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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책 정리를 하다가/윤일현
은하수 추천 0 조회 53 19.01.24 18: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책 정리를 하다가/윤일현

 

누렇게 뜬 시집에서 나온

빛바랜 흑백 명함판 사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어지러워 서가에 몸을 기댄다.

 

질풍노도의 시대를

좌충우돌하며 돌아다녔건만.

세월은 모든 것을 탈색하여

내 젊은 날들 결국은

5x7cm의 작은 평면 속

흑과 백, 명과 암으로 정리되는구나.

 

세상의 모든 색채 흑백 속에 가둘 수 있지만

그 색채들 또한 흑백에서 갈라져 나옴을.

밝음 끝에는 어둠이 찾아오고

어둠 다하면 새 빛이 돋아남을,

명과 백, 암과 흑만으로는

혁명도 사랑도 형상을 가질 수 없고

흑과 백, 명과 암은 서로 기대고 있음을,

그때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흑백의 풍경 밖으로 나와 보니

지나온 길 아직 먼지 자욱하고

가야할 길 안개 속에 아득하다

강산이 몇 번 바뀌었건만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

여전히 그대로 부여잡고 있는

앙상한 내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새벽별 하나 가슴에 안겨주고

가장 따뜻한 시로 나를 덮어준 후

그 시집 다시 서가에 고이 꽂아주며

불쑥 찾아온 현기증을 다스린다.

 

- 계간 시와반시2015년 겨울

.......................................


윤일현 시인은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육컨설턴트이다. 대구시인협회장을 맡고 있지만 시인으로서 보다는 입시 전문가로 더욱 유명한 인사다. 요즘 막바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SKY 캐슬’의 김주영에 비견될 수 있겠으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신문에 교육문화칼럼을 연재하고, 쇄도하는 강연요청에 일일이 응하면서도 그는 늘 인성과 품성에 바탕을 둔 학력신장 방법을 제시해왔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구슬을 취득하고, 그 구슬로 잘 꿰어야 보배가 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믿음이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 설파가 학부모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게 된 믿음에는 경북대 교수로 있는 부인과의 사이 두 자녀가 서울대 의대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집에는 수천 권의 책으로 빼곡하고 사무실 등에도 온 사방 책으로 도배되어있다. 지금도 바쁜 와중에서 적어도 하루 두 시간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삶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며 아마 자녀들도 그 분위기를 이어 받았으리라. 그가 펴낸 교육지침서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를 일반적인 용도와는 무관하게 읽은 적이 있다. 지역 신문에 연재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칼럼을 묶은 이 책은 출간 이래 스테디셀러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중국 출판사와도 계약을 맺고 출판된 바 있다.


풍부한 현장경험과 해박한 인문 지식이 결합하여 기존의 자녀 교육서와는 판이한 미래지향적인 자녀 교육법이라 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이 삶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꿰는 기술'만 가르치려 들지만 그는 구슬이 없는데 대체 뭘 꿴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우선 구슬부터 모아라. 모으고 또 모아서 방에 구슬이 차고 넘쳐서 어지러우면 자연스럽게 정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유별난 방법, 돈 쏟아 붓는 방식, 아이를 몰아붙이는 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즐겁게 아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아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윤일현 선생만큼 한심해하고 비웃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여유를 갖고 자식을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서이며 가족계발서라 해도 좋겠다. ‘즐겨야 성적이 오른다’ ‘집중과 몰입의 기쁨’ ‘자기 주도적 습관 기르기‘ ‘창조적 아웃사이더’ 등 소제목만으로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짐작된다. “아웃사이더들은 체제 안의 순응자인 인사이더들이 보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지배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롱했다. 능동적, 창조적 아웃사이더들은 인간성의 폭과 깊이를 넓혔고 인간이 지향해야할 가치와 이상향을 창조했다.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사람. 창조적 아웃사이더만이 자신과 주변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 ‘창조적 아웃사이더’의 일부이다.


“항상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모든 일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간섭하는 헬리콥터형 부모, 더 나아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감시카메라형 부모, 부모가 모든 일의 방향을 결정해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불도저형이나 폭격기형 부모, 자녀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만 대주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는 인공위성형 부모가 돼선 안 된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항상 자녀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도록 도와주며 자주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컨설턴트형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단언한다. “정보는 왜곡되기 쉽다. 엄마의 정보력 대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하고 실력 있는 학생이 손해 보는 교육제도는 없다.” “부모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평소 그의 지론들이다.


그는 가끔 책 정리를 하다가 ‘현기증’을 앓으면서도 ‘5x7cm의 작은 평면 속’에서의 즐거움을 포기한 적이 없다. ‘독서의 즐거움 감동을 맛보지 못한 아이에게 논리와 작문을 가르치는 건 일종의 죄악’이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민주화운동으로 대구·경북지역에서 첫 해직교사가 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지금도 스스로를 ‘실패한 교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찰하는, 늘 깨어있기를 갈망하는, 맑은 영혼을 지닌 벌거벗은 교육자’란 평가도 따라다닌다. ‘가장 영향력 있고 열정적인 공교육의 옹호자’이면서 항상 꿈을 꾸고 그 꿈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꿈 가운데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면서 아무나 쓸 수 없는 시’도 포함되어 있다. 시에서 ‘흑과 백, 명과 암’에 관한 사유도 깊은 성찰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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