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름에 올라 노랑에 놀라 | |
제주도의 봄은 온통 노란색 세상이다. 성산포에서 유채꽃의 꽃망울을 터뜨린 봄 기운은 섭지코지를 넘어서 개나리와 만나 제주도의 들녘을 노랑으로 채색한다. 그러나 제주도의 진짜 봄은 복수초로부터 싹튼다. 이른 봄 채 녹지 않은 눈 속에서 노란 꽃망울을 내밀어 그 온기로 언 땅을 녹이며 봄기운을 지피는 얼음새꽃이야말로 진정한 봄의 전령이다. 물찻오름 산꼭대기 호수는 화산섬의 눈동자
이성복 시인은 사진에세이집 <오름 가는 길>에서 “아름다움이란 본래 자연 속에 숨어있던 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며, 본질적으로 자연에 뿌리 두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없다고 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름다움은 자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고 제주도의 오름을 예찬했다.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에 자리잡은 물찻오름(약717m)과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697m)을 오르는 오름 산행은 복수초를 비롯한 야생화의 잔치를 지켜볼 수 있는 좋은 여행길이다. 특히 물찻오름(검은오름)은 제주도의 368개 오름 가운데 백록담과 물장오리, 물영아리, 금오름, 동수악, 사라오름과 함께 드물게 굼부리(분화구)에 넓은 산정호수를 품고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난 제1횡단도로(옛 5.16도로)인 11번 국도를 달려 물찻오름을 찾았다. 산굼부리로 접어드는 갈림길에서 900m쯤 나아가자 왼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임도가 보였다. 비포장과 시멘트 포장이 번갈아 이어진 한적한 숲길을 따라 4·5킬로미터쯤 좁혀가자 물찻오름 입구가 나타났다.
물찻오름을 오르는 길은 산뽕나무와 떼죽나무, 좀작살나무, 산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꽝꽝나무 등이 어루어져 마치 산림욕장에 들어온 듯했다. 좁다란 등산길 좌우에는 복수초와 천금성, 새우난, 별꽃 등 야생화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20분쯤 걸려 산 정상 부근에 이르자 탐방객들이 오며가며 하나씩 돌덩이를 보태 쌓아놓은 돌무더기와 기원탑들이 반겼다. 정상에 오르자 발 아래 커다란 원을 그린 잔잔한 산정호수가 쪽빛 하늘 아래 봄볕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김송(38·경기도 일산시 송정동)씨는 “제주도에 몇번 와보았지만 이렇게 오름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특히 산 위에 호수가 있는 것이 너무 신비롭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릿대 숲을 헤치고 호수로 내려가니 맑은 물 속에 회색 빛 붕어들이 봄맞이 나들이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응달진 골짜기에는 아직 잔설이 얼비친다. 김영훈(46·제주시 화북동)씨는 “예전에는 물찻오름에 붕어가 살지 않았는데 누군가 풀어놓는 바람에 몇해 전부터 낚시꾼들이 몰려들면서 물찻오름의 자연환경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헤치고 있다”고 안타까와했다. 물찻오름을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기원탑에 돌을 얹으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연유산의 보고가 더는 파괴되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본다.
물찻오름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절물오름을 찾아가자 지천으로 피어있는 복수초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나무계단 길을 지나 완만한 길을 걸어 30분 정도 올라가니 주봉인 ‘큰대나’가 반긴다. 말 발굽모양의 분화구가 펼쳐지며, 멀리 동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북쪽으로는 제주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오름과 민오름이 이웃해 있다. 제주도에서 10여년 전부터 오름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 서재철(59)씨는 “오름은 제주도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사후세계가 결합된 의미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에 오름이 없다면 몹시 황량했을 것”이라며 “제주도 여행의 깊은 맛을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올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제주군 구좌읍 일대는 크고 작은 다양한 오름이 집단적으로 봉긋봉긋하게 솟아있어 ‘오름의 왕국’이라고 불린다. 거대한 거미가 버티고 있는 형상의 동검은이오름(거미오름·340m)과 한마리 용이 누워있는 모습을 닮은 용눈이오름(247m) 등은 봄철 유려한 곡선과 울긋불긋한 들꽃의 양탄자를 깔아놓아 오름 등산의 필수코스로 손꼽힌다. 용누리오름은 3차례 화산 폭발로 특이하게 분화구가 3개인데 정상에 오르면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으며, 동검은이오름은 등산입구가 원시림으로 우거져 자연경관이 빼어난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오름 사진찍기 ‘활화산 열정’ 서재철씨 30여년 외길 촬영 “오름을 오르면 오랜 세월이 빚어낸 다양한 화산의 형체와 더불어 제주도민의 오랜 삶의 역사와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민은 오름에서 나서 오름을 일궈 밭을 매고 죽으면 다시 오름에 묻힙니다. 오름은 제주도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영원한 휴식처라고 할 수 있어요.”
“지중해 시칠리아 에트나산의 단성화산이 약 260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제주도는 섬 전체가 특이한 화산 지형으로 단성화산인 오름이 360여개나 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보호할 가치가 충분해요.” 그는 제주도의 오름은 동서쪽으로 산맥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데 한라산의 동부 사면쪽에 가장 많이 분포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90년 창간된 <제민일보>의 사진부장겸 편집부국장 대우로 일하면서 작고한 김종철 전 제주신문 편집국장이 집필한 연재물 ‘오름나그네’의 사진을 14년간 찍어왔다. 그동안 모두 340여개의 오름을 정리해 지난 95년 오름전문 사진집 <바람의 고향 오름>과 지난해 <화산섬의 바람자리 오름>을 냈다. 97년부터는 몇달씩 백두산과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에서 살면서 백두산 야생화 촬영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한라산과 백두산의 야생화 60점을 정리해 ‘한라 백두 야생화의 만남’ 전을 열었으며, 현재 ‘산산진경’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과 한라산의 비경을 전시하고 있다. 그동안 전시회 ‘제주 풍물전’(몽골 순회)과 ‘제주 해녀전’, ‘한라산 노루가족’ 등을 서울과 제주에서 열었으며, ‘제주의 사계’와 ‘한라산에서 백두까지’ 등을 선보였다. 그는 “올해에 한라산과 백두산의 야생화 사진을 정리한 사진집 <우리 산 우리 꽃>과 성산의 비경을 담은 <제주도 성산> 사진집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064)787-311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