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기행 (1)
아름다운 황실정원, 피서산장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에 대해 기대와 걱정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우리 일행 29명은 여행사 가이드와 인솔자를 따라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집합하여 출항 절차를 마치고 훼리호에 승선했다.
이 배는 7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에서 4층까지는 화물칸이고, 5층은 식당과 면세 판매점이 있다. 그 위층이 선실이라 나는 6층에 자리 잡았다. 선실마다 침대 2개가 양쪽 상하에 나누어져 4명이 사용할 수 있는데 TV와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내 자리는 아래쪽인데 내 옆에는 나이를 무색게 하는 세련된 80대 어르신이 있었고, 2층에는 가이드와 인솔자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승객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하는 본부석 같았다. 또한, 내부 공간이 협소한지라 조심한다 해도 2층 침대에 몇 번 머리를 부딪치자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출항시간은 오후 7시였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객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화물을 싣느라고 12시가 되어야 출항을 한다지 않는가? 그러자 여기저기서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를 하자 “영화 군함도”를 상영해주는 것으로 불편한 심기를 잠재웠다. 2시간여 동안 상영된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과 황성민, 소지섭, 송중기 등이 출현했다. 이 영화는 1945년 일제강점기 때 강제노역을 당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려낸 작품이다. 잔혹한 역사가 담긴 내용이라서인지 상영이 끝나 밖으로 나오자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시원한 바람을 쐬려고 7층 갑판 위로 올라갔으나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그냥 내려왔다. 선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 당시 얼마나 처절한 강제노동으로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조선 노동자에겐 귀신 섬, 감옥 섬으로 불리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을 바로 입을 수 없다. 이렇듯 배가 5시간이나 늦게 출항하더니 다음 날 저녁 7시에 진황도에 입항해야하는데 11시로 늦어졌다. 입국을 하려면 출입국관리 직원들이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둠이 바다를 삼켜버린 그 시간에 무슨 수로 출입국사무소의 허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할 수 없이 선실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새벽 6시 반이 되어서야 배에서 내렸다. 그런데도 진황도 앞바다는 우리를 반기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한 파도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같이 대기하고 있던 전용 버스를 타고 30여 분간 이동하여 7시가 넘어서야 입국심사를 마치고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는 30세 여자인데 한국에서 몽골사람과 결혼하여 살다가 작년부터 이곳 내몽골에 와서 산다고 한다. 이곳에 살면서 한 달간 병원 생활을 한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은 듣는 순간 이국땅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이 짠했는데 금세 명랑하고 활달한 음성으로 이것저것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니까 측은하던 마음이 힘내서 열심히 살라고 응원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중국과 한국의 시차는 중국이 1시간 늦다. 아침 9시 반(한국시각 10시 반)이 되어서야 우리는 중국 음식으로 출출한 속을 달래고 승덕에 있는 피서산장을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몽골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몽골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나라로서 고비사막을 경계로 하여 고비사막 북쪽의 외몽골(현재의 몽골국), 고비사막 남쪽의 내몽골(현재의 내몽골자치구)로 나뉜다. 우리가 보통 몽골이라고 하면 독립국 몽골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 여행하는 내몽골은 중국 내에 있으며 중국의 세 번째로 큰 자치주의다. 면적은 1,183,000㎢로 남한의 11배 정도이며 인구는 2018년 추정치로 한족이 2,100만 명이고 500만 명이 몽골족으로 17% 정도이며 나머지는 다우르족, 만주족, 조선족, 러시아인 등이다. 한편 외몽골 또는 몽골국은 1,564,116㎢이고, 인구는 340만 명 정도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 아침 먹은 게 탈이 났는지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약이야 준비해갔지만 달리는 버스 짐칸에 있어서 가이드에게 혹시 약이 있느냐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일행 중 홍 지천 선생님이 고맙게도 정로환을 주시길래 3알을 먹었다. 약효가 좋았던지 순식간에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졌다. 그날 그분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피서산장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피서산장(避暑山莊)은 이궁(離宮)이라고 불리며 ‘중국 최대 규모의 황실 정원’으로 중국 허베이성,청더(承德市)에 있다. 우리에게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중국에서는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로 피서를 즐기고 정무를 보는 장소로 유명한곳이다.
이곳은 120여 동의 건물로 되어있으며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170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무려 8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조성한 넓이는 564만m²로 한국의 서울대공원넒이의 3배 정도이며 주위의 담장이 10km나 된다.
건물은 티베트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었으며 별궁과 정자, 인공호수, 인공섬, 정원 등으로 조성되었다. 드넓은 호수와 탁 트인 초록의 정원이 시원스럽다. 바위에 커다랗게 ‘避暑山莊’이라 쓰인 곳에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고 황제의 집무실, 잠자는 곳 등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위풍당당했던 그 날의 영광은 간데없고 지금은 퇴색한 목조건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때 당시 답답한 정치를 벗어나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을 황제를 상상하며 나도 황제인양 거드름을 피우며 산책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이제 우리가 묵을 호텔이 있는 적봉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현지가이드가 사는 도시로 간판에 중국어와 몽골어가 같이 쓰여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건물들은 거의 다 헐려져 있고 현대식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깔끔한 새 건물들이 보기 좋았다. 공기도 맑고 바람도 청량하게 느껴졌다. 가이드는 날씨가 건조하니까 밤에 잘 때 수건을 적셔놓고 자라며 자상하고 꼼꼼하게 챙겨주니까 마음이 편안했다.
내일은 초원 한가운데 펼쳐져 있는 사막과 초원, 호수가 갖춰진 옥룡사호로 간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오래간만에 널찍한 호텔에서 더운물로 말끔히 씻고 났더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2018.5.23.)
몽고 (몽고족(Mongghol), 蒙古)
몽고고원을 중심으로 만주와 중국 북부 등의 지역에 걸쳐 거주하던 유목민족. | 개설 몽고는 넓은 의미로는 황색 인종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국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몽골(Mongol)로 호칭한다.
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ㅡ
첫댓글 내가 여행하듯 실감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