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에서
공광복
심드렁한 내 손 붙잡고 서귀포 해안으로 가
정방폭포 새끼발가락 옆에 선다
양손에 초록 수술 들고 응원하는 소나무들 사이로
물이 두 팔 벌리고 번지 점프하듯 뛰어내린다
나는 나를 들어 슬그머니 절벽 위에 올려놓는다
다이빙 타워보다 높은 데서 허리 구부리는데
발가락이 자꾸만 뒤꿈치 쪽으로 돌아선다, 바닥이 바위투성이여서
민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바닷물이 되는 것도 그렇고
내 생애 가장 큰 탄성 내뿜는다, 비명처럼
땅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장대비 환호 같은
숱한 물의 발을 등으로 받아내던 바위
엄마 손바닥이 생각났는지 울음보 터지고
사방에 물보라가 흥건하다, 나는 그중에 물방울 하나
바닥 떨어지는 물의 속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잃은 것이나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여서
속력 잃은 물이 없는 것처럼 투명하다
딱히 갈 곳 없는 빈 몸 하나 해류에 업힌다
언젠가 태풍을 만나 마음 시끄러운 날 있겠지만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곤두박질치는 폭포수 한 가닥이 되어
짜릿한 속도에 온몸 감전시켜 보는 거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해안 폭포
사다리병창길
등산로가 사다리 아슬하게 걸어 놓고
거북이와 원숭이만 오를 수 있다고 해서
거북이에 손을 들고 네발로 기어가는데
사다리병창*이 뒤에서 ‘X’자 긋는 것인지
센바람이 도깨비처럼 나타나 길 흔들고
벼랑길은 구름다리처럼 출렁거려서
나는 난간 잡고 가는 원숭이가 되고
비안개가 무표정으로 통행금지 안내판 내걸고
후드득, 빗소리가 포기할 이유 설명하는데
원숭이는 한 방울도 이해할 수 없고
안갯속 벼랑길 지나갈 지팡이도 없어서
사마귀가 되기로 한다
사마귀가 앞다리 창처럼 치켜올리고
길 등판에 발가락 꾹꾹 박으며 오른다
판이 뒤집히고
고개 수그리는 벼랑길
발아래 있다
* 치악산에 있는 벼랑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