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죽일 양키놈의 한민족을 향한 주적행위를
오로지 사실과 진리를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하나하나 시간이 날 때마다 검토해본다.
이는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진술이다
1. 조·미 수호 통상 조약과 '거중조정'의 파
배경: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서구 국가 중 최초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의 제1조에는 *"제3국이 불공평하게 압력을 가할 때(관할을 침해할 때)는 양국이 통지하여 거중조정(Good Offices,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주선)을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종은 이를 믿고 미국이 조선의 주권을 지켜줄 우방이라 기대했습니다
실제 전개: 그러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조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자, 고종은 조약에 의거해 미국의 개입과 거중조정을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를 완전히 외면하고 묵살했습니다.
2.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년)
내용: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밀약을 맺었습니다.
핵심 내용: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일본이 대한제국(조선)의 외교권과 보호국화 조치를 장악하는 것을 사실상 용인하고묵인했습니다.
결과: 이 밀약 직후 열린 포츠머스 조약과 을사늑약 과정에서 미국은 열강 중 가장 먼저 대한제국 공사관을 철수시키고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고종과 대한제국 정부는 헐버트 특사를 밀사로 파견하고 친서를 전달하며 미국의 도움을 호소했으나, 미국은 자국의 태평양 전략(필리핀 확보)과 국제 정세의 실리(일본의 러일전쟁 승리 용인)를 이유로 조선과의 외교적 약약을 저버렸습니다. 이 사건은 구한말 대표적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외교적 배신' 사례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해이그 밀사사건으로 이어지고. 수년간의 약소국의 외로룸과 울분을 호소할 방법을 찿지 못한 이준 열사는 머나먼 이국에서 분사의 길을 선택한다 ....
님들은 양키의 폐륜을 잊었는가?
첫댓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세계 어느 나라던 국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약속같은건 헌신짝 버리듯,,,
특히 양키들의 한반도 내의 크고작은 사고는 거의 끼어든 개 쉐ㄲ들
미국의 행태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지금껏 유지해 온 우리의 스탠스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굳이 서구문화,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로 떼어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금껏 국면마다 미국의 노예로 자처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에게 노예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맞춰주는 사람이 당신곁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수십년을.
시대에 따라 그 노예를 요긴하게 부려먹었고, 지금도 부려먹고 있으며, 앞으로도 입맛대로 부릴 생각인데,
이제 와 노예가 꿈틀댄다면, 당신이라면?
전작권 환수를 두고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의 발언은 기가 막히지만,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 아닐까 싶습니다.
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그래서 자화상이라는 판단을 인식하고 고쳐가는데 움직여보자는 것입니다. 주변에 국짐당을 선두로 양키 빨아대는 집단이 많음을 또한 인식하고 서서히 고치자는 것입니다.진정한 우리의 주적은 어찌보면 양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화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