·비가 올 때나, 초보운전자의 경우는 운행을 삼가는 게 좋다.
피아골 고로쇠마을=지리산의 봄을 알리는 것 중 하나가 고로쇠 수액이다.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에서 비롯했다는 고로쇠 물은, 단풍나무과와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활엽수에서 채취한 수액을 말한다.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의 40배나 함유돼 있어 위장병·변비·고혈압 등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수요량이 급증하고 있다. 신선한 고로쇠 수액은 많은 양을 먹어도 배탈이 나거나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 마구잡이 채취로 인한 산림 파괴와 나무 학대 논란으로 시끄러웠지만, 이젠 지역민들이 일정한 채취방식과 지역 제한을 전제로 허가를 받아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전국 각지, 주로 500m 이상 고지대의 나무에서 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채취가 이뤄진다. 경칩(3월6일) 앞뒤로 15일간이 질 좋은 물이 나오는 시기다.
지리산 남서쪽 자락의 피아골도 고로쇠 물이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골짜기다. 작물의 하나였던 피를 많이 재배하던 곳이라는 뜻의 ‘피밭골’에서 유래한 피아골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 피아골 마지막 마을인 직전마을 25가구 주민들은 해마다 봄을 앞두고 고로쇠 물 채취로 바빠진다.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다.
왜정 때부터 50여년간 고로쇠 수액 채취를 해 왔다는 주민 강만석(70)씨가 말했다. “옛날엔 두어 말씩 받아 구례장에 내놔도 찾는 사람 하나 읎었다니께에. 요즘엔 하루 30말씩 나와도 물량이 딸려부러어.”
고로쇠 수액은 밤에 추웠다가 낮에 따뜻해지면서 바람이 없는 날 많이 나온다. 나무 밑동(지면에서 1m 이하)에 드릴로 지름 0.6, 깊이 5㎝의 구멍을 1~3개 뚫고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투명한 호스를 끼워 비닐봉투를 매달아 두고 물을 받는다. 채취가 다 끝난 뒤엔 균의 침입을 막고 구멍을 복원시키는 ‘유합촉진제’를 발라 줘야 한다.
강씨는 “어린 나무보다는 오래된 나무에서 채취한 물이 진하고 당도가 높다”며 “피아골 주변엔 100년 이상된 고목들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 2월3일부터 채취를 시작했다. 작업은 3월20일께까지 이어진다. 고로쇠 물은 상온에서 2~3일, 냉장고에선 한달 가량 보관하며 마실 수 있다.
구례/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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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닭, 고로쇠 물에 몸을 담그사
금강산도 식후경!
고로쇠 토종닭백숙과 고로쇠 영양솥밥=고로쇠 물 생산지 주변 식당들에선 최근 들어 고로쇠 물을 이용한 요리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지리산 자락 천년고찰 화엄사 앞 한화리조트의 식당 ‘노고단’에서 고로쇠 토종닭 백숙과 고로쇠 영양 솥밥 등을 맛볼 수 있다. 고로쇠 물에 닭을 삶으면 육질이 연해지고 단맛이 한결 높아진다고 한다. 토종닭 백숙(1마리 4인분)이 3만9000원, 잣·밤·대추·은행 등을 넣어 고로쇠 물로 지은 영양 솥밥이 5000원. 고로쇠 물에 재어 양념한 갈비구이도 있다. 리조트에선 피아골 등 주변 마을 고로쇠작목반으로부터 공급받아 선별한 고로쇠 물을 판매한다. 9ℓ짜리 2만8000원, 18ℓ 5만5000원. (061)782-2171. 고로쇠 물을 생산하는 마을의 민박집 들에서도 예약을 받아 닭백숙 등을 내놓는다.
한방 한우 암소갈비와 생등심=화엄사 들머리 ‘이시돌’은 한방 한우 갈비로 이름난 식당이다.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60여년 된 전통한옥 안채에서 질좋은 한우 갈비와 곁들여지는 맛깔스런 남도 밑반찬, 산나물들을 즐길 수 있다. 구례의 한 목장을 통해 공급받는 한우 암소 갈비를 백복령·황기·당귀 등 13가지 약초를 달인 물로 숙성시켜 내놓는게 특징이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인 주인 염대수씨에 따르면 갈비를 뜬 뒤 세차례 숙성을 시킨다. 먼저 적포도주와 매실 원액으로 숙성시키고, 한약 달인 물로 2차 숙성, 3차로 양념에 재어 또한번 숙성시킨다. 육질이 부드럽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한우 생등심과 생갈비도 맛볼 수 있는데, 2~3일 전에 주문받은 뒤 그 양만큼만 가져와 식탁에 올린다. 행랑채에선 야생녹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마련돼 있다. 별채에 전시한, 100년 전 조선시대 생활상을 촬영(내셔널지오그래픽)한 희귀 사진 70여점도 볼거리다. (061)782-4015.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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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수도권에서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대전으로 간 뒤 대전~통영 고속도로 타고 함양에서 88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지리산 쪽으로 간다. 남원나들목에서 나와 19번 국도 타고 구례로 간다. 구례읍 거리엔 화엄사(한화리조트), 연곡사(피아골), 사성암(문척) 등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지리산 자락의 천년고찰들과 함께 조선시대 고가옥 운조루, 소설 ‘토지’의 최참판 댁을 본떠 지은 하동의 평사리 민속마을, 평사리 뒷산의 옛 성터인 고소성 등도 둘러볼 만하다. 지리산 자락 관광지 주변에 호텔·모텔 들이 즐비하다. 피아골 고로쇠작목반 (061)783-0050.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피아골 주민 강만석씨가 호스를 비닐주머니에 연결하기 앞서 흘러나오는 고로쇠 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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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