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모텔의 이른 아침
원주의 터미널 부근 한 모텔의 새벽
이른 잠에서 깨어나 낯선 풍경들을 바라다 본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집이라고 우겨도 낯선 것은 낯선 것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방음이 잘 되어 외부로부터의 어떤 소리도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창문을 연다. 오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우뚝선 건물, 어쩌면 저 벽너머에도
나처럼 일찍 깨어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한 사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상상일뿐, 그와 정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꿈도 없이 잠들어 있는 한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쓰잘데 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나, 나의 생각은 어디로 뻗어가는가?
문득 떠오르는 글 한 편이 보들레르의 <창문>이라는 글이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 밖에서 바라보는 자는
닫혀 진 창문을 보는 자가 발견하는 풍부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없다.
촛불에 의해 밝혀진 창문만큼 깊고 신비하며 풍요하며 어둡고 동시에 빛나는 것은 없다.
햇빛 밑에서 보는 것은 유리 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항상 덜 흥미로운 법,
혹은 검은, 혹은 반짝이는 이 구벙 속에서 삶이 숨쉬고, 삶이 꿈꾸며, 삶이 괴로워한다.
지붕들의 물결 너머로 나는 한 노숙한,
벌써 주름살투성이의 항상 무엇인가에 몸을 숙이고 있는 가난한 여인을 본다.
그녀의 얼굴, 그녀의 의복, 그녀의 몸짓, 아니 거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도 나
는 이 여인의 역사를, 아니 차라리 이 여인의 전설을 엮는다.
그리고 때로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자신에게 얘기해준다.
” 만일 그가 여인이 아니고 늙은 가난한 남자였다고 해도
나는 똑 같이 쉽게 그의 전설을 엮을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아닌 타자들 속에서 살았고
괴로워했다는 사실에 자랑을 느끼며 자리에 눕는다.
아마 당신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고 당신은 확신하는가? ’
그러나 내 밖에 있는 현실이 뭐 그리 중요한가,
만일 그 현실이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고 내가 존재하며
내가 누구인가를 느끼게끔 도와주기만 한다면?“
열린 창, 육중하게 모든 비밀을 감추고 있는 하얀 벽,
낯설기도 하고 낯익기도 한 모텔의 사물들,
입지도 않은 채 비닐 포장에 싸서 단정히 개어 있는 잠옷,
내 옆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종이컵, 헝크러진 침대,
이런 것들이 닫힌 방의 유일한 친구들이다.
길손이 머물던 주막이 여인숙이 되고,
여관이 되고,
모텔과 호텔이 되는 과정에서 나그네들의 생각은
또 어떤 형태로 바뀌어 갔는지,
그것도 심히 궁금한 일이다.
지금의 내 생각처럼,
자, 지금부터 훌훌 생각을 털고 길에 나설 준비를 하자,
하면서도 그냥 꿈도 없이 이곳 저곳을 바라보는 나,
을미년 유월 열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