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도 날씨가 유난히 덥다. 더운 날에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도구가 지금은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대표적이지만,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부채’가 거의 유일했다. ‘부채’의 어원에 대해서는 인터넷 사이트의 곳곳에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을 가진 ‘부’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을 가진 ‘채’로 분석하여서 ‘부채’가 ‘부- + 채’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을 가진 ‘부다’라는 동사가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니 그 설명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오늘날의 ‘부채’가 어휘로서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2세기 문헌이다. 송나라 사람인 ‘손목’(孫穆)이 1103년과 1104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계림유사(鷄林類事)에 ‘扇曰孛采’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이 최초다. 그리고 1382년에 편찬된 중국 문헌인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에는 ‘扇 卜冊’로 그 음을 적어 놓았다. 15세기 문헌에 이들이 ‘부체’로 등장하기 때문에, 모두 ‘부체’로 재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부채’는 15세기에 ‘부체’와 ‘부채’로 등장한다.
기른 믈로 곳 굼긔 처디오 부체로 부츠라 <구급방언해(1466년),상,10b> 녀르미면 벼개와 돗과 부체 븟고 겨으리면 제 모로 니브를 시 더니 <삼강행실도(1471년)효,9a> 녀름이어든 벼개며 돗글 부체질여 게 고 <번역소학(1517년)9,28b> 나 처 부채 호고 구루믄 라 오시 이디 몯놋다 <1481두시초25,024a>
15세기 문헌에 이처럼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현상을 국어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부채’에서 ‘부체’로, 또는 ‘부체’에서 ‘부채’로 변화하였다고 해도, 이 당시에 ‘애’와 ‘에’가 음운론적으로 중화되던 때도 아니고, 또 그 당시에는 ‘애’와 ‘에’가 단모음이 아니라 이중모음을 표기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그 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15세기에는 ‘부체’가 더 많은 빈도수를 보이지만, 이전 시기의 ‘孛采’와 ‘卜冊’에서 제2음절의 소리가 ‘체’가 아니라 ‘채’라고 할 수밖에 없어서, ‘부채’가 먼저 보이다가 15세기에 ‘부체’로 변화하였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그 변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부체’는 ‘바람을 일으키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 ‘붗다’의 어간 ‘붗-’에 도구를 나타내는 접미사 ‘-에’가 결합된 형태로 분석된다. 동사 ‘붗다’는 지금도 ‘부채를 부치다’의 ‘부치다’에 남아 있다. ‘부치다’의 옛날 형태는 ‘붗다’였다.
그 미 로미 미 드트를 부처 사로 봄 업게 <능엄경언해(1461년),88a> 머고면 됴니라 中署야 어즐커든 기른 믈로 곳 굼긔 처디오 부체로 부츠라 <구급방언해(1466년),상,10b> 버텅에 서리딘 버드른 매 부치놋다 <두시언해(1481년)9,20b>
접미사 ‘-에’는 어떤 행동에 관련된 물건 이름이나 그 행동의 수단이 되는 도구의 의미를 갖는다. 원래 파생접미사 ‘-개’의 이형태로서 ‘-게, -애, -에’가 있는데, 앞에 오는 어기의 모음이 양성일 때에는 ‘-개’(예: 날개)가, 그리고 음성일 때에는 ‘-게’(예: 집게)가 쓰인다. 그리고 ‘ㄹ’이나 하향이중모음(즉 /j/)일 때 양성모음이면 ‘-애’(예: 날애)가, 음성모음이면 ‘-에’(예: 울에)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붗-’에 ‘-에’가 붙은 것은 예외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합은 ‘붗에’(즉 표기상으로는 ‘부체’가 되지 말고 ‘붗게’(표기상으로는 ‘붓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채’를 ‘붗- + 채(鞭)’로 분석하는 학자도 있다. 즉 ‘바람이 일다’의 ‘붗다’의 어간 ‘붗’에 ‘북, 장구, 팽이 등을 치는 물건’인 ‘채’가 결합된 합성어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라면 ‘붗- + 채’가 되어 ‘붓채’나 ‘붇채’로 표기가 되어야지, ‘부채’로 표기되어서는 안된다. ‘붓채’나 ‘붇채’가 문헌상에 등장하지 않음은 이 설명에도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보다 더 합리적인 해석은 ‘붗- + -에’로 해석하고 ‘-에’가 어기가 하향이중모음이거나 ㄹ 음이 아닌 곳에서도 예외적으로 쓰임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翼) 대신에 ‘개’ 등도 쓰이며, ‘벼다’의 어간 ‘벼-’에 접미사 ‘개’가 붙으면 ‘벼에’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벼개’다. 따라서 ‘붗-’에 접미사 ‘-에’와 ‘-애’가 모음조화의 규칙을 깨고 ‘부체’와 ‘부채’로 나타난다고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치 ‘벼게’가 보이지 않고 ‘벼개’만 나타나는 것처럼. 15세기에 ‘부체’와 ‘부채’로 동시에 쓰이던 이 어형은 19세기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17세기까지는 ‘부체’가 우세하게 나타나다가, 18세기에는 ‘부체’와 ‘부채’가 비슷한 빈도를 보이고 19세기에 와서 ‘부채’(표기상으로는 ‘부’ 포함)가 훤씬 우세해져서 오늘날에 이르른 것이다.
