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노인
최 재 우
지난 8월초 어느 날, 더위를 피해 동해로 갔다. 연일 더위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몇 십년만에 찾아온 더위는 사람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고 있다. 푹푹 찌는 열기에 사람들은 줄줄 흘러내리는 녹초가 되어 한 여름을 나고 있었다. 나는 청량(淸凉)한 바다가 있는 외딴 섬, 울릉도와 독도로 떠나 더위를 식히고 싶었다.
배가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뱃전에 기대어 점점 멀어지는 땅을 바라본다. 틀에 박힌 삶의 굴레를 벗고, 바삐 살아온 신발의 끈을 풀고 있었다. 휘 둘러보아도 나를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에 마음이 홀가분하다. 흔히 인생을 바다를 항하는 배와 같다고 비유한다. 고고성(呱呱聲)의 첫 울음을 토하는 갓난아이처럼, 뱃고동을 우렁차게 울리며 배가 모항(母港)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 배는 어떤 풍파를 견뎌내며, 어느 낮선 곳으로 항해하여 나갈 것인가. 인생은 파란과 곡절이 많은 삶의 바다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뱃길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생의 바다에 최재우라는 배는 지금 어드메쯤 항해하고 있는 걸까.
항구를 떠난 지 한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검은 바다가 일렁거린다. 바다가 아가리를 열고 내가 탄 배를 집어삼킬 태세다. 바로 눈앞에서 시커먼 바다가 희뿌연 뱃살을 보이는가 싶더니 배 난간을 후려치며 고꾸라지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바다는 차곰 차곰한 포말이 되어 바람에 날리운다. 바다 속으로 쑤셔 박혔던 배가 가까스로 턱주가리를 들고 넘어진 바다 등을 타고 다시 솟구쳐 오르고 있다. 그러기를 한동안. 속이 울렁거리고 어질어질하며 구역질이 난다. 뱃길이 힘들다.
내 삶에도 저리 검푸른 파도가 덮쳐올 때가 있었다. 고리타분한 세습의 굴레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놓아주어야하는 쓰라림이 있었다. 며칠 밤을 저 성난 파도처럼 울어야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잊히지 않는 고통을 맥주병으로 달래면서 잠을 청하였다. 지금에 돌아보니, 그것은 내 젊은 시절의 슬픈 낭만이었다. 짓무르고 피멍 맺힌 발로 천리 길을 걷고, 천길 하늘에서 돌덩이처럼 뛰어내려야만 하는 두려움이 거듭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내 풋풋한 젊음의 싱그런 패기였다.
긴 항해 끝에 도달한 섬에는 성인(聖人)이 오르는 산도 있었고, 공룡이 뛰놀던 분지도 있었다. 파도가 드나들며 파놓은 동굴이 벼랑 중턱에 걸려 있었다. 구경거리와 별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떠난 배는 언젠가는 항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내게도 해 뜨는 바다처럼 희망으로 용솟음치는 청년의 때가 있었다. 폭풍우로 뒤집히는 바다 같은 반항과 열정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저 노을 지는 바다처럼 잔잔한 안일(安逸)을 추구하면서 노년의 때를 살고 있다. 아슴스레 바다 운무 속으로 거뭇거뭇한 섬이 보이는 듯하다. 귀항(歸港)을 알리는 뱃고동소리가 잔잔하게 바다 위로 흩어진다. 나는 노년의 가을을 살아가고 있는 게다. 이 배처럼, 나의 항해도 얼마쯤 뒤에는 끝날 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부인도 없이 혼자 사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였다. 노인이 낡은 조각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 그러다가 ‘일찍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정말 무섭게 큰 고기’를 만난다. 망망한 바다에서 아무도 없는 고독한 바다에서 수십 미터 깊이에서 걸린 엄청난 고기와 사투를 벌인다. ‘그것도 혼자서 맞붙어 싸웠다.’ 캄캄한 밤바다, 배고픔, 외로움의 고통을 겪어내고, 산티아고 노인은 드디어 6m가 넘고, 무게도 700kg이상 나가는 청새치를 잡아 올린다. 배보다 더 큰 고기였다. 잡아 올린 청새치를 배 난간에 동여매고 항구로 돌아오는 항로에서 노인은 상어떼를 만난다. 피에 굶주린 상어떼와의 싸움에서 노인은 돛대를 부러뜨리고, 칼이 두 동강 나는 혈투를 벌리면서 청새치를 지키고자 하였다. ‘바다처럼 푸르고 맑은 눈’을 가진 노인이 독백(獨白)을 한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패배할 수는 없어.’ ‘자 이제부터다. 여태까지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지. 더 어려운 일이 닥쳐올 거야.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다. 끝까지 싸우는 거다.’
상어떼에게 살점을 모두 빼앗기고 거대한 뼈다귀만 뱃전에 매단 채 노인은 항구로 돌아왔다. 모든 걸 잃었다. 언덕에 있는 그의 오두막집에 도착하기까지 다섯 번이나 주저앉아서 쉬어야하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몸은 비록 찌들었지만, 비린내 나는 항구에서 가격을 흥정하면서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노인은 아니었다. 노인은 포오드 자동차 스프링 조각으로 만들, 부러지지 않을 창을 이미 구상(構想)하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도전 앞에 당당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산티아고는 노년에 접어든 내게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희망과 투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더위를 피해 동해바다로 떠났던 내가 낚은 가장 큰 고기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인과 바다’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사자가 어둠을 뚫고 길고 노란색 해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첫댓글 감동입니다.
선생님은 여행을 하시면서마음 치유를 하시네요 멋지네요
"내 삶에도 저리 검푸른 파도가 덮쳐올 때가 있었다. 고리타분한 세습의 굴레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놓아주어야하는 쓰라림이 있었다. 며칠 밤을 저 성난 파도처럼 울어야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잊히지 않는 고통을 맥주병으로 달래면서 잠을 청하였다. 지금에 돌아보니, 그것은 내 젊은 시절의 슬픈 낭만이었다. 짓무르고 피멍 맺힌 발로 천리 길을 걷고, 천길 하늘에서 돌덩이처럼 뛰어내려야만 하는 두려움이 거듭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내 풋풋한 젊음의 싱그런 패기였다."
최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젊었을때의 패기가 넘쳐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