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재 혼, 64회,
어제 아침의 평온이 그립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눈이 부신 아침었다.
부시시 몸을 일구던 난, 창눈에서 빛나는 햇살보다 인서씨의 밝고 환한 예쁜 미소에서
가슴벅찬 행복을 만끽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우리들은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뜰악을 손을 맞잡고 거닐었다.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을 느꼈을때는 병마 같은 것은 몸에서 기를 못쓴다.
인서씨는 오후에도 건강엔 평상시와 별반 다름없었다.
단지, 이상한 것은, 심통을 부리는 아이처럼 굳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는 것이며,
아파트 뒷 터 휴식처에서 유언 비스므리한 당부의 말들을 했었던게,
마음에 걸렸었다.
사람도 죽음을 예시할 수 있는가,
진짜로 라면, ... 아니 진짜로 상황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그럼, 나는 이 엄청난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잠깐, 실례할께요,"
30분마다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간호사다.
"주무셔도 될거예요,
저희가 수시로 검진하고 간호하고 있으니께요,"
"네, 알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나 수고가 많으신데, ..."
"아네요, 저희가 할 일인데요,"
"암튼, 감사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며 사명감일 것이다.
어제 하루에서도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인서씨를 의사들은 몇시간씩이나 사명감으로
의술을 발휘하여 살려 놓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병들어 죽는다는 것은 명백한 기정사실이다.
누구나 다 죽는다는 논리다.
아버님 임종때는 불효막심 하게도 자리를 지키지도 못했었다.
사업에 실패하여 해외로 돈벌이 하려 떠나 있을 때였다.
연락이 닿을 수도 있었지만, 만사일을 제처놓고 돌아 온다고 해도 장례 이전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아예 연락을 취하지 않은 거였다.
죽움은 마누라에게도 있었고, 형님에게도, 동생에게도, 가차없이 밀어 닥첬다.
어쩌면, 죽움은 흔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번씩 격여야 하는 과정이며 숙명이기에,
그러나, 죽움마다 의미가 달랐었다.
가장 많이 운 사건은, 내가 외국에 있을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을때였다.
연락을 받은것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도 3개월이 지난 후였다.
편지 봉투지에 동봉해 온 사진은 아버님의 장례절차를 찍은 사진이었다.
나는 불효막심한 자식이었다.
임종도 못뵙고 그 恨을 슬어 안고 눈물 흘리면서 몇날 몇일을 지냈다.
어쩌면, 타국의 외로움까지 덧붙인 슬품인지도 모른다.
형님은 교통 사고 였기에, 사건 처리니 뭐니 하다가 그다지 슬품을 느끼지 못했고,
동생은 간암 투병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그 고통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못난 형이었다.
젊은 나이<40대>에서의 요절이 안타까워서 슬펏고,
인간이 극복해야할 한계를 뛰어넘는 그 고통을 지켜보면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울었다.
부부로 맺어지어 자식들을 셋씩이나, 낳아 살았던 아내의 죽움은
그 어떤 죽움보다 더 가슴아픈 슬픔이었다.
그러나, 긴병에 효자없다고, 8년씩이나 병고<식물인간>를 수발하다 보니,
살림살이가 거덜이 났었고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내의 죽움은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었다.
한참 imf 때라서 슬품보담도, 남은 식구가 살아갈일이 더 걱정되는 시기였다.
서울 시립공원묘지에 시신을 안장하고서야, 극심한 슬픔에 빠져들었다.
장지에 참여했던 친척들 모두를 돌려 보내고,
아내의 묘지를 안으며 통곡을 했다.
해가 떨어지고 초봄의 쌀쌀한 냉기가 온 몸을 엄습해옴에 극한 추위를 느끼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하산을 했다.
주위에서 있었던 죽움은 언제나 외롭고 서러운 시간으로 흘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건 ... 정말 슬픈일이다.
밤사이 간호사들은 쉬임없이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기위해 체온·맥박·혈압을 측정하고
링게르주사도 점검하고 교체한다.
"간호사님, 환자의 상태가 양효합니까?"
"네, 대단히 양효합니다.