뎌 도도야 볼딘댄 부체 고대 두르면 미 대 나고 <칠대만법(1569년),7a> 히 니 헌 부체 나맷고 겨으리 더우니 <두시언해중간본(1613년)3,6a> 리채 가져다가 다 고 부체 가져다가 날을 주고려 <박통사언해(1677년),중,55b> 부체질다(搧搧) <동문유해(1748년)하,13b> 여이면 벼개와 자리에 부딜고 <오륜행실도(1797년),효,15a> 귀졸이 쇠 부로 얼골을 칠 <태상감응편도설언해(1852년)2,65b> 줄의 걸고 부질 야 <규합총서(1869년),24b> 부(扇) <한불자전(1880년),350> 부(扇) <광재물보(19세기),器用,2b> 붓채(箑扇) <국한회어(1895년),155> 부채로 파리를 는다 <女理髮師(1923년),375> 형식은 한참이나 화를 못 이긔 드시 함부로 부채질을 더니,<무정(1918년),121> 비스듬이 누워서 부채질을 슬슬하며 매암이 소리를 서늘하게 듣고 있었다. <1933고향(1933년),4> 연지찍고 곤지찍고 얼골을 진주부채로 가리워 주엇다. 부채를 떼고 큰절을 시키어서 <임거정(1939년),485>
이러한 모습은 한자 ‘선(扇)’의 석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체 션 <훈몽자회(1527년)中,8a> 부체 션 <광주천자문(1575년)35b> 부체 선 <대동급기념문고본천자문(1575년),35b> 부체 선 <백련초해(16세기),9b> 부체 션 <신증유합(1576년)上,25a> 부체 션 <내각문고본석봉천자문(1583년),35b> 부체 션 <이해룡천자문(1601년),35b> 부쳬 션 <갑술중간본석봉천자문(1652년),35b> 부체 션 <경인중보본석봉천자문(1650년),35b> 부채 션 <칠장사판천자문(1661년),27a> 부체 션 <칠장사판유합(1664년),15b> 부채 션 <영장사판유합(1700년),15b> 부체 션 <신증유합(중간본,1711년)上,25a> 부체 션 <송광사판유합(1730년),15b> 부체 션 <송광사판천자문(1730년),27a> 부채 션, 문 션, 부츨 션 <주해천자문초간본(1752년),35b> 부채 션 <궁내청서릉부본천자문(18세기),27a> 부체 션 <왜어유해(18세기말),13a> 부채 션, 문 션, 부츨 션 <주해천자문중간본(1804년),35b> 부채 션 <이무실천자문3판(1857년),27a> 부 션 <행곡판천자문(1862년),27a> 부채 션 <정몽유어(1888년),18a> 부 션 <서내신간판천자문(1898년),27a> 부 션 <무신간판본유합(1848년),12b> 부 션 <홍수동판천자문(1858년),26b> 부 션 <신정천자문(1908년),32> 부채 선 <아학편(1908년),26b> 부채 션 <언문(1909년),16> 부채 션, 부채질할 션 <부별천자문(1913년),15a> 붓 션, 분직 션, 부츨 션 <재전당서포판천자문(1913년),27a> 부 션 <몽학이천자(1914년),48a> 붓 션 <정본천자문(1915년),27a> 부 션 <삼체천자문(1916년),27a> 붓채 션 <도상천자문(1917년),22a> 부 션 <도형천자문(1922년),31b>
오늘날의 ‘부채’는 ‘부치다’(바람을 일으키다)의 뜻을 가진 ‘붗다’의 어간 ‘붗-’에 명사형 접미사인 ‘-애’와 ‘-에’가 붙어서 ‘부체’ 또는 ‘부채’로 쓰이다가 ‘부채’가 우세하게 쓰이면서 오늘날의 ‘부채’로 굳어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