기적이예요,
어제는 운명 하시는줄 알았어요,"
ㅡ"지금부터는 환자의 의지력입니다. 중병 환자는 살고자 하는 의지력이 가장 중요합니다."ㅡ
담당 의사가 말햇듯이 이제부터는 살고 죽는것은 인서씨의 몪이다.
어제 자정부터 잠에 빠져든 인서씨는 지금<6시>까지 평온하게 자고있다.
"선생님! 죄송해요,
어떻해요, 시간이 이렇게나 되도록 잤네요,"
"형부, 죄송해요,"
"후훗, 알어요,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요,
얼마나, 피곤했겠어요,
그제 저녁에도 뜬눈으로 밤을 샜고 어제도 종일 신경을 오죽이나 썼구요,"
"선생님,은 이틀재예요, 어쩜, 저희가 큰 실례를 했네요,
어여 가셔서 주무세요,"
"염려 놓으십시요,
난, 며칠씩이나, 잠 한숨 안자도, 견딜 수 있어요,
현장일을 하다보면, 야간일을 할때가 자주 있어와서 몸이 잘 다져진거요,
글구, 나이를 먹으면, 잠이 없어지데요,
허허허,......"
"얼른 가셔서 주무세요,"
"아뇨, 밖았 정원에나 거닐다 올께요,"
"그람, 나길언니가 형부를 모시고,같이 산책이나 하시고 오세요,"
"그 럴 까,?"
"네, 얼른 형부 모시고 다녀오세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어제부터 나길씨와 자꾸 이상하게 엮여지고 있다.
"아녀, 그냥 나혼자 갔다가 올텡께,인서씨를 지키시오,잉!"
"어머, 선생님! 같이 가요,"
이미 나길씨는 체비를 하고 앞장을 선다.
"어제, 소나무슢에 가실거죠,"
"네,"
"선생님께서는 카리스마가 있으세요,"
"허,허허, 그런말이 내게 어울리기나 한 말인가요?
가망 택도, 없는 말이요,"
"아네요, 선생님의 언니에 대한 사랑은 파노라마처럼 쉼 없이 역동적이며
카리스마 그 자체예요,"
요즘같은 세상에 선생님 같으신 분이 어디 계실라고요,"
"과분한 말씀에, ... 기분은 좋습니다만,
나길씨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사업을 하신분이 이렇게나 사흘씩이나 카페를 비워놔도 되나 싶습니다."
"아네요, 제가 되려 감사를 드려야 해요,
지난 세월동안, ... 하루도 마음편하게 나들이를 못해봤거든요,
접때도 말씀 드렸듯이 밖 았 세상이 두려웠어요,
가신 그분의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분의 망상에 빠져 들게 되는 것이었어요,
지금 느끼네요,
아직도 하늘이 옛날처럼, 맑다는 것을요,
이렇게 맑은 하늘을 두고, 제 마음은 늘 어두웠거든요,
하늘을 보기가 두려웠어요, 제 마음보다 더 우중충할까봐서요,"
카페는요, 오늘 아침에도 연락을 했구요,
종업원 식구들이 알아서 잘 할거래요,"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나길씨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겨워 하면서도 떠난님의 망상에 끝없이
빠져든 것이다.
어쩌면 그 생활이 남편에 대한 도리며 의리였으리라,
어제 보다 더 깊은 가을이 온양싶다.
날씨가 쌀쌀하다는 것 보담도 낙옆이 더 짙어졌고 잎사귀를 떨구어 버린 앙상한
나무가지가 을씨년 스럽다.
늘 푸른소나무만이 기상을 펼치며 강한 의지와 정신을 그려내고있다.
감사합니다. 곧, 글 / 우두봉,
첫댓글 글쎄 어느 神이 교통 정리를 하나요?운명의 신, 사랑의 신 인생은 안개 자욱한 길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걷는건가요.
어느 神도 우리 사랑에는 넘볼 수 없습니다.
내가 선택한 운명적인 사랑의 길입니다.
고통이 아닌 사랑의 길은 없습니다.
찾아 나설겁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조페장군님,......
아픈사랑 그러면서도 뜨거운